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감독이 경남FC 사령탑으로 선임된 시기는 2015년 12월. 당시 경남은 심판 매수 사건으로 2016시즌 승점 10점을 감점당하고 주축 선수는 대부분 팀을 떠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1997년 경남 거제고 감독을 시작으로 동의대-중동고-양주시민축구단-화성FC 등 ‘마이너리그’에서 지도자 인생을 걸었던 그에게 경남 사령탑은 프로 진출의 문을 열어줬다. 그러나 시·도민 구단의 열악한 재정 환경과 팀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신임 감독으로 K리그에 발을 들여 놓은 터라 그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당시 감독으로 선임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주위에서 응원보다는 걱정을 더 많이 해줬다. 분명 얼마 안 가 잘릴 거라며 만류한 지인도 있었다. 그러나 프로팀을 지도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는 게 아니지 않나. 만족할 만한 팀이 찾아주길 기다리기보다는 내게 손을 내밀어준 팀에서 열심히 해보고 싶었다.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겠다는 각오로 경남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김종부 경남FC 감독. 연합뉴스
그런데 김 감독은 경남을 맡은 지 2년 만에 팀을 2부리그 우승과 함께 K리그1 승격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K리그1 승격 후에는 다음 시즌 바로 강등될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대부분의 시·도민 구단이 그런 수순을 밟았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주위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 초반부터 제대로 치고 나갔다. 시즌 개막전이던 상주전 3-1 완승을 시작으로 개막 후 4연승 행진을 벌이며 선두로 올라섰다. 경남에는 외국인 선수 말컹 외에는 대부분 2부리그에서 뛰거나 트레이드된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김 감독이 이름이 아닌 선수의 실력에 맞는 맞춤형 전술로 성적을 내면서 그의 지도력이 더욱 빛을 발했다.
“우리 팀은 스쿼드가 뛰어나지 않은 편이라 선수들의 강점을 살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경기를 앞두고 전략을 세울 때도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기보다는 우리의 강점을 살리려 노력한다. 강점을 발휘할 수 있어야 상대의 허점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훈련 속에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경남은 이전까지만 해도 잘한 경기보다 못한 경기들이 더 많았다. 자신감이 상실됐고 목표 의식도 불분명했다. 지금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놓지 않고 있다. 아직은 완성된 팀이 아니라 멘탈 관련해서는 기복이 있지만 그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경남에는 올 시즌 26골로 득점 부문 1위를 달리는 브라질 출신의 리그 최고의 공격수 말컹이 존재한다. 31경기에서 26골 5도움을 기록한 말컹의 활약이 없었다면 경남의 돌풍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말컹을 이렇게 성장시킨 이가 김종부 감독이란 사실이다. 196cm의 장신인 말컹은 원래 농구 선수였다. 18세까지 농구 선수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축구화를 신은 건 8년여밖에 안됐다. 축구 선수로 다듬어지지 않은 선수를 김 감독이 진짜 선수로 만든 셈이다.
“솔직히 말해서 팀의 부족한 예산에 맞춰 찾아낸 선수였다. 당시의 말컹은 높이만 됐다. 너무 장신이라 완벽한 찬스가 와도 상대 수비수한테 다 걸리더라. 그래서 개인 훈련을 많이 시켰다. 다행히 모든 걸 잘 받아들이고 노력한 덕분에 자신의 단점을 빠른 시일 내에 고쳐 나갔다. 슈팅 타이밍을 좀 더 빠르게 가져가고 중앙뿐만 아니라 측면 공간을 활용해서 득점하는 방법을 배운 다음부터 득점이 늘어났다.”
김종부 경남FC 감독. 임준선 기자
말컹은 올 시즌을 끝으로 경남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K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은 그는 지난해부터 해외 리그의 러브콜을 받았다. 높은 이적료와 연봉까지 제안 받았지만 경남과 김 감독에 대한 의리를 앞세워 잔류를 선택했다. 올 시즌에도 말컹을 붙잡으려는 중국, 중동리그 팀들이 한두 팀이 아니다. 이적료만 400만 유로(한화 52억 원)를 제시하며 달려드는 곳이 있을 정도. 김 감독은 더 이상 말컹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말컹이 원래 체력이 약한 편이다. 풀타임을 소화하기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무리하다 보면 부상이 늘어나고, 그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겨울에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이라…. 말컹을 대체할 만한 외국인 선수 영입이 큰 숙제로 남았다.”
김 감독은 경남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다른 팀의 견제가 꽤 심했었다고 토로한다.
“처음 K리그1으로 승격됐을 때는 모두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K리그1 무대는 처음이라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내가 확신을 갖지 못하면 선수들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를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도 점점 변화되는 걸 느낀다. 그래도 여러 위기 속에서 잘 온 것 같다. 어떤 사람이 K리그1에서 시도민 구단이 2위에 오른 건 월드컵에서 골 넣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 그만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다.”
김 감독은 시즌 후반부에 울산 현대와 2, 3위 다툼을 벌였던 상황을 떠올렸다.
“만약 일찌감치 2위가 확정됐더라면 지금과 같은 감동은 덜 느꼈을 것이다. 2위를 이어가다 3위로 떨어진 다음 선수단이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지난 25일 수원과의 경기에서 2-1로 이기고 울산이 제주한테 패하면서 단독 2위를 확정지었을 때 기쁨이 배가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김 감독은 축구의 아웃사이더라는 인식이 강했다. 프로가 아닌 학원 축구, 실업 축구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 감독 데뷔 3년차인 그가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자리 같다. 프로 감독이란 자리가. 최고의 선수들, 최고의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이다 보면 항상 우승하거나 항상 승리하는 공식은 없다. 언제든 그 자리가 사라질 수도,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연승 행진을 벌이거나 승점에 여유가 있을 때는 선수들에게 많은 휴식과 휴가를 주고 싶기도 하다. 마음은 그렇지만 여유 있게 현실을 바라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선수 시절의 김종부 감독. 일요신문DB
“프로 선수들한테 가장 큰 동기 부여는 돈이다. 올 시즌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고 계속 성적을 내면서 어떤 동기부여가 필요했는데 구단이 그걸 맞춰주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열심히 해보자’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등 말로 선수들을 자극하고 동기부여를 이끌어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어쩌면 내 노력을 할 수 없는 그 부분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의 절박함, 정신력에만 기댄 채 경기를 운영하기란 매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우리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다. 프로 의식만 강조하는 감독을 원망하는 대신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모든 걸 보여줬다. 중간에서 코치들, 베테랑 선수들이 역할을 잘해줬다. 좋은 팀은 기술적인 발전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의 마음이 한데 모일 수 있는지, 아닌지가 좌우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올 시즌 경남은 좋은 팀이었다.”
김 감독의 지도력이 인정받으면서 복수의 중국 팀으로부터 감독직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중국이 제안한 연봉만 해도 20억~30억 선이었다. 김 감독은 제안 받은 걸 부정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내가 어렸을 때 계약을 잘못해서 스카우트 파동에 휘말리며 ‘비운의 스트라이커’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았나. 이제 ‘비운의’라는 수식어는 떼고 싶다. 아무리 거액을 제시해도 돈에 움직이기보다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곳에 있을 것이다. 경남이 ACL에 진출했는데 그 숙제 해결이 급선무 아닌가. 지금은 다른 팀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경남과 내년 시즌을 더 멋지게 해내는 마음밖에 없다. 내 거취는 다음 시즌 이후 다시 생각해보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