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으로 곤두박질쳤던 자유한국당의 정당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당 내부에선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못해서”라는 자소섞인 반응이 나오지만, 밖에선 한국당 입당 문을 두드리는 인사가 줄을 잇는 등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박은숙 기자
‘YTN’이 선거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6일~30일 조사한 결과 민주당 38.0%, 한국당 26.4%, 바른미래당 6.6%, 민주평화당 2.6%, 정의당 7.8%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8.4%, 부정 평가는 46.6%로 기록됐다(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정 평가와 긍정 평가가 역전 현상을 보이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리얼미터 측은 이 현상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면서 앵그리 보수와 앵그리 중도가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제1야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특히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 중 하나였던 50대와 PK(부산경남)는 이미 돌아섰다”고 진단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빠져나가며 한국당의 지지율로 흡수된 것이다. 즉 ‘반사이익’이다.
당사자인 한국당은 이런 결과에 다소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잘했다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의 실수가 많았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면서 “지지율 조금 올랐다고 거기에 일희일비하진 않는다. 화합과 보수가치 정립, 인적청산 순서의 로드맵에 맞춰서 가고 있는데 지지율 조금 올랐다고 로드맵이 변경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일각에선 비대위가 잘했고 계파갈등이 가라앉았으니 지지율이 올랐다고 보는 시선도 있긴 있다”라고 덧붙였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5일 토론회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린 거는 제가 올린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거의 끌어올린 것 같다”며 “그래서 더욱 더 조심스럽게 또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가 해나가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학용 한국당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희가 잘하는 게 3 정도면 문재인 정부 실정이 7 정도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도 “한국당이 잘해서 올랐겠냐. 민주당에 투자했던 국민들의 실망매물이 쏟아진 것이고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 지지층이 일시적으로 한국당에 투자했다고 본다”면서 “한국당이 잘하면 장기 투자가 될 것이지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정 지지층은 아직 아닐 것이다. 선거 직전 임박해서 나오는 지지가 진짜 지지”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지지율 상승 시점에 맞물려 여러 보수 인사들이 한국당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학재 바른미래당 대표를 둘러싸고 탈당설이 불거졌다. “탈당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른 의원들이 함께하지 않으면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이후 혼자라도 복당할 것” 등 주변 인사들이 탈당 의사를 대신 전했다. 물론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이 의원의 탈당설에 크게 반발했지만, 그 반발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권에선 이 의원의 탈당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한국당에 입당한 한 의원도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차피 이 의원도 곧 (한국당에) 들어올 텐데…”라고 말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지난달 29일 한국당에 입당하며 본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황교안 전 총리도 그간의 침묵을 깨고 4일 포럼에 참석했고, 바른미래당에서 공식활동을 하지 않는 유승민 의원도 최근 강연에서 “바른미래당에서 개혁보수가 이뤄질 수 있을지 늘 불안하다”라고 말해 한국당 입당설에 불을 지폈다. 이처럼 다수의 인사들이 한국당 입당설에 오르내리는 배경에는 ‘상승하는 지지율’이 한몫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이들이 입당 움직임을 보이니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도 있지만, 지지율이 상승하니 입당하려는 것도 있다”며 “지지율 상승이 입당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이럴 때 빨리 올라타야 존재감도 부각될 수 있고, 한편으로는 ‘내가 입당해서 지지율이 상승했다’며 기여한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반짝 효과’라 할지라도 한국당 입장에선 호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게다가 12월 초중순으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과 내년 초에 열릴 전당대회 등의 빅 이벤트와 연결되며 지지율이 증폭될 가능성도 보인다. 고 평론가는 “질서 있는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가 이뤄진다면 한국당의 지지율은 상승할 것”이라면서도 “아름다운 승부가 이뤄져야 하고, 패배를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