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재정위원회에 참석했다가 취재진에 입장을 밝힌 전창진 전 감독. 연합뉴스
[일요신문]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이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은 이튿날. 2014년 대회에 이은 2회 연속 본선 진출의 쾌거를 달성한 선수들에게 향해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전혀 무관한 한 전직 프로농구 감독에게 비춰졌다. 그 주인공은 전창진 전 KGC감독으로 2015년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선 그를 취재하기 위한 열기는 뜨거웠다.
#무혐의·벌금형에 대한 여론 반발
전 전 감독은 지난 2015년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감독직을 내려 놓았다. 이후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포폰으로 불법 스포츠도박 이용자들과 통화를 한 정황이 포착돼 의혹의 시선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했다.
또한 단순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항소심에서는 벌금 10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승부조작과 도박 논란에 휘말리며 농구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도 박탈당했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그가 감독직에서 사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정위원회를 열어 무기한 KBL 등록 자격 불허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그가 승부조작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농구계에선 이따금씩 ‘전창진이 돌아올 것’이라는 루머가 흘러나왔다. 프로농구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 관중석을 조용히 찾았다는 목격담도 심심치 않게 전해졌다.
온라인 댓글에 불과했지만 그간 ‘그를 데려와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저조한 성적을 내는 구단을 향해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더욱 두드러졌다. 그가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무성한 소문 속에 전 전 감독의 복귀가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전주 KCC 이지스 구단은 보도자료를 내며 전 전 감독의 수석코치 선임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무기한 등록 자격 불허 조치가 걸림돌이었다. KCC 구단은 코치 등록 서류를 보냈고, 이를 받은 KBL은 재정위원회 개최를 결정했다.
KCC 측의 자신감 있는 행보에 농구계에선 ‘이미 어느 정도 합의가 된 사항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KBL 측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전 전 감독의 복귀 시도 소식이 전해지자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이들은 승부조작 등과 관련해 무죄가 아닌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를 받았고, 단순도박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받았으며, 통신사(KT)가 모기업인 구단 감독으로서 대포폰(차명 휴대전화) 사용 등을 반대 이유로 내놨다. KBL 측에서는 “여론을 주시 중”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그의 징계 지속을 논할 재정위원회가 열렸다. 전 전 감독도 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인터뷰는 없을 것”이라던 예고와 달리 회의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호소문과 함께 취재진 앞에 나서 직접 입을 열었다. 전 전 감독은 “농구계에 상처를 남겨 사죄드린다”면서 “기회를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배포한 호소문에서도 “농구인과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되갚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와 KCC 구단의 바람과 달리 KBL의 선택은 ‘승인요청 불허’였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조승연 재정위원장은 “법리적 상황, KBL 규정을 고려했고 팬들의 기대와 정서도 고려했다”며 불허 결정 과정을 밝혔다. 또한 “등록불허 처분을 내린 2015년 이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혐의를 무죄로 보지 않는다”며 팬들의 시각과 궤를 같이 했다.
KCC는 지난 7일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에 ‘대행 꼬리표’를 뗐다. 계약기간은 이번 시즌까지다. 사진=KBL
전 전 감독의 복귀 시도는 현재 해프닝으로 일단락 됐지만 큰 파장이 일었다. ‘재시도’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KCC는 KBL 재정위에 앞서 전 전 감독을 수석코치로 임명했지만 등록이 불허되자 기술고문직을 맡겼다. 이후 기존 스테이시 오그먼 감독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발표된 계약 기간은 이번 시즌 종료 시점까지였다. 기술고문으로 전 전 감독을 품으며 또 다시 복귀를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조 위원장은 불허 이유를 설명하며 대법원에 상고 중인 단순도박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 결과에 따라 복귀 여부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조 위원장은 이에 대해 “그 때 가서 다시 논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전 전 감독의 행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우선 그와 KCC 구단이 나선 시점에 대한 아쉬움이다. 구단은 지난달 30일 그의 수석코치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달 26일부터 시작된 프로농구 휴식기를 맞춘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국가대표 일정과 겹쳤다. 12월 3일 KBL 재정위원회가 곧바로 열리며 직전 열린 대표팀에 온전히 시선이 쏠리지 못했다.
또한 현장 복귀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아닌 구단의 힘을 빌렸다는 지적도 나왔다. 구단이 깔아준 판에 전 전 감독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를 달성하고 감독상만 5회를 수상한 명감독이다. 스스로 나서 소명하고 사과할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전면에 나섰다. 그는 2년 전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고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전창진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내 발로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강한 재기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