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웬 아침상이 이렇게 뻑적지근해?”
오준태는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아내를 쳐다보았다.
“자기 건강 생각해야지. 어젯밤에 보니까 너무 허해 졌더라.”
아내가 아양을 떨면서 눈웃음을 쳤다. 우라질 놈의 여편네. 백수 노릇할 때는 그렇게 구박하더니 돈 갖다 주고 깔고 눌러주니까 좋다고 흥얼대? 오준태는 여자는 요물이라는 옛 사람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실력을 보여줬는데 부족해?”
“애걔…. 겨우 400미터 뛰어 놓고 무슨 소리야?”
아내는 남자가 섹스를 할 때 100미터 달릴 때만큼의 칼로리가 소모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는 언제나 섹스 횟수를 달리기에 비교했다. 400미터를 뛰었다는 것은 네 번을 했다는 의미다. 물론 처음에는 허겁지겁 해버렸지만 두 번째는 제법 근사하게 했고, 세 번째는 순전히 땀을 흘리는 노력봉사로 했고, 네 번째는 아내가 일으켜 세워서 간신히 했다. 아내는 끝장이라도 볼 생각이었는지 자신도 지쳤으면서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네 번이 적은 거야? 대한민국에서 하룻밤에 네 번 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구 그래. 오준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자기가 그만하자고 그래 놓고 무슨 소리야?”
“여자가 그만하자는 말을 믿어?”
“그럼 더 하자고 그러지.”
아침부터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으나 약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남자의 자존심 문제인 것이다.
“농담이야. 그렇다고 눈까지 부릅뜨기는….”
아내가 눈을 살짝 흘기고 조기 살을 발라서 그의 수저에 얹어주기 시작했다.
“그럼 만족한 거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어젯밤만 같았으면 좋겠어.”
“이제부터 일 나가지 마.”
오준태는 어깨에 힘을 주어 말했다. 간살 떠는 아내의 얼굴이 홍조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알았어. 나 쇼핑 조금만 할게, 응?”
“응, 속옷도 좀 사 입고 그래.”
“호호호. 역시 우리 서방님이 최고야.”
아내가 오준태의 이마에 쪽 소리가 나게 키스를 했다. 아내의 배웅을 받으면서 집을 나온 오준태는 골목에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세상이 이렇게 만만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얼마든지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젠장 차도 한 대 있어야 하고 휴대폰도 있어야겠네.’
오준태는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가면서 머리를 굴렸다. 대학교 선배라는 주애란에게 분양권을 판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친구놈 김상복의 말마따나 나는 대박을 터뜨릴 운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부동산이고, 강남에는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허공에 떠돌아다니는 돈이 수조 원이라고 했다. 그 중에 1퍼센트만 벌어들여도 수백억대의 재산가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사무실에 출근한 오준태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100만 원을 남기고 수표를 은행에 입금시켰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정혜원의 분양권을 팔아주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전 내내 전화를 했으나 분양권은 쉽사리 팔리지 않았다.
“너 지난번에 일식집에서 만난 뚱뚱한 여자 기억 나?”
점심 때 도가나탕집에서 마주앉자 김상복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물었다.
“그래. 그런데 이름이 뭔지는 생각이 안 나네.”
“자식이 붙여주었으면 작업을 했어야지 한심하기는. 그 여자 이름도 안 물어 봤단 말이야?”
“남의 여자 이름은 왜 물어 보냐?”
“에라, 이 덜 떨어진 놈아. 그 여자가 수백억대의 재산을 갖고 있어.”
“재산이 아무리 많으면 뭘해? 날 줄 것도 아닌데.”
오준태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거리에는 실업자들이 넘치고 있었다.
“인마, 정신 좀 차려라. 그런 여자를 잘 다루어야 돈을 버는 거야.”
“뭘하는 여자인데 그렇게 돈이 많아?”
“시아버지가 말죽거리 땅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강남 개발붐이 일면서 100억대 재산가가 되었대. 시아버지가 죽은 뒤에 아들 삼형제가 30억씩 상속했어. 그런데 이 여자가 부동산 투기에 귀신 같은 솜씨를 발휘해서 수백억을 모은 거야.”
“남편은 뭘 하는데?”
