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3일 수갑을 차고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검찰 수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한 경제계 인사는 “식사 시간이 되면 뭘 먹을지 물어보지도 않고 제일 싼 메뉴를 시켜줬다. 밥을 잘 먹으면 잘 먹는다고 비아냥대고, 밥을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구박했다”면서 인간적으로 모멸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의자 기를 꺾어놔야 수사가 잘 된다고 믿는 검사들이 많다. 증거로 승부를 보려 하지 않고 피의자를 압박해 자백을 끌어내려는 거다. 검사들에겐 그게 제일 쉬운 방법이니까 외부에서 문제라고 해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하는 고문은 불법이지만 검찰이 피의자를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면서 “당하는 입장에선 고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예를 들어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그냥 불구속 기소하면 되는데 계속 재청구한다. 일단 구치소에 들어가면 피의자는 검찰에 협조적이 된다. (교도소와 달리 노역도 안하고) 그냥 갇혀 있는 건데 뭐가 힘드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름이나 겨울을 나는 것이 무척 힘들다. 몇 개월 지나면 죄가 없어도 검사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빨리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우리나라 검사들은 (범죄를) 털어 놓을 때까지 계속 괴롭히는 식으로 수사를 한다. 일반인들은 검찰에 괴롭힘당하고 나면 무죄를 선고받아도 변호사 비용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말했다.
검사들이 피의자 기를 꺾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망신주기식 수사다. 검찰은 지난 3일 구속영장 실질 심사에 출석하는 이재수 전 사령관에게 수갑을 채워 논란이 됐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는 검찰이 이 전 사령관에게 수갑을 채운 것은 분명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는 “도주 우려나 인치장소의 안전과 질서를 훼손하는 경우에 한해 수갑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전 사령관은 어디에 해당되느냐”면서 “상식적으로 영장실질심사에 스스로 출석한 피의자가 도주 우려가 있는가. 기무사령관까지 지낸 분이 인치장소의 안전과 질서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서 변호사는 “김재철 전 MBC 사장 변호를 맡았었는데 그때도 검찰이 근거 없이 수갑을 채우려 하더라. 내가 강력하게 항의해서 막았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검찰의 밤샘 조사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밤샘 조사는 피의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못하지만 동의 안하면 계속 부르겠다고 하니 거부할 수가 없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 유의미한 진술은 대부분 새벽에 나온다. 체력적으로 지치니까 방어권 행사가 잘 안 된다”고 말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이 직접 특정 사안 수사를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관행이 무리한 수사를 부추긴다. 그런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하면 검찰 입장에서는 답이 정해진 수사가 된다. 검사가 ‘수사해보니 문제없다’고 하면 최고인사권자인 대통령을 바보로 만드는 것 아닌가. 검사 입장에서는 죄가 없으면 죄를 만들어서라도 잡아넣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수사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방산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산비리는 이적 행위”라고 지적한 후 출범했다. 합수단은 지금까지 34명을 구속 기소했지만 이 중 17명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합수단 출범 계기가 된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2016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황 전 총장은 무죄 판결 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검사가 외로우실까봐 잡범들이 있는 단체실에 넣어드렸다고 말했다”면서 “조사 내내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체육계 비리를 뿌리 뽑겠다며 강력하게 추진한 ‘스포츠 4대악 척결’ 수사도 논란이 됐다. 당시 수사를 받은 한 스포츠종목 협회장은 “회장 자격으로 경조사에 화환 보낸 것까지 모두 횡령이라고 하면서 나를 구속시켰다. 담당 검사에게 ‘이런 것이 횡령이면 전임 회장도 모두 잡아넣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까 ‘재수 없게 걸렸다고 생각하라’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전직 협회장은 “검사가 잘못만 인정하면 집행유예를 받게 해주겠다고 하더라. 나는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버텼더니 결국 실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적폐청산이라는 구호 아래 이 같은 행태가 더 잦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 세월호 유족 사찰, 계엄령 문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을 언급하며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이 중 계엄문건 사건은 검찰이 3개월 넘게 수사에 매달렸으나 쿠데타 모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하고도 고작 군인 3명을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플리바게닝(수사에 협조하면 감형) 제도가 없지만 검사들은 사실상 플리바게닝 제도를 자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수사에 협조한 피의자의 구형량을 낮춘다든가,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는 등 검사 선에서 얼마든지 형량을 조절할 수 있다.
서정욱 변호사는 “형량을 줄여준다고 하면 검찰 입맛에 맞게 거짓 진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법원에서 이런 식으로 나온 증언도 모두 인정을 해주니까 문제”라고 했다.
앞서의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검찰이 너무 과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검찰 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늘 흐지부지됐다. 결국 정권이 바뀐 후 검찰에게 당하지 않았나. 이번 기회에 제도적으로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