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동춘의 말이 맞았어.’
작전세력은 증권회사 직원들과 야합하지 않으면 성공이 불가능했다. 장은숙은 여러 날에 걸쳐 라이브전자 주식을 3000원 안팎에 3만 주나 사들였기 때문에 작전세력이 본격적으로 개입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증권가에서 작전세력을 뒤따라 매수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주식을 팔아 차익을 챙기는 무리들을 하이에나라고 불렀다. 지금 장은숙이 하이에나가 되어 작전세력이 사냥한 고기를 뜯어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은숙은 주식이 1만 5000원대까지 오르면 작전이 끝날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동춘입니다. 얼마나 매수했습니까.”
김동춘이 전화를 걸어왔다.
“3만 주를 매수했어요.”
장은숙은 속삭이듯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동춘과 보낸 뜨거운 밤이 뇌리에 떠올라 아랫도리가 저릿했다. 그와의 정사는 황홀했다.
“그러면 1만 주 정도 더 매수하세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장은숙은 주식이 3000원 안팎에서 3만 주를 매수하면서 9000만 원을 투자했다. 1만 주를 추가 매수하면 4000만 원 정도 더 들어간다.
“내가 자리를 걸고 하는 일입니다.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김동춘이 약간 볼멘소리로 말했다. 둘이서 살을 섞고도 믿지 못하느냐는 투였다. 사실 장은숙도 1만 주를 더 매수하려 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동춘을 떠보고 있는 것이다.
“알았어요. 내일 오전 중으로 매수할게요.”
한꺼번에 대량으로 한 종목을 매수하면 증권감독원에서 수상하게 볼 수도 있었다. 장은숙은 김동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김동춘은 의외로 힘이 좋고 테크닉이 능수능란했다. 사흘 전 그와 모텔에서 뒹굴었을 때 장은숙은 몇 번이나 오르가슴에 도달했다. 오르가슴이 연쇄폭발을 하듯이 그렇게 여러 번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자기, 저녁에 시간 있어요?”
장은숙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김동춘에게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작전세력을 추격 매수한다는 흥분과 김동춘의 나신이 떠올라 몸이 더워왔다. 김동춘과 다시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었다.
“미안합니다. 오늘은 약속이 있는데 어떻게 하죠?”
김동춘이 뜻밖이라는 듯이 정중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만나요.”
장은숙은 은근히 화가 치밀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김동춘과 격렬한 사랑을 나누고 싶어 먼저 수작을 걸었는데 거절을 당한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김동춘이 약속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녀의 손이 빠르게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애무했다. 남자를 만나려면 나이트클럽이나 카바레에 가도 얼마든지 조달할 수 있다. 몇 번 가지는 않았으나 호스트바도 있었다. 라이브전자는 폐장 때까지 3600원 선을 유지했다. 몇 번 등락을 되풀이하기는 했으나 전반적인 상승세였다. 장은숙은 장이 끝나자 복기를 하듯이 매수를 한 종목을 점검한 뒤에 책상에서 내려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요즘 왜 이렇게 욕망이 일어나지?’
욕망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창밖은 어둠스레해지고 있었으나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자위를 했다. 남편과 이혼한 뒤에 욕망이 더욱 맹렬하게 솟구치고 있었다.
“장 여사십니까. 나 박인철입니다.”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박인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박인철은 증권회사에 근무하다가 IMF가 닥치면서 투자전문회사인 문성창업투자로 옮긴 자였다. 박인철을 믿고 투자했다가 장은숙은 막대한 손실을 봤기 때문에 그의 전화가 달갑지 않았다.
“박 차장님, 오래간만입니다.”
장은숙은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았다.
“글쎄요….”
“핫핫핫. 저 나쁜 놈 아닙니다. 제가 손해를 끼쳐드렸기 때문에 미더워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만회할 기회는 주셔야죠.”
박인철이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린 뒤에 너스레를 떨었다. 박인철은 깔끔하지만 능글맞은 사내였다.
“투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장은숙은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애무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남자의 전화를 받으면서 애무를 하자 나르시스하면서도 기분 좋은 쾌감이 전신으로 물결처럼 번져나갔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굉장히 큰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도 정보인데 만나서 들어보고 거절하든지 말든지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장은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인철을 그다지 신뢰할 수는 없었으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시간과 장소를 정하세요.”
“동교호텔 커피숍에서 7시 어떻습니까.”
“좋아요.”
이미 5시가 지난 시간이었으나 서두르면 늦지 않을 수가 있었다. 장은숙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택시를 타고 동교호텔로 달려갔다. 술을 마실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 일부러 차를 끌고 나가지 않았다. 박인철과 이야기를 끝낸 뒤에 호스트바에 갈 수도 있었다. 커피숍에는 뜻밖에 30대의 젊은 남자도 함께 있었다.
“인사들 나누십시오. 여기는 젊은 사업가 이영훈 씨고 이쪽은 장은숙 여사입니다.”
박인철이 젊은 사내를 장은숙에게 소개했다. 젊은 사내는 호리호리하면서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었다. 박인철은 미끈하게 생긴 40대 초반인데 이영훈은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 같은 타입의 30대였다. 눈매가 서늘하고 콧날이 오똑해서 보기에 좋았다.
“반갑습니다.”
이영훈이 목례를 했다. 머리가 계집애들처럼 길었으나 보기 싫지는 않았다. 장은숙은 남자의 꽁지머리를 가장 싫어했다.
“네. 반가워요.”
장은숙은 이영훈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영훈이 약간 놀란 듯한 표정으로 장은숙의 손을 잡았다.
“이 친구는 추리소설 작가입니다. 요즘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e-북이라는 IT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e-북이요?”
장은숙은 새삼스럽게 이영훈을 쳐다보았다. 어쩐지 이름이 낯익더라니 소설가였구나. 하지만 궁상 떠는 소설가가 무슨 돈이 있어 사업을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영훈의 옷차림은 상당히 세련되어 있었다.
“컴퓨터로 보는 책 말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온라인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영훈 사장의 회사가 코스닥 상장을 하면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일본야후가 주식 한 장에 1억 원이라는 것은 들어보셨지요?”
“네.”
장은숙도 손정의 사장이 야후주식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손정의는 아시아의 갑부였다.
“우리나라도 인터넷으로 엄청난 돈을 버는 시대가 1년 안에 들이닥칩니다. 코스닥까지 생겼으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주식시장이 춤을 추게 될 겁니다. 아직 법이 미비해서 치고 빠져 나올 수 있습니다.”
“전 너무 복잡한 것은 잘 몰라요.”
장은숙은 IT사업이니 코스닥이니 하는 것은 잘 몰랐다. 데이트레이딩도 몇 년 동안 돈을 버리면서 이제 겨우 깨우친 것이었다.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합시다.”
박인철이 웃으면서 동교호텔 내의 일식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식집에서는 음식이 나오는 동안 이영훈이 IT산업의 전망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다.
“요점은 투자를 받은 뒤에 코스닥 상장을 하는 것입니다. 상장을 한 뒤에 팔아버리면 수백 억을 챙길 수 있습니다.”
이영훈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영훈이 수백 억을 벌면 나는 얼마를 번다는 거야?’
장은숙은 열정적으로 사업 설명을 하는 이영훈에게 감동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