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레진코믹스 사옥 앞에서 웹툰 작가들의 집회가 열렸다. 작가들은 한 전 대표의 필명인 ‘레진’이 ‘나의 보람’의 원작자로 표기되어있는 것을 문제 삼았다. ‘나의 보람’의 A 작가 측은 작품의 스토리 라인에 레진의 기여도가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레진은 작품 내 갈등 구조, 캐릭터 설정 등 자신이 실질적으로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반박했다. 현재 해당 작품의 원작자는 레진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그는 작품 수익의 15%를 가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일요신문’이 A 작가의 대리인으로부터 전달받은 고소장과 불공정거래행위 신고서에 따르면 A 작가는 레진코믹스와 2013년 2월 1일 정식 계약을 맺고 그해 6월부터 11월까지 웹툰 ‘나의 보람’을 연재했다. 그러나 이 둘이 처음 만난 시기는 그보다 앞선 2012년 7월이다.
한 전 대표와 A 작가의 SNS 대화.
A 작가에 따르면 당시 몇 차례의 미팅에서 레진이 캐릭터 이름과 장르 정도를 제안했다고 한다. 줄거리·콘티·대본 등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A 작가가 전체 스토리와 캐릭터표를 레진의 메일로 보내면 ‘오오 좋은데요. 힘내세요!’, ‘제가 뭐라할 것 없이 잘하셨어요!’ 등의 간단한 피드백을 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8화 이후로는 끊겼다고 한다. A 작가는 이후 완결까지 레진의 피드백 없이 모든 스토리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A 작가의 대리인은 “글작가는 매화 대본을 써서 보내는 사람을 말한다. 총 26화 중 8화까지만, 그것도 피드백만 제공한 사람을 원작자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대신 레진이 작품 홍보 부분에선 도움을 줬다. A 작가의 대리인에 따르면 레진은 A 씨의 데뷔 과정을 직접 기획했다. 그는 레진코믹스 정식 오픈 전이었던 2013년 2월 A 작가에게 “네이버 도전만화 코너에서 ‘나의 보람’을 선연재해라. 도전만화에서 그림을 그리던 웹툰 지망생이 레진코믹스로 스카우트되는 상황을 연출하자”고 제안했다. 경쟁사 플랫폼을 자사 홍보용으로 이용한 셈이다. 레진은 네이버 도전만화에 올라온 ‘나의 보람’ 1화를 확인한 뒤 A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정사항을 지시하기도 했다.
A 작가는 레진의 지시대로 2013년 2월부터 약 두 달간 네이버에서 ‘나의 보람’을 연재하며 고정독자층을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보람’은 A 작가 단독작품이었다. 작품은 9점 후반대의 높은 평점을 받으면서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고 레진코믹스 개설을 한 달여 앞둔 2013년 4월 26일 A 작가는 “레진에서 정식 연재를 하게 됐다”는 마지막 공지문을 올렸다. 이후로 독자들 사이에서 “실력 있는 작가는 레진이 모셔간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A 작가의 마지막 공지문에는 ‘레진이 다 데려간다’, ‘이제 레진에서 봐요’ 등 레진에 뛰어난 작가들이 많음을 암시하는 댓글이 남아있다. 이런 까닭에 레진이 A 작가의 작품을 홍보하는 데 도움을 주려한 것이 아닌 A 작가와 그의 작품을 활용해 레진코믹스를 홍보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A 작가가 원래 준비한 포스터와 변경된 포스터. 레규연 제공
A 작가의 대리인은 “A 작가가 처음에 준비했던 그림과 달리 반나체의 여고생을 그린 그림이 홍보 포스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A 작가는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수음 표현은커녕 알몸의 여성을 직접 그려본 적도 없었다”고 전했다.
‘나의 보람’이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직후 레진은 A 작가에게 “나의 보람은 나와 같이 만든 작품이므로 글작가로 나의 이름을 올리고 수익 30%를 달라”고 주장했다. A 작가와 레진코믹스가 맺은 계약서에는 글·그림 작가의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다. 글작가의 수익분배에 대한 조항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는 별도의 계약서 수정 없이 ‘나의 보람’ 수익의 30%를 레진에게 임의로 배분했다. 레진과 레진코믹스 사이의 계약서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A 작가가 이를 문제 삼자 레진은 “작가님을 배려해 30%의 절반만 받겠다”며 새로운 계약서를 가져왔다고 했다. 이후로도 ‘나의 보람’은 레진 원작의 웹툰 작품으로 여기저기 소개됐다.
A 작가가 계약서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다. 자신이 쓴 두 개의 계약서 모두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작성됐기 때문이다. 그는 2017년 12월 레진코믹스 측에 저작권을 돌려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지만 회사로부터 비밀유지서약서를 작성하면 저작권 침해사실을 인정하고 수익금을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A 작가는 “비밀유지서약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자 합의가 결렬됐다. 합의를 하지 않자 회사는 레진의 이름을 빼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레진코믹스는 12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질의사항을 메일로 남겨줄 것을 부탁했다. 레진코믹스로부터 “회사의 미숙했던 업무 처리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의 보람’ 원작자 문제는 양측의 주장이 달라 회사가 계약의 정당성이나 적절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편 레진의 법률대리인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한 전 대표가 자신이 ‘나의 보람’ 원작자라는 입증자료를 찾는 중”이라며 “구체적인 사실 논박은 조사과정에서 다루겠다”고 밝혔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크고작은 작업 시키며 햄버거로 달래” 레진코믹스 갑질 의혹 레진코믹스 미성년자 착취 논란의 주인공이 된 A 작가는 2013년 6월 7일 레진코믹스 정식 출범 이전부터 회사와 정식연재 계약을 맺은 몇 안 되는 웹툰 작가다. 그는 회사 설립 초창기부터 레진코믹스와 관련된 크고 작은 그림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A 작가는 “레진코믹스라는 사이트가 개설하고 만든 ‘레진코믹스 이용가이드’ 만화와 레진코믹스의 CI(기업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기업 로고나 상징)채색, 제1회 세계만화공모전 홍보 만화 모두 내 손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 대표의 부탁이기 때문에 당연히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을 진행할 때마다 매번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나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 제작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지불받지 못했다고도 말했다. A 작가의 법률대리인은 “제1회 세계만화 공모전 홍보 만화의 경우 현재까지 그 제작비가 지급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 전 대표는 미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선릉역의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를 사주며 A 작가를 달랬다”는 말도 덧붙였다. 레진에서 웹소설을 연재했던 비담 작가는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레진코믹스는 계약서에 명시되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레진이라는 글작가에게는 2013년부터 수개월간 수익을 분배했으면서도 정작 그림 작가들에게는 정당한 임금 지불을 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레진코믹스는 “미지급된 임금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