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9일, 20년 전 충북 제천에서 발생한 ‘농가 연쇄 도산 사건’의 사기 피의자로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지목됐다. 이 직후부터 연예인들의 가족에게 사기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사진=마이크로닷 인스타그램
그러나 최근 연예계에서 연쇄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사기 피해 사건’은 실질적인 가해자가 연예인 본인이 아니다. 연쇄 폭로의 시발점이 됐던 마이크로닷 관련 구설도 그 부모님의 사기 행각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어 마이크로닷과 인연이 깊은 래퍼 Dok2(도끼, 본명 이준경·28) 역시 20년 전 어머니의 빚 1000만 원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후 연달아 터진 다른 사건 역시 연예인 가족들의 문제였다. 가수 비(본명 정지훈·36)의 경우는 지난 2000년에 사망한 모친의 2500만 원 상당 채무가 뒤늦게 문제가 됐다. 다만, 비의 경우는 모친 사망 당시 상속을 포기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채무를 변제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불거진 직후, 비의 아버지가 피해자 측과 만났지만 채무와 관련한 어떤 자료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가족에 대한 모욕적인 폭언과 1억 원의 합의금을 요구 받았다고 밝혔다. 비의 소속사 레인컴퍼니 측은 피해자에 대해 명예훼손 등 혐의로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방침을 밝혔으며 필요시 당시 녹취록을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피해자는 “오히려 돈 얘기만 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은 비 측”이라며 “지금 돈을 받지 않으면 (피해 폭로) 글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하더라. 비의 아버지와 비 측의 공식적인 사과, 정확한 채무에 대한 변제, 언론을 통한 매도로 인해 부모님이 받게 된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고 맞섰다.
비슷한 사례로 영화배우 마동석(47)이 있다. 그의 아버지가 고교 시절 인연이 있던 피해자(83)의 노후 자금 5억 원 상당을 빼돌렸다는 폭로가 나온 것. 사건은 2010년에 발생했고, 피해자의 조카들이 이 사실을 알아내 지난 2016년 6월 마동석의 아버지 이 아무개 씨(85)를 고소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기 혐의를 인정했으나 이 씨가 80대의 고령인 점을 감안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을 내렸다.
마동석 측은 “아버지의 사업상 투자 목적으로 받은 금액을 돌려드릴 예정이었으나 금액의 일부가 실제와 다른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재판을 진행했으며, 판결에 따라 변제해야 할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공탁하면서 피해자에게 변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반발했다.
배우 마동석 역시 아버지의 사기 사건으로 최근 곤욕을 치렀다. 사진=박정훈 기자
또 실제 마동석의 아버지가 판결을 받은 사건은 형사 사건이었는데, 이를 교묘하게 민사 재판과 동일시해 주장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피해자 측은 마동석의 아버지 이 씨의 여죄 증거를 찾아내 다시 한 번 그를 법정에 세우겠다고까지 밝힌 상황이다.
걸그룹 마마무의 휘인(23), 배우 차예련(본명 박현호·33)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최소 6년, 최대 14년 가까이 연락하지 않고 지냈던 이혼한 아버지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차예련은 피해자 측이 언론에 직접 제보했고, 휘인의 경우는 인터넷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피해자 측의 주장이 올라오면서 사건이 보도됐다.
이 둘 모두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이들의 이름을 이용해 사기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차예련의 경우는 이미 10년 이상 아버지의 빚 10억 원 상당을 대신 변제해 왔으며, 휘인은 아버지와 왕래가 없어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연예인을 거론하며 변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민사 전문 변호사는 “부모가 빚을 졌을 경우엔 실제 ‘보증’을 서지 않았더라도 채권자들이 변제의 의무를 자녀에게까지 묻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사채업자들이 부모에게 받아야 할 돈을 자녀의 직장에까지 가서 받아내는 불법 추심이 그런 사례”라고 짚었다.
이어 “실제로 변제의 의무가 없지만,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면 체면을 생각해서 급하게 해결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유명인의 경우는 앞으로의 활동을 생각하면 사안을 일찍 결론짓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빌려준 돈을 받을 길이 없는 채권자들로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족인 연예인들의 이름을 거론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변제의 법적 의무가 완전히 사라진 경우에도 연예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채무 이행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실제 사기사건을 일으킨 것은 연예인 본인이 아니고, 민사의 경우도 법원 판결을 통해 채무 변제의 이유가 사라진 상황이라면 사실상 채권자들에게는 이를 제3자인 연예인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앞선 변호사는 “채권자들은 ‘내 돈을 빌려가 놓고 갚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사기 행위가 성립된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기의 경우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대방을 구체적으로 기망했다는 행위가 먼저 입증돼야 한다”며 “이런 이유로 앞선 연예인 관련 사기 사건은 대부분 민사 영역의 채권·채무 관계로 인정되는 데 그쳤고, 이 경우에는 실제로 변제의 의무가 없는 피의자의 자녀나 가족에게 그 변제 책임이나 합의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순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