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전용기안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 청와대 제공
첫 방문지 체코의 대통령이 이스라엘 국빈 방문으로 자리를 비웠고, 당초 ‘원전 세일즈’를 염두에 둔 일정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도착 후 ‘원전은 의제가 아니다’라고 뒤집은 것도 논란이 됐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체코에 왜 갔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해외 일정에 나설 때마다 홀대론, 의전 실수 논란 등이 반복되자 여권 내부에서도 ‘문 대통령이 해외에 나갈 땐 걱정 된다’는 말이 나온다.
외교부 차관보를 지낸 인사는 “원래 중남미(올해 G20은 아르헨티나에서 개최)를 갈 때는 (급유 등의 문제로) 한 번에 갈 수 없으니까 한 국가를 경유해서 간다. 보통은 미국을 방문해 교민을 격려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공식 일정이 불분명했고 청와대가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을 하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번 일정은 준비가 제대로 안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비가 제대로 안됐으니까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표기하고 그런 것 아니겠느냐”면서 “그냥 중간 급유를 위한 비공식 경유 방문이라고 하면 될 것을 뭔가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려다 사고가 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외교부는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체코를 방문한 것이 논란이 되자 ‘체코는 헌법상 내각책임제로 실질적 정부운영 권한을 총리가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총리와의 정상회담은 체코 측의 요구로 비공식 회담으로 처리했다. 체코 측은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식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G20 일정은 최소 수개월 전에 잡힌 일정일 텐데 왜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처리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보통 그런(G20) 일정이 잡히면 경유 후보지들을 미리 체크하고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한다”고 했다.
목적이 불분명한 해외순방은 또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비핵화 촉진을 위한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겠다며 7박 9일 간 유럽순방에 나섰다. 하지만 방문한 모든 국가 정상들이 문 대통령 면전에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 원칙을 수차례 강조해 외교 참사라는 논란까지 있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여당 의원은 “유럽 분위기가 이런 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제대로 보고도 안 하고 대통령이 망신을 당하게 놔뒀단 말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전직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무대에서는 보통 거절을 하더라도 ‘생각해 보겠다’ ‘고민해 보겠다’ 등 완곡한 표현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별명이 ‘기름장어’였지 않나.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말로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잘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유럽 정상들이 CVID 원칙을 못 박은 것은 외교적으로 보면 면박을 당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외교부 차관보를 지낸 인사는 “문 대통령이 정말 유럽 정상들이 우리의 요청(대북제재 완화)을 받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순방에 나섰다면 중대한 판단미스”라면서도 “의도된 전략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에게 ‘봐라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국제사회가 꼼짝을 안한다. 그러니 너희가 먼저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보내기 위한 순방이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는 의전과 관련한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지난 10월 아셈(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제때 엘리베이터를 잡지 못해 단체사진 촬영을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도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에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회담이 지연되자 조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돼 국제 망신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외교부 차관보를 지낸 인사는 “명백한 의전팀의 실수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단체사진을 촬영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사진을 남기는 것은 의미가 크다. 의전상 큰 실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조는 모습이 외신에 보도된 것에 대해서는 “(펜스 부통령이 도착할 때까지) 일단 다른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장소가 마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원래대로라면 양국 의전팀 간에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아서 도착시간을 비슷하게 맞추는 노력을 한다. 의전이 계속 구설에 오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큰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물론 외교에서 의전이 전부는 아니지만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런 분야(의전)를 세밀하게 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문 대통령은 이번 해외 순방 중 한미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근거 없는 추측성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앞서의 인사는 “미국과 의견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과거 정부에서도 미국과의 의견 충돌은 늘 있었던 일”이라면서도 “더 큰 문제로 발전되기 전에 협의와 조정으로 한미 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가야 한다. 외부에선 문제라는데 자신들만 아무 문제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특히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우려스럽다.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국제질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북한 핵문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외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나가야 할 시점인데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외교부의 순혈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외부 인사를 대거 해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등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외교부의 전문성을 크게 떨어뜨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문재인 정부가 4강 대사를 모두 비외교관 출신 인사들로 임명하자 “외교관을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인사”라며 비판했다.
한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부 직원들의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적체가 있는데 그나마 있는 자리도 외부인사에게 돌아간다고 하니 불만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양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외교참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외교부의 존재감이 없다. 외교 문제를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서 “청와대가 외교 문제를 주도하더라도 전문가 집단인 외교부가 청와대에 직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소통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의원은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완화를 요청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 외교관들은 (면박만 당할 것이라는) 현지 분위기를 알고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런 보고가 아예 청와대에 전달되지 않았거나 전달받고도 강행했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시그널을 보내기 위해 순방을 강행했을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래도 문제다. 외교라는 게 다른 국가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하는 건데 마치 국제 왕따처럼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인식이 국제사회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