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포항 가속기연구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지역경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산업 혁신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력’이라는 주제로 지역경제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현 정권 핵심 정책 중 하나였던 일자리가 정부의 아킬레스 건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고용지표가 개선되기는커녕 연일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10월 발표한 9월 고용동향을 포함한 3분기 실업자 수 분석결과 실업자 수가 월 평균 106만 5000명에 달했다. 지난해 3분기보다 10만 2000명 늘어난 규모다. 이번 3분기 기준 실업자 수는 ‘환란’으로 불리던 외환위기 시기였던 1999년 이후 19년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고용률도 최근 3분기는 분기 기준 8년 만에 큰 폭으로 하락한 결과였다.
고용률 하락과 맞물려 문재인 정부 핵심 지지층으로 꼽혔던 20대 지지층의 이탈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7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52%로 집계됐다. 갤럽의 5월 4주차 여론조사(85%)와 비교해 20대의 문 대통령 지지율이 6개월 만에 33%포인트 하락한 셈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4일에서 6일까지 사흘간 전화조사원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했으며 표본오차는 ±3.1%포인트(95% 신뢰수준)에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달 18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도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가 나왔는데 올해 초만 해도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82.9%에 달했는데, 11월 둘째 주는 54.5%로 27%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플 수밖에 없고 아파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대에게 취업은 당장 맞닥뜨린 현실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바뀐다’는 막연한 말에 기대하긴 어렵다”며 “기대도 현실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데 현실이 정반대로 가는데 기대를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취업률이 점점 떨어지면 실망이 분노로 바뀔 수 있다. 그게 걱정이다”라고 덧붙였다.
취업률이 가라 앉고 있기 때문인지 임시 처방으로 나온 단기 일자리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체험형 청년 인턴’ 채용 공고를 내고 있지만 정규직 채용 의무도 없고 ‘직장 체험’ 수준에 그친다고 평가되고 있다. 심지어 한국전력에서는 ‘체험형 청년인턴’이란 이름으로 이틀짜리 인턴까지 나왔다. 통계에서 취업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혀 의미 있는 일자리는 아닌 셈이다.
자연스레 이 같은 채용 공고 배경이 정부의 압박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입수한 정부 내부문건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9월 14일 공기업 35곳을 비롯하여 준정부기관 97곳, 기타공공기관 228곳 등 모두 360곳에 ‘[BH요청] 공공기관 단기일자리 현황 파악 요청’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이어 9월 17일 각 기관에 ‘(BH요청자료) 단기 일자리 관련 현황조사 양식 수정 및 제출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다음날인 18일 체험형 인턴 채용계획 및 채용실적을 조사한다며 공문을 발송했다. 9월 27일 오후 ‘BH관련 단기 일자리 추가조사 요청’의 공문을 발송했는데, 여기에는 단기 일자리 조사 관련하여 BH에 1차 보고를 마쳤으며, 이에 대해서 BH에서 자료 보완을 요구함에 따라 부득이 추가조사를 요청드린다고 기재돼 있다. BH가 수정을 요청한 양식은 ‘17년 9~12월 및 ’18년 9~12월 단기 일자리에 관한 내용을 조사한 바, ‘17년 1~8월, ’18년 1~8월을 추가로 조사한다고 돼 있다.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에 보낸 단기 일자리 조사 공문. 사진=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실 제공
이 같은 요구는 계속됐다. 단기 일자리 만들기 공문은 계속됐다. 10월 2일에는 ‘단기 일자리 확충에 관한 내용이 저조하다’, ‘금년 내 확충할 수 있는 단기 일자리를 적극 발굴해 달라’, ‘단기 일자리 확충 실적은 향후 일자리 콘테스트 및 기관 평가시 고려사항으로 검토 중에 있다’, ‘BH보고 일정이 촉박하다’고 재촉했다. 10월 4일 기재부는 체험형 인턴 채용 확대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계량·비계량 항목 점수에 모두 반영하고, 인턴 채용 실적에 대해 별도 시상 등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알린 바 있다.
정부가 10월 24일 발표한 청년층과 어르신, 실직자 등 저소득층을 위한 총 5만 9000개의 ‘맞춤형 일자리’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문제가 됐던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5300명을 포함해 빈 강의실의 전등을 끄는 ‘에너지 절약도우미’ 1000명, 카드수수료 부담 덜어주는 ‘제로페이’ 홍보안내원으로 960명 등 단기 알바 수준의 일자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틀짜리 인턴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라고 본다”면서 “정부에서 압박하면 공기업이나 공무원들이 생각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고 했다. 신율 교수도 “대학 강의실 불 끄는 일자리가 취업자에게 도움도 크게 안 될뿐더러 통계적으로도 큰 비율을 차지하기 어렵고 본질적인 해결책은 더더욱 아니다”며 “정치는 의도의 선함과 별개로 결과적 선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단기 일자리 대책 양산을 두고 일자리 상황판 자체의 문제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자리 상황판이 일자리 현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상황판에는 고용률과 실업률, 청년실업, 고용보험 가입자, 임금격차, 경제성장률 24개 항목이 표시된다.
이 중 실업률은 3.8%에 불과해 OECD 회원국 평균인 6.7%보다 훨씬 낮게 표시된다. 하지만 실업률의 분모는 경제활동인구이고 여기에는 구직단념자는 빠지게 된다. 구직에 노력하다 도저히 구직이 안돼 결국 취업을 포기하면 실업률이 낮아지는 ‘착시효과’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고용률과 실업률이 동시에 오를 때가 생긴다.
약 20년 만에 실업자수 100만 명을 기록했지만 대체로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늘어나고 있는 이유도 상황판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내놓은 영세사업자에 임금 일부를 보전해주는 ‘일자리 안정자금’도 고용보험 가입을 조건으로 삼고 있다. 또한 공기업,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통계청이 11월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서 종사자 지위별로 보면 상용직에서 35만 명 증가한 반면 임시직 13만 8000명, 일용직 1만 3000명씩 감소했다. 자영업 등 비임금근로자도 13만 5000명 줄었다. 야당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일자리 상황판 때문에 단기 숫자에 집착하게 되고 그 결과 단기 일자리에만 치중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