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인도출장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요신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해만 두 번째 인도 출장길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조우로 관심을 모았던 첫 출장에 이어 이번에는 인도 최고 갑부 딸 결혼식 축하연 참석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선 이 부회장의 출장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급기야 이 부회장의 인도출장이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 철수 결정과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인도판 ‘세기의 결혼’에 참석한 이 부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9일(현지시간) 인도 최대 갑부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의 딸 이샤 암바니의 결혼식 축하연에 참석했다. 이날 열린 축하연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한 골드만삭스, JP모간, 스탠다드차타드 등 재계 CEO들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비욘세, 아리아나 허핑턴 등 전 세계 유명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샤 암바니는 또 다른 인도의 부호 아자이 피라말의 아들 아난드 피라말과 결혼했다. 이들의 결혼은 인도판 ‘세기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다. 결혼식은 12일 뭄바이에서 열렸지만 축하행사는 앞선 주말부터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축하연에만 참석했다.
암바니 가문의 재산은 47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53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릴라이언스 그룹은 인도 최대의 민간기업으로 전력, 석유 채굴, 금융, 바이오, 통신,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삼성전자는 릴라이언스 그룹 산하에 있는 통신업체 릴라이언스 지오와 지난 2012년 4G LTE 네트워크 장비 공급계약을 맺고 2014년부터 인도 전역에 4G통신망을 구축했다.
앞서 지난 7일 이 부회장은 2019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승진한 노태문 사장과 뉴델리 인도법인을 들려 인도 스마트폰 사업을 점검했다. 현지 생산 확대 방안 및 중저가폰 스펙 상향 등 스마트폰 판매 확대 전략을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인도 시장 내 점유율은 1위다. 삼성전자의 인도 스마트폰 시장은 지난해 14% 성장률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에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샤오미,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도 공격적으로 인도 시장에 진출하며 업체 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인도법인 SIEL은 올 3분기까지 매출 8조 6752억 원, 당기순이익 3596억 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 동기대비 매출은 1.7% 늘었지만 순이익은 43.5% 줄었다. 순이익이 크게 감소한 이유는 노이다 신공장 준공으로 인한 투자 확대도 있지만 지난해 4분기 샤오미에게 인도 시장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중국 업체들의 맹추격을 받은 영향이 지배적이란 분석이다.
이 부회장의 이번 인도 출장 역시 인도 시장만큼은 놓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IT·모바일(IM)부문은 스마트폰 경쟁 심화에도 갤럭시 혁신을 거듭하며 연간 매출 100조 원에 영업이익 10조 원을 기록하고 있지만 인도 등 신흥시장 주도권을 잃어버릴 경우 실적 급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 시장은 무선사업부를 넘어 네트워크사업부에도 중요한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인도 이동통신사 릴라이언스 지오에 4G 네트워크 장비를 공급하는 등 인도에서 10만개 이상의 네트워크를 설치했다. 내년 5G 대중화를 앞두고 인도는 네트워크 장비 주요 시장으로 꼽힌다.
이 부회장이 암바니 딸 결혼식 축하연에 참석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이다. 인도 최대 통신재벌 등과의 네트워킹이 삼성전자의 네트워크사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중국 톈진 공장 가동을 이달 말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중국 톈진과 광둥성 후이저우 두 곳에서 휴대폰 공장을 운영해 왔다. 톈진 공장은 주로 수출용 스마트폰을 만들고 후이저우 공장은 중국 내수용 스마트폰을 생산한다.
지난 7월 인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인도 모디 총리의 모습. 그 사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삼성전자의 철수 결정은 중국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한 가운데 인도, 베트남 등 신흥시장에 역량을 집중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3년만 해도 19.7%로 1위를 달리다 최근 0%대까지 추락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생산기지는 베트남과 인도로 전체 휴대폰 가운데 절반 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지난 7월에는 인도 노이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폰 공장을 완공해 중국 경쟁업체에 맞서 생산단가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에선 삼성의 이런 전략에도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등질 수 없는 만큼 삼성전자의 고심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미 중국시장의 프리미엄폰은 애플에게, 중저가폰은 중국기업들에 밀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이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갤럭시A8s’ 공개행사에서 “삼성과 중국 제조사들의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중국 스마트폰 시장 공략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시되는 ‘갤럭시A8s’는 ‘인피니티O’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인피니티O는 애플의 아이폰X(텐)에 적용된 ‘노치’보다 한 단계 앞선 디스플레이로 평가받는다. 이외에도 6GB 램에 128GB 저장 용량, 3400mAh 배터리 용량 등의 고사양을 갖췄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신제품을 출시하고 중저가 제품에 최신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방안 등을 무기로 내세운 셈이다.
그럼에도 중국 현지 전문가들은 이미 중국 로컬폰들의 기술력과 생산력이 삼성전자를 위협한 수준인 만큼 결과적으로 반전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은 2007년 전무시절부터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 순회 근무를 접했다. 이건희 회장의 뜻에 따라 경영수업에 전념하면서도 중국과 인도의 인적네트워크를 중요시 하며 이제껏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과거에도 중국 보아오포럼과 미국 선밸리콘퍼런스 등 네트워크 관리에 힘써왔다.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번 인도 출장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을 둘러싼 비판적 여론과 국정농단 재판 등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치소 출소 후 인도 출장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조우한데 이어 이번 인도판 ‘세기의 결혼’ 참석까지, 그의 광폭 행보가 삼성전자의 절박한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