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일요신문] ‘포스트 삼성’ 최근 SK그룹이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업계에선 최태원 SK회장이 ‘포스트 이건희’를 넘어 삼성家 전체를 위협할 만한 성장세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말 그대로 진격의 SK. 최태원 회장의 광폭 행보를 살펴봤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연 매출 40조 원, 영업이익 20조 원 결실을 앞두고 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분기별 성과 정도의 수준이지만 2011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한 지 7년 만에 올린 쾌거다.
# SK, 삼성 넘어설까...반도체 맹추격 ‘미래 먹거리’ 바이오제약 산업 선점 기대
반도체 초호황 속에 최대 실적을 올린 SK하이닉스는 내년도 반도체 시장 전망이 다소 부정적이지만 이천에 신규 반도체 공장 등 지속적인 투자와 생산시설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최태원 회장의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 전략은 보증수표와도 같다는 업계 분석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M&A 승부사’로 알려진 최태원 회장은 반도체에 이어 SK의 차세대 동력으로 꼽히는 제약·바이오에서 인수합병에 성공했다. 지난해와 올해에만 3조 가량의 인수 투자가 이어졌다.
1993년부터 최 회장은 바이오·제약사업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단행해 왔다. SK㈜의 원료의약품 생산 역사는 1998년 SK㈜ 바이오 관련 사업부에서 의약품 생산사업을 개시하면서 시작됐다.
2005년 원료의약품 사업에 진출한 SK㈜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당뇨치료제를 처음으로 수주했다. 2011년에는 바이오·제약사업 부문을 분사해 100% 자회사인 SK바이오팜을 설립했고, 2015년 SK바이오팜에서 분사된 원료의약품 생산 사업 부문을 SK바이오텍으로 물적 분할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북한 방문 때 모습. 연합뉴스.
특히, SK바이오텍이 세계 최초 양산화에 성공한 ‘저온연속반응’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최근 분식회계 혐의 논란으로 주식거래가 중지되고 검찰에 고발된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SK는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의 핵심국가이자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에서 더 공격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국영기업들을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 민영화할 방침이어서 SK를 비롯한 삼성, CJ 등 국내 대기업들의 투자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가운데 SK는 베트남 정부에게 말보다는 행동이란 방식으로 공격적인 현지 투자 선점에 나선 모습이다.
SK에너지는 베트남 석유공사(PV오일) 주식 355만주를 매입하면서 PV오일의 지분 5.23%를 소유하고, 베트남 정부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PV오일은 베트남 석유화학 시장 점유율 2위로, 직영 주유소 500곳을 운영하며 3000곳에 제품을 납품하는 거대 국영기업이다.
또 SK그룹은 지난 9월 베트남 대기업인 마산그룹의 지주회사 지분 9.5%를 4억 7000만 달러(약 5264억 원)에 매입했다. 이후 마산그룹과 베트남 시장에서 신규 사업 발굴과 전략적 인수합병(M&A) 등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마산그룹은 베트남 최대 식품회사이자, 자원개발기업이다.
베트남 투자를 확대해 온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업계 관계자들조차 SK의 마산그룹 인수를 놓고 설왕설래 중이다. CJ로선 마치 SK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 것이란 얘기도 나돈다.
실제로 SK에너지는 지난 3월 국내 최대 물류업체인 CJ대한통운과 전국의 SK주유소 3600여 개를 지역 물류 거점화 해 ‘실시간 택배 집하 서비스’를 구축하는 내용의 사업추진 협약을 맺었다. 기업의 유·무형 자산을 사회와 공유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자는 최태원 회장이 강조해온 ‘공유 인프라’의 첫 사업화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최 회장이 한쪽에선 협력을 다른 한쪽에선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로 보일 수도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에 연간 9.8GWh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새로 짓기로 했다고 밝혔다. 투자금액만 5조 원이 훌쩍 넘는다.
이는 삼성SDI가 700억 원을 투자해 디트로이트 인근 미시간주 오번힐스에 ‘미국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 발표’ 직전에 공개됐다. 삼성전자는 전세계 반도체 시설 투자에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SK는 곧바로 2위 인텔과 격차를 줄이며 서열 3위를 기록 중이다. 그럼에도 SK는 삼성보다 더 효율적인 여론전을 펼쳐 성과를 낸 셈이다.
# 나가도 너무 잘나가...박근혜 정부 ‘광복절특사’이어 임종석 비서실장과 독대도
최태원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유일한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았다. 면세점 특허권 관련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그룹 내 면세점 철수 지시를 내리는가하면 문재인 정부의 사회공헌 사업이나 노동정책 등에도 누구보다 잰걸음으로 대응에 나섰다. 특히 지난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최 회장의 독대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해석을 낳기도 했다.
여기에 SK종합화학은 지난해 2월과 10월 세계 굴지의 화학기업 다우케미칼로부터 에틸렌아크릴산(EAA) 사업과 폴리염화비닐리덴(PVDC) 사업을 각각 4216억 원과 820억 원에 인수하는 등 최 회장 특유의 공격적인 M&A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위), 문재인 대통령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모습(아래). 연합뉴스.
이처럼 잘 나가는 SK와 최 회장과는 달리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은 곳곳에 암초가 산적해 있는 형국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 논란과 국정농단 연루 등 과거 정권하에서 이루어졌던 각종 구설수로 곤혹을 치른데다 삼성바이오 사태와 삼성물산 합병 등 사정당국과 여론의 심판을 남겨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삼성전자서비스노조와 백혈병 사태에 대한 수습 정도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역시 경영복귀 뒤 세계시장 악화 등 여러 문제로 세계적인 CJ물류단지 구축 사업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태다. 내년도 동남아와 미국 시장 진출 성과가 답보상태인 가운데 CJ ‘비비고’가 선전하고 있는 정도다. 그마저도 SK의 견제를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동분서주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의 투자와 인수 성과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거기다 우리 정부는 물론 투자 관련 정부의 사회적 기업투자 및 지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치 누군가의 오더가 떨어져 일사천리로 일을 마무리지어가는 착각이 들 정도다”면서 “다만 대규모 투자와 가파른 채용 증가에 따른 이익 손실 우려도 상존하는 만큼 최 회장의 사세 확장이 언제까지 이뤄질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