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월 2일 오전(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향하는 공군 1호기 내에서 출입기자들과 만나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 말 못할 속사정 있나
이번 사태에 대해 여권 핵심부 기저엔 특정 세력의 불순한 의도가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감지된다. 순방 중에도 이 사안을 꾸준히 보고받았던 문 대통령이 여권에서조차 제기됐던 조국 민정수석 경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밀릴 경우 국정 운영이 힘들 것이란 판단을 했다는 얘기다. 한 친문 의원은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무수한 뒷말이 나왔다. 청와대가 흔들리면 수습이 힘들다고 봤다”고 전했다.
우선 해묵은 검경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자신의 지인이 연루된 수사 상황을 문의했다가 물의를 빚은 특감반 소속 김 아무개 수사관은 검찰 소속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수사기관에 수사 진척 상황 등을 물어보는 것은 빈번한 일이다. 만약 경찰 출신이 그랬다면 경찰이 문제를 삼았겠느냐. 검찰 수사관이라서 일부러 사태를 키운 것 같다”고 했다.
경찰 측은 발끈한다. 경찰 한 고위인사는 “검찰이 평소에 경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그대로 나타난 사건이다. 어떻게 경찰청사로 직접 찾아와 수사를 문의할 수가 있느냐. 더군다나 지인이 피의자로 조사 받는 사건인데 말이다. 담당자들에게 물어보니 협조를 구한 것도 아니고 강압적으로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민정수석이나 비서관도 아니고, 또 경찰 출신도 아니면서 검찰 직원이 이런 식으로 수사 상황을 알려 달라고 한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선 실세들 간 갈등에서 빚어진 것 아니냐는 소문도 들린다. 김 수사관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친문 인사를 공격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는 것이다. 당·청 수뇌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부분이다. 일각에선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의 ‘입’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는 현 정권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그가 입을 열면 게이트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왔었다.
김 수사관이 수사 상황을 알아보려 한 것에 대해 윗선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는 그 피의자와 친한 정권 실세의 요청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수사관이 경찰 핵심 조직인 특수수사과로 ‘밀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진짜 사정이 있을 것이란 얘기다. 민정수석실 근무 경력의 한 변호사는 “개인 비위 때문에 특감반 전원이 교체됐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조직 쇄신이라는 명분도 약하다. 아마 ‘꼬리’를 잘라내려 했을 것인데, 특정인만 바꾸면 잡음이 나올 수 있으니 전원을 대상으로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예고된 사태’ 시작부터 삐걱
정권이 출범하면 검찰과 경찰 등 사정기관 직원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누가 청와대로 파견 근무를 나가느냐다. 그 중에서 청와대 특감반은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조직으로 복귀하면 승진이 보장될 뿐 아니라 보직 배치 등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까닭에서다. 이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학교와 지역 등을 연결고리로 하는 정치권 줄대기 현상이 기승을 부렸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부실 검증은 차치하고 온갖 마타도어식의 소문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자체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정권 초기 한 수사관은 특감반 파견이 거의 확정됐지만 막판에 밀렸다. 그가 박근혜 정권 시절 야권 성향 정치인 사찰에 관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무근이었다. 정권 인사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또 다른 수사관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 검찰 출신 특감반 직원은 근무 초기부터 여러 번 논란에 휘말려 복귀할 것이란 말이 끊이지 않았다. 청와대 기밀 사항을 유출했을 뿐 아니라 술자리에서 여러 번 시비가 붙었다. 언론사 정보보고에까지 올라왔을 정도다. 그런데 그는 교체되지 않았다. 그의 뒤를 친문 성향의 한 사정당국 고위 인사가 봐주고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 고위 인사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특감반 ‘세팅’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특정 지역 직원들을 많이 발탁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앞서의 민정수석실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특감반에 들어가기 위해선 연줄 하나 정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게 무슨 문제냐면 특감반 직원들이 사적으로 동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자신을 꽂아준 인사가 부탁을 하면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실세들 입장에서도 친한 특감반 직원이 있으면 여러 면에서 편하기 때문에 자주 활용하곤 한다. 그들을 통해 고급 정보들을 받아볼 수도 있다. 이는 결국 민정수석의 통제력 약화와 기강 해이로 나타난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이러한 문제 등으로 인해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부 알력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특감반 대부분 직원들이 각각 특정 라인에 줄을 대고 있다 보니 벌어진 현상이라는 얘기다. 현 정권 사정당국의 고위 인사는 “조국 민정수석과 그 밑의 비서관 간에도 신경전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그 밑의 직원들끼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번 사태는 어떻게 보면 예고돼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특감반은 검찰과 경찰 수사관으로 이뤄져 있는데 베테랑인 그들이 학자 출신의 조국 수석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도 있었다고 한다. 조 수석의 조직 장악력에 의문부호가 달린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 공직사회 ‘저승사자’…“기관장도 굽신”