오준태는 김상복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문제는 돈 많은 여자가 혼자 사니까 남자들이 벌떼처럼 꼬인다는 점이야. 돈이 있으니까 이 여자 주위에 온갖 잡놈이 몰려들고 있어.”
“어떤 놈이 물든지 땡 잡겠군.”
“남 좋은 일 시키지 말고 니가 대시해 보는 게 어때? 그러면 우리 사업에 굉장히 도움이 될 거야.”
오준태는 깍두기를 으적으적 씹다가 김상복을 노려보았다. 이 우라질 놈이 누구를 호빠로 만들려고 이러나. 도가니탕집은 IMF인데도 손님들이 가득 차 있었다. 뉴스에서는 여기저기 기업이 쓰러진다고 난리인데도 강남은 돈이 넘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판공비도 좀 줄 거냐?”
오준태는 뚱뚱한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빙긋이 웃었다. 돈을 벌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그거 두 쪽밖에 더 있는가. 변강쇠라고는 할 수는 없어도 여편네 말마따나 400미터나 500미터 달려주면 흐느적거리지 않을까 싶었다.
정혜원이 맡긴 분양권은 생각보다 잘 팔리지 않았다. 주애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오준태가 정혜원의 분양권을 팔지 못해 사흘 동안이나 움켜쥐고서 쩔쩔매고 있을 때였다.
“후배님, 어떻게 선배한테 전화 한 통 안해? 후배가 이래도 되는 거야?”
수화기 저쪽에서 방울이 울리는 것같은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준태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잖아도 정혜원의 분양권을 팔아주지 못해 주애란에게 전화라도 해볼까하고 있던 중이었다.
“선배님한테 전화 드렸다가 남편에게 혼날까봐 삼가고 있었습니다. 저야 선배님한테 몇 번이나 전화 드리고 싶었지요.”
오준태는 선배를 핑계로 너스레를 떨었다.
“됐네요. 엎드려 절 받는 거 같잖아.”
“그런데 웬일이십니까? 설마 저에게 또 맛있는 거 사주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호호호. 무슨 후배가 얻어먹을 생각밖에 안해?”
“하하하. 좋습니다. 지난번에는 얻어먹었으니까 이번에는 제가 사겠습니다. 저녁 때 시간이 있습니까?”
“우리 후배 생각보다 응큼한 거 같네. 저녁에 술 먹여서 호텔이라도 데리고 가려고 그래?”
“아이고 선배님께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선배는 여자 아니야? 설마 내가 유혹을 받지 못할 정도로 늙었다는 뜻은 아니겠지?”
“늙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야 선배님 같은 미인이라면 얼마든지 유혹을 하고 싶습니다. 유혹에 넘어올지는 모르지만요.”
“호호호. 그러면 점심 때 신촌으로 와. 내가 5시까지 시간이 비어 있어서 그래.”
“그러죠. 12시에 신촌에 가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오준태는 주애란과 통화를 끝내자 시간을 보았다. 시간은 벌써 10시 30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촌까지 가려면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운전은 할 줄 알지?”
오준태가 전화를 하는 것을 소파에 앉아서 지켜보던 김상복이 자동차 키를 내밀었다. 김상복의 차는 3000㏄급 고급 승용차였다.
“괜찮아. 택시 타고 가지 뭐.”
오준태는 김상복의 차를 끌고가는 것이 부담이 되어서 사양했다.
“인마, 그 선배는 부티가 줄줄 흐르잖아. 아파트 분양권을 깎지도 않고 사는 선배인데 척 보면 모르겠어? 그 선배가 너를 찍었으니까 궁상떨지 말고 차 끌고가.”
오준태는 김상복의 말에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나왔다. 주애란에게 간단하게 점심이나 대접한 뒤에 정혜원의 분양권 이야기나 할 생각이었다. 사주면 고마운 일이고 사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김포 쪽에 괜찮은 장어요리집이 있는데 시간 괜찮아?”
신촌 로터리에서 조수석에 올라탄 주애란이 톡 쏘는 화장품 냄새를 풍기면서 물었다.
“저야 가진 것이 시간밖에 없습니다.”
오준태는 옆자리에 앉은 주애란의 풍만한 가슴을 눈으로 더듬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