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회장이 퇴진선언을 하자마자 검찰이 상속세 등 탈세 혐의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회장에 보냈던 박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이 회장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년 경영일선 퇴진을 전격 선언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웅열 회장은 지난 11월 28일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사내 포럼 ‘성공퍼즐세션’ 말미에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갑작스레 퇴임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내년부터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 코오롱그룹 회장직과 대표이사, 이사직도 그만두겠다. 앞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내 인트라넷에 임직원을 향한 편지를 통해 “1996년 1월 나이 마흔에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딱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나이 60이 되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고 작정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3년이 더 흘렀다”며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폭탄선언’은 한국 사회와 재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회장직 퇴진을 발표한 지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검찰이 이웅열 회장에 대해 최근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부장검사 최호영)가 이 회장 등에 대한 조세포탈 고발 사건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는 것이다.
앞서 2016년 4월 서울지방국세청은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조사는 비정기 특별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4국이 담당했다. 조사 대상은 고 이동찬 명예회장이 2014년 타계한 뒤 이 회장이 재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속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개발한 고강도 특수섬유 ‘아라미드’와 관련해 미국 화학기업 듀폰과 특허소송 관련 비용 처리,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계열사 지분 재매각 과정에서 발생한 처분손실의 손금산입 등이었다. 세무당국은 세무조사 과정에서 이 회장의 자택과 집무실에서도 세무·회계자료를 수거해 갔다.
결국 국세청은 이 회장을 조세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코오롱인더스트리에 742억 9000만 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검찰이 수사를 개시한다면 고발한 지 약 2년 만의 일이다. 검찰은 참고인 조사를 마친 뒤 이 회장 등을 소환해 상속세 등 조세포탈에 대해 지시를 내리거나 보고를 받았는지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일이 겹치면서 이 회장의 퇴진과 검찰 조사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회장이 불과 3개월 전 일감몰아주기 논란의 소지가 있는 코오롱베니트 지분을 정리하고, 코오롱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등 그룹 지배력 확대에 나서고 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퇴진 선언’을 한 탓에 앞의 해석에 무게감이 실렸다.
하지만 코오롱 측은 “이웅열 회장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건데, 시점에 묘하게 겹친 것뿐”이라며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지도 몰랐으며 회사에는 아무것도 전달받은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코오롱 관계자는 “국세청이 앞서 코오롱 인더스트리에 742억 9000만 원의 추징금을 부과했지만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해 125억 6000만 원으로 줄였다”며 “또 현재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도 조세불복해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2년여 만에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사정당국의 전방위 수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사장을 지내는 등 코오롱은 ‘대표적 MB라인’으로 꼽히며 MB정권과 유착·특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며 “사정당국이 범위를 확대해 당시 의혹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에서는 이웅열 회장이 퇴진선언 이후 해외로 나가려 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이에 대해선 너무 막 나간 억측이라는 의견이 많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퇴진선언과 검찰 수사를 엮기는 힘들어 보이며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며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야 확실히 알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경영권은 경험 더 쌓은 뒤에…’ 이 회장 퇴임 발표 날, 장남 이규호 씨 전무 승진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장남 이규호 전무. 이규호 전무는 1984년생으로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처음 회사에 발을 내디딘 후 코오롱글로벌 부장,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등을 거쳐 지난해 12월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이번에 1년 만에 전무로 임명되면서, 초고속 승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전무는 그룹 내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리베토의 지분 15%를 보유한 것이 전부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고 그룹 핵심 사업부문을 총괄 운영하도록 한 것은 30대 중반이라는, 아직 어린 나이기 때문에 경영 경험을 더 쌓도록 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이 임직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금수저 얘기를 하며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지분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경영권도 훗날 장남 이규호 전무에게 줄 텐데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모르겠다”며 “소탈한 이미지와 도전정신을 갖춘 것처럼 보이려 한 것 같은데 의도대로 됐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