청와대 특감반은 공직사회에선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특감반 직원 대부분 6~7급 공무원들이지만 장관조차 그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다고 한다. 특감반원들은 고위 공무원이나 기관장들, 심지어 장·차관조차 독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 문제가 된 김 수사관도 지난 7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만나 소속 공무원 비위 의혹을 제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이는 사정기관 컨트롤타워 격인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갖고 있는 힘에서 비롯된다. 민정수석실 출신의 한 검찰 관계자는 “특감반 직원이 ‘마음만 먹으면’ 장관 정도는 날릴 수 있다. 그들이 만들어낸 보고서가 인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밑의 공무원들이야 오죽하겠느냐. 박근혜 정권 때 한 특감반 직원이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던 공무원에 대해 사돈의 팔촌까지 다 뒤지는 것을 봤다. 그 공무원은 결국 승진에서 탈락했다. 이러니 공무원들은 무조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특감반 위세는 어느 정권에서나 등등했지만 현 정권에서 유독 심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중앙부처 산하의 한 기관장은 “매 정권마다 우리를 담당하는 특감반 직원들을 상대해왔는데 이번은 특히 힘들다. 너무 고압적이다. 마치 죄인처럼 우리를 대한다. 나이나 직급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적어도 인간적으로 존중해주면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내가 그 사람들 부하도 아닌데….그래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그는 이런 인터뷰조차 혹시 신분이 노출돼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의 고위급 임원은 특감반 직원을 접대한 적이 있다고 실토했다. 그는 “우리가 철저한 을이다. 밉보였다간 조직 전체가 괴롭다. 그래서 꾸준히 술도 사고, 골프도 시켜주고 그랬다”고 털어놨다. 대통령 친인척 문제와 관련해 특감반 조사를 받았다는 사업가는 “솔직히 청와대 명함을 보고는 잘못한 게 없어도 겁을 먹게 되더라. 민감한 개인 신상에 대해 이것저것 캐물었는데 ‘그들이 무슨 권한으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민정수석실 출신들은 특감반을 견제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내부 감시망이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선 이번 사건과 비슷한 일이 언제든 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특감반을 구성할 때 외부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민정수석실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특감반 직원들의 활동 영역을 철저히 제한하고 규정할 필요가 있다. 너무 광범위하다보니 여기저기 개입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특감반 근무가 마치 승진의 필수코스로 여겨지는 관행도 고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특감반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수석’ 시절 탄생 문재인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든 특감반은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이던 2003년 만든 조직이다. 과도한 수사권 남용으로 사회적 비판을 받았던 이른바 ‘사직동팀’이 2000년 해체된 후 경찰과 검찰을 파견 받아 비공식으로 운영하던 ‘별관팀’을 공식적인 직제로 편입한 것이다. 민정수석 밑엔 반부패 법무 민정 공직기강, 이렇게 네 파트가 있다. 이 중 특감반은 반부패 공직기강 민정 세 곳에서 운용한다. 이번에 김 수사관을 포함해 전원 교체된 곳은 반부패비서관실 소속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2012년 대선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징계를 받았던 박형철 전 부장검사가 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다. 각 비서관실에 따라 특감반 업무도 다르다. 반부패비서관실의 경우 고위 공직자들을 감시한다. 공무원들에겐 ‘암행어사’로도 불린다. 친문 핵심 백원우 비서관이 이끄는 민정비서관실은 대통령 친인척 관리가 주요 업무다. 민정수석실의 가장 민감한 업무로 보통 대통령 최측근들이 맡곤 했다. 변호사 출신 최강욱 비서관의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감찰을 한다. 업무 특성상 특감반원들의 활동은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된다. 그동안 특감반에 대한 감시가 소홀했던 이유다. 특감반의 무소불위 권한에 대해선 정치권에서도 암묵적 동의가 이뤄졌었다. 이는 곧 특감반 직원들의 특권의식으로 이어졌고, 이권 개입 등 여러 문제점을 야기했다는 지적이다. [동] |
사정기관 누수 신호탄 될까? ‘조국 구하기’ 내부 논란 당청이 한 목소리로 조국 수석 경질에 반대하면서 수습 국면으로 접어드는 듯하지만 이번 사태가 사정기관 누수의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나타나곤 했던 사정기관의 정보 유출과 기강 해이가 앞당겨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과 경찰 등에선 청와대를 향한 불만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각 기관이 조사해서 진상을 밝혀 달라”고 주문한 청와대가 ‘폭탄’을 넘겼다는 판단에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가 떠안았다. 감찰을 하고 있긴 하지만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 것이냐. 윗선에서 어떻게 얘기가 오갔는지는 잘 모르지만 검찰이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런 기류가 결국 문재인 정부에 ‘부메랑’이 될 것으로 점친다. 친문 핵심 인사들이 차라리 이번 기회에 조국 수석을 경질하고 사정기관 생리에 밝은 인사를 발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은 임기가 많이 남아 있으니 항명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조국 수석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것은 분명하다. 정권 입장에선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정권에 불리한 정보들이 조금씩 새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친문 실세들과 관련된 내용들이 언론에 제보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번 누수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