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두 기관은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키코 재조사, 케이뱅크 의혹 등 여러 사안에서 다른 태도를 보이면서 올해에만 수차례 엇박자를 낸 바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 처리 이후 금감원 내부에서는 그간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윤석헌 금감원장(왼쪽). 연합뉴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금융위와 금감원의 갈등에 대해 “금융위가 최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전부터 두 기관의 기싸움이 있긴 했으나 최근 금감원을 대하는 금융위의 태도는 자칫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 금융위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과거 금융위 해체를 주장한 대표적 인사인 데다 현 정부 실세로 언급되면서 산하기관인 금감원 통제에 힘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이야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기관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계기는 금감원에 대한 금융위의 예산안 감액 요구다. 앞서 금감원은 1~3급 직원 비중을 3월 기준 43.3%에서 35%까지 감축하는 계획이 담긴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했으나 금융위는 이를 30% 이하로 더 낮출 것을 요구했다. 또 금융위는 성과급과 인건비 등 비용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금감원의 내년 예산을 삭감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감사원이 지난해 금감원에서 불거진 채용비리 및 방만경영 등을 지적한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미 호되게 매를 맞았는데 내년 예산까지 축소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지난해 채용비리 및 감사원의 방만경영 지적으로 경영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고 성과급이 30% 이상 삭감된 바 있다.
급기야 금감원 내부 직원들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약 실천을 요구하고 나섰다. 금감원 노조는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금융위가 독점하는 금융정책기능과 감독 기능을 분리한다는 공약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인규 금감원 노조위원장은 “올해는 혁신방안을 이행하고 있으며 별다른 문제도 없는데 유독 예산에 대해 심하게 하니 그간 쌓인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이라며 “물론 예산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이 맞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직원들 밥그릇을 건드리니 내부에서는 노조에 ‘행동하라’는 요구가 나올 정도”라고 덧붙였다.
상급기관을 상대로 하급기관 직원들이 직접적·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자 그동안 깊게 쌓여 있던 두 기관의 갈등의 벽이 마침내 무너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키코 재조사, 케이뱅크 의혹 등과 관련해 번번이 마찰을 빚은 두 기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금융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관련해 삼성의 내부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금감원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진다. 금감원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 증거물로 제출한 삼성 내부문건은 고의 분식회계 판단에 결정적 증거가 됐다. 증선위가 최종 결론을 내기 일주일 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문건을 공개했다. 금융위는 박 의원이 공개한 문건의 출처를 금감원으로 본 것이다. 금감원과 박 의원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금융위의 계속된 추궁에 금감원은 내부감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건은 금감원이 2015년 이미 고의적 분식회계를 지적했으나 금융위가 이전 회계 처리의 적절성 여부를 반영한 조치안 수정을 요구하는 등 두 기관 사이에서 논쟁이 거듭된 사안이다. 결국 금감원 판단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금융위는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금융위가 금감원이 운영 중인 TF에 대해 전수조사를 나선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TF 전수조사의 발단은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TF’의 혁신안 발표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안을 발표하고 법령개정이 필요한 부분을 금융위와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위는 혁신안을 금융당국과 논의되지 않은 의견으로 봤다. 금융권에서 ‘금감원이 외부 인사로 구성된 TF를 통해 권한을 확대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것이 금융위의 심기를 건드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고동원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TF 위원장은 “당시 상황은 금융위와 금감원 간 문제라 잘 모르겠지만 금융위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TF의 결과물은 금융위가 지도적으로 나서야 할 사안에 대해 도움을 주는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개선안을 수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인규 노조위원장은 “두 기관은 그동안 수장을 비롯해 내부에서도 여러 문제로 갈등이 쌓였다”며 “과거 금감원 원장·수석부원장에 관료 출신이 배치돼 소위 말하는 ‘순치(길들이기)’가 됐는데 최초로 비관료 출신 원장이 오면서 예전처럼 되지 않다보니 갈등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이번에야말로…‘ 금융위 해체 힘실리는 까닭 금융당국 내부 갈등설이 불거지자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학계와 전문가들이 말하는 개편은 ’금융위 해체‘다. 지난 10년간 반복되던 논의가 이번에 특히 힘을 얻은 까닭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금융위 조직 개편을 언급한 바 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소비자보호를 기능별로 분리하겠다는 것. 금융위의 정책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기능은 금감원에 일임, 금융소비자보호는 별도의 기구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금융감독 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 금융위 해체에 힘을 싣는 분위기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의 결단이 없으면 어렵다고 말한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문제들을 보면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논의해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 같다”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 문제가 중요한데, 사실 결론은 이미 정해졌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두 기관이 협력하고 금융위가 할 수 없는 부분을 금감원이 보조하고 돕는 것이 맞지만 제도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금융위가 정책과 감독 기능을 함께하다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금융위 해체‘ 등 금융감독 체계 개편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