고작 통신망 하나가 끊어지고 사람이 죽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일요신문] “고작 통신망 하나가 끊어졌는데 사람이 죽었다고?” 이는 망자를 두고 한 농이 절대 아니다. 이번 KT화재사고로 인해 벌어진 엄연한 사실이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KT아현지사의 지하통신구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수많은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통신사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고처럼 전 방위적인 피해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그저 소통의 불편함을 넘어 재산과 심지어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한 이번 사고는 가히 ‘통신재앙’이라 할 만 하다. 그 남은 이야기들을 ‘키워드’를 통해 살펴본다.
#소규모 화재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에서 소방 관계자 등이 전날 발생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한 현장 감식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018.11.25 연합뉴스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이번 화재는 그 규모 자체로 본다면 ‘소규모 화재’란 사실이다. 화재를 진압했던 서대문소방서 측은 “이번 화재를 ‘대형 화재’로 분류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어마어마한 혼란과 피해를 야기한 사고임에도 왜 그런 걸까.
소방법에 따르면 ‘대형화재’의 기준은 사망자 5명 이상, 사상자 10명 이상, 이재민 100명 이상, 재산피해 50억 원 이상을 기준으로 한다. 여기에 화재장소가 ‘관공서’나 ‘학교’일 경우 그 정도에 따라 ‘대형화재’로 분류하기도 한다.
따라서 소방서 측의 발표는 팩트다. 이번 화재사고는 순전히 앞서의 기준으로 본다면 ‘소규모 화재’에 해당한다. 화재발생 장소는 빌딩 지하의 통신구였다. 통신구에는 전화회선 16만 8000선, 광케이블 220조 세트가 들어차 있었다. 결과적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통신구에는 이러한 회선 및 케이블만 잔뜩 들어차 있을 뿐 이를 관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화기도 몇 개가 없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으나 어차피 그 소화기를 사용할 사람도 없었다. 그 장소만 놓고 보자면 재산상 피해만 발생했을 뿐 인명피해는 제로였다.
결국 문제는 뭘 태웠느냐다. 앞서의 회선과 광케이블이 전소되면서 단순한 화재 피해 집계를 넘어 후폭풍은 말 그대로 ‘재앙급’으로 다가왔다. 뒤에 그 피해리스트를 열거하겠지만 파장과 범위는 이루어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통신재앙의 무서움을 그대로 실감나게 했다.
이와 관련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이번 피해 규모가 컸던 것은 하필 그 화재사고가 ‘아현지사’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현지사는 그저 평범한 지국이 아니다. 그 산하에 은평지사, 신촌지사, 용산지사, 가좌지사 등을 둔 ‘허브’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그 파장이 더 컸다고 한다.
#상거래 영업망 셧다운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화재현장 일대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화재 현장 인근 카페에서 가게 사장이 통신장애로 인한 에러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2018.11.24
이번 화재로 인해 지역으로 보면 서울시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은평구, 종로구,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까지 광범위한 피해를 발생했다. 여기에 영등포구와 강서구 일부 지역에서도 신고가 접수됐다.
기본적으로 KT 회선을 사용하는 이동전화는 물론 유선전화와 인터넷, 여기에 IPTV 등이 불통됐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영업망’의 마비다. 이는 사용자의 단순한 통신 두절로 인한 불편함을 넘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야기했다.
국내에서 상거래를 꾀하는 대부분 분야의 영업점의 결제 및 매출액 집계 시스템이 온라인화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과거 현금 위주의 거래에서 벗어나 카드결제 및 이커머스 결제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문에 앞서 피해지역의 음식점, 카페, 편의점, PC방 등의 카드결제 시스템과 포스기가 먹통이 되면서 일선 영업에 장애를 초래했다.
특히 PC방은 사고 발생 후 재앙을 맞이했다. 다른 영업점처럼 카드 및 포스기 장애 피해를 입은 것은 물론 영업수단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인터넷 접속이 먹통이 됨에 따라 장사 자체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유명 커뮤니티에는 고가의 아이템이 오가는 온라인 게임의 유저들이 셧다운된 PC방 점주에게 항의하는 일화가 올라오기도 했다.
그 밖에도 피해지역에 서버를 둔 FC서울의 발권 시스템이 마비되는가 하면, 무인 자동결제 시스템이 운영되는 브랜드 주차장에선 결제가 불가해 나가고자 하는 차들이 갇히는 일도 벌어졌다.
