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한 여중생이 투신자살했다. 유족들은 또래 남학생들의 숱한 성폭행과 협박이 딸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박정훈 기자
지난 7월 19일 오후 8시쯤 인천시 미추홀구 한 아파트 3층에서 여중생 A 양(15)이 뛰어내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A 양은 주변을 지나던 목격자에 의해 최초 발견됐다. 경찰, 구급대원들은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지만 A 양은 이미 숨진 뒤였다. 미추홀경찰서 관계자는 “타살이 아닌 자살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유서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단순 자살사건으로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A 양의 아버지는 딸의 장례를 치른 후 A 양의 친구들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접했다. A 양이 자살 이전 또래 남학생들로부터 성폭행과 협박 등을 당하며 힘들어했다는 것. A 양의 아버지는 “A 양이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다”, “친구들에게 망신을 당했다”는 등의 연락을 받았다. A 양의 아버지는 딸의 자살 배경 등을 의심하며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딸이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그 실체를 인지, 이를 학교와 경찰에 알렸다. A 양의 유족들은 지난 8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강간 등) 및 명예훼손 혐의로 B 군(18) 등 3명의 남학생을 고소했다.
유족들 주장에 따르면, A 양은 지난 2016년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B 군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A 양은 이 사실을 같은 학교 동급생인 C 군(15)에게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C 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성추행 피해사실을 소문내겠다”며 A 양을 협박, 이를 빌미로 A 양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했다.
여기에 A 양의 전 남자친구였던 D 군(16)도 합세하며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D 군이 SNS상에 A 양이 그동안 당해온 피해사실을 악의적으로 꾸며 유포한 것. A 양의 아버지는 “D 군은 다른 애들과는 잠자리를 가지면서 나와는 왜 안 갖느냐고 딸에게 협박, 성관계를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딸은 SNS를 통해 퍼져나가는 내용 등으로 죽음을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 양의 유가족들은 이들 세 남학생 외에 딸이 두 명의 남학생에게 당한 피해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이에 지난 10월 이들 두 명도 추가로 고소했다.
A 양의 아버지는 지난 11월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성폭행과 학교 폭력으로 투신자살한 우리 딸의 한을 풀어주세요”라는 글을 올리며 이 사실을 알렸다. A 양의 아버지는 “우리 딸은 밝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집에 오면 인사하며 쪼르르 달려와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딸의 억울함이 풀릴 수 있게 청원에 힘을 보태주세요“라며 슬픔을 표했다. 12월 7일 기준 해당 국민청원 참여자 수는 1만 4000명을 넘어섰다.
학교는 A 양의 이러한 피해정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A 양의 아버지가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한 이후에야 알게 된 것. 오히려 학교는 A 양의 피해를 외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지난 2016년 A 양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면서 학교 전담 경찰관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학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지 않았을뿐더러 신고도 접수하지 않았다. 학폭위는 A 양이 투신한 이후인 지난 11월 13일에 열렸다. 최초 신고 시점으로부터 2년 6개월 만에 열린 셈이다. A 양의 아버지는 이와 관련해 인천시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사건을 담당한 인천 미추홀경찰서 전경.
하지만 교육청과 경찰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 입장에선 경찰 수사를 통해 혐의점이 확실히 드러나야 이와 관련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대응이 늦어진 것”이라며 “학교폭력 법률 등에 따르면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 경우에만 제재를 가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학교의 악의적 고의성 등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추홀경찰서 관계자는 “A 양의 아버지가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 수사를 무혐의로 종결하려 했던 적은 없다. A 양과 남학생들 휴대폰에 대한 포렌식을 모두 진행했다”며 “죽기 전에 괴롭힘을 당했는지 여부와 자살의 직간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성폭행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남학생들에 대한 처벌 수위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범행이 오랜 기간 지속,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두고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용기 내서 도움을 청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 과거보단 늘었지만 그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여전하다. 이러한 요인이 범행을 확대했을 것”이라며 “도움을 청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피해자는 고립되는데 그 경우가 이번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따져봐야 알겠지만, 피해자가 소속된 기관 입장에선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 잘잘못을 규명할 경우 사건의 책임을 인정하는 꼴일 수 있기에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을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