#공공 시스템 마비 그리고 인명피해
KT 아현국사 화재로 통신장애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는 25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원내 통신장애 안내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2018.11.25 연합뉴스
이번 통신재앙의 또 다른 시사점은 ‘공공 시스템’의 마비를 야기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거론되고 있는 것이 방송 시스템이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에선 라디오 및 TV의 직접 송출 및 수신 과정 대신 광케이블을 활용한 IPTV 및 온라인 라디오를 활용한다. 이에 해당 지역의 상당수 시청자들은 방송을 보고 들을 수 없었다.
이는 단순히 여가를 즐길 수 없다는 문제가 아니다. 유사시 활용해야 할 방송 시스템이 광케이블 통신장애가 발생한다면 완벽히 먹통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제는 옛것이 되어버린 공중파 송출 및 수신 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나섰다.
이번 사고는 의료시스템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일부 병원과 약국에서 의료정보 교환과 의료보험 시스템 접속 불가 피해를 입으면서 의료인은 물론 환자들에게까지 불편을 끼쳤다. 그런가하면 피해지역에 서버를 두고 있는 코레일의 결제 시스템이 먹통이 되면서 승객들의 불편을 야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경찰서의 내부통신망이 먹통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해당 경찰서에서 먹통이 된 내부통신망 대신 무선 무전기를 부랴부랴 활용하는 등 해프닝이 벌어졌다.
또한 사고 다음날인 11월 25일 새벽 5시 35분 경 장애 발생 지역인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70대 할머니가 먹통이 된 휴대전화 탓에 119에 신고를 못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는 통신장애가 사망자의 직접적인 사인은 아니지만, 사실상 사망을 부추긴 사례로 남았다. 즉, 통신재앙이 사람 목숨도 앗아갈 수 있음을 보여 준 셈이다.
#과다연결의 시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터넷 지도. 출처=위키피디아
이번 ‘통신재앙’이 무척이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방면에서 피해를 야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일각에선 그 배경을 두고 ‘과다 연결의 시대’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상거래 장애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일상의 일거수일투족 대부분은 통신망과 연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곧 효율성과 편의성을 증대시키지만 획일성에서 오는 폐해는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즉 ,과도한 효율성의 추구는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는 불변의 진리다.
#KT화재와 고용구조
25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국사에서 KT 관계자 등이 복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18.11.25 연합뉴스
이번 사고가 한편으론 ‘고용구조’ 문제로 불똥이 튀고 있는 형국이다. 사고가 발생하자 KT는 몇 차례에 걸쳐 사고 현황과 복구 과정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 정보의 내용이 상당히 투박하고 불명확했다. 심지어 사고가 발생한 지사 소속 직원들조차 정확한 피해 지역 범위와 그 규모 그리고 복구 계획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동안 KT는 공공시설 복구 및 보안인력을 외주로 돌렸다. 물론 인건비 절약 차원이다. 이 때문에 정작 소속 인력들의 보안과 시설복구에 대한 전문성은 떨어진다. 모든 걸 외부에 맡겨 왔으니 사고 파악도 제대로 안됐을 것이란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번 네트워크 복구 작업에는 언제나 그랬듯 저임금 하청 노동자들이 투입됐다. 사고발생 직후 벌써부터 KT의 고용구조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불투명한 보상문제
28일 오전 서울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KT아현지사 화재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시민들이 통신공공성 확대 및 추가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2018.11.28
이제 남은 것은 보상 문제다. 앞서 지적했듯 이번 사고로 인해 추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
KT의 이용약관에 따르면 3시간 이상 통신장애가 발생할 시 인터넷 시간당 이용료의 6배, IPTV는 3배의 보상이 이뤄지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KT는 일단 유무선 피해 고객을 대상으로 1개월 요금 감면, 케이블 피해고객에겐 6개월 요금 감면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 통신장애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이번 사고로 인해 영업을 방해 받은 사업장이 입은 피해는 실제 보상으로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업장에 대한 보상 정책은 아직 제대로 마련돼 있지도 않고, 상당수는 통신사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고할 사례는 있다. 지난 2014년 SK텔레콤의 통신장애로 콜 시스템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손님을 받지 못한 대리운전기사들이 통신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통신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과연 영업점들의 피해보상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