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든글러브, 수상 기준은 어떻게 변화해왔나
골든글러브 수상자에게는 말 그대로 커다란 황금색 글러브가 주어진다. 안타깝게도 순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금칠이 돼 있는 글러브다. 원 소재가 가죽이라 실제 경기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하는 선수는 없다. 금칠이 된 가죽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에는 메이저리그나 일본처럼 수비율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결정했다. 수비상이라 지명타자 부문은 시상하지 않았고, 수상자들 가운데는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한 선수들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1983년부터는 공격과 수비를 아우르는 포지션별 최고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탔다. ‘수비율’이라는 척도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984년부터 지명타자 부문이 신설돼 사실상의 ‘베스트 10’이 됐고, 1986년부터 외야수 부문도 좌·중·우익수를 가리지 않고 통합해 투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야구기자협회 소속 언론사 취재기자만 투표할 수 있는 정규시즌 MVP나 신인왕과 달리, 골든글러브 투표에는 사진 기자단, 방송사 PD, 아나운서, 해설위원 등 미디어 종사자들이 폭넓게 참여한다. 올해만 해도 총 385명이 투표인단 자격을 얻었고, 그 가운데 349명이 투표 권리를 행사했다.
2018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 10일 오후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정훈 기자
사실 예전에는 포지션별로 확고하게 굳어진 선정 기준이 없고 매년 리그 양상에 따라 마지노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종종 후보 선정과 수상 결과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2년에는 지명타자(50경기)보다 1루수 출전(80경기)이 더 많았던 이승엽이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을 수상해 문제가 됐고, 2015년엔 18승을 올린 두산 투수 유희관(평균자책점 3.94)이 ‘평균자책점 3.50 이하이면서 15승 이상이거나 30세이브 이상을 올린 투수’라는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후보에도 들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2015년 역대 3번째로 포수 전 경기 출장을 달성한 NC 김태군 역시 ‘타율 3할 이상’이라는 기준에 미달해 포수 부문 후보에서 누락됐다. 이 때문에 후보 선정 기준을 매년 조금씩 손질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부터 올해와 같은 기준으로 굳어졌다. 투수 부문은 규정 이닝을 채우거나 10승 이상, 30세이브 이상, 30홀드 이상 중 한 가지 기준에 해당하면 된다. 포수와 야수는 해당 포지션에서 720이닝(팀 경기 수*5이닝) 이상 수비로 나선 모든 선수가 후보다. 지명타자는 규정타석의 ⅔인 297타석 이상을 지명타자로 타석에 들어서야 후보에 오를 수 있다. 단 정규 시즌 개인 부문별 1위 선수는 자격 요건과 관계없이 해당 기준을 충족한 포지션 후보로 자동 등록된다. 타이틀 홀더가 어느 포지션에서도 수비 이닝을 채우지 못했을 경우에는 가장 많은 수비 이닝을 소화한 포지션의 후보로 올라간다. 또 수비 이닝과 지명타자 타석을 비교해야 할 경우에는 각 기준 대비 비율이 높은 포지션의 후보로 분류된다.
# 최다 득표자 양의지, NC 소속으로 받을 뻔
올해 골든글러브 최다 득표자는 포수 부문 양의지였다. 두산 소속으로 뛴 양의지는 총 유효투표수 349표 가운데 94.8%에 달하는 331표를 얻어 황금장갑을 품에 안았다. 2위 이재원(SK·11표)과 무려 320표 차. 2014~2016년 3연패에 이어 개인 통산 네 번째 골든글러브다.
양의지는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 공수겸장 포수다. 올 시즌 133경기에서 0.358 23홈런 77타점 84득점 출루율 0.427 장타율 0.585를 기록해 타율과 출루율 2위에 올랐다. 공격뿐 아니라 투수 리드와 경기 운영, 도루 저지를 비롯한 포수 수비에서도 현역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올해 861⅓이닝을 포수로 수비하면서 도루 저지율 0.378을 기록해 후보에 오른 포수 7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남기기도 했다. 무엇보다 양의지의 진짜 가치는 함께 호흡을 맞췄던 투수들의 평가를 통해 드러난다. 그와 배터리를 이룬 투수 대부분이 “양의지의 리드는 확실히 다르다. 투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능력도 탁월하다”고 입을 모으곤 했다.
사실 양의지는 하마터면 두산이 아닌 NC 소속으로 골든글러브를 받을 뻔했다. 시상식 바로 다음날 소속팀이 바뀐 탓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양의지는 단연 이번 FA 시장 최대어로 꼽혔고,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후로도 FA와 관련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계약에 대해선 지금 할 말이 없다. 이 자리에서는 감사 인사만 하고 싶다”고 말을 아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NC는 양의지와 4년 총액 125억 원에 계약을 마쳤다고 발표했다.
시상식 당시에는 두산 소속이던 NC 양의지 선수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이전까지만 해도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주요 FA들의 계약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 열리곤 했다. 특히 원 소속구단 우선협상기한과 타 구단 협상기한이 따로 정해져 있었던 시기에는 대형 FA들의 협상이 장기화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선수가 한 시즌 동안 몸을 담고 활약한 팀은 따로 있는데 시즌 후 다른 팀 소속으로 상을 받는 어색한 장면이 종종 연출되기도 했다.
이적 직후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첫 사례는 1993년 김광림과 한대화였다. 당시 OB 유니폼을 입고 활약한 김광림이 시즌 후인 11월 23일 쌍방울로 트레이드됐고, 12월 4일에는 해태의 간판타자였던 한대화가 LG로 트레이드됐다. 그해 12월 11일에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광림은 외야수 부문 2위로 생애 첫 황금장갑을 획득했고, 한대화는 7년 연속 3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김광림의 소속팀은 OB가 아닌 쌍방울, 한대화의 소속팀은 해태가 아닌 LG였다.
당시에는 이런 전례가 없었기에 소속팀에 대한 유권해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소속팀 표기는 향후 프로야구 연감에 역사로 남는 것은 물론, 골든글러브 관련 각종 기록 집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였다. 이후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의 기준도 마련해야 했다. 결국 “팀을 옮긴 선수의 이름 앞에 다시 전 소속팀 명을 표기하는 게 더 이상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고, ‘시상식 당일의 소속팀’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1999년 LG 포수 김동수가 시즌 직후 FA로 삼성으로 이적해 황금장갑을 탔고, 2004년 현대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FA 박진만도 삼성으로 이적한 뒤 골든글러브를 안았다. 재미있는 것은 박진만을 특급 유격수로 애지중지 키운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이 하필이면 유격수 부문 시상자로 나섰다는 점이다. 김 감독은 어색하게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을 호명한 뒤 단상에 오른 박진만에게 상을 주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해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08년 지명타자 홍성흔이 두산에서 롯데로 이적하자마자 골든글러브를 받았고, 2013년 2루수 정근우도 SK에서 한화로 옮긴 직후 황금장갑을 수상했다. 2015년 넥센에서 활약한 유한준은 FA 자격을 얻어 고향팀이자 신생팀인 KT로 이적하면서 팀 최초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박석민 역시 2015년 삼성에서 활약했지만, FA로 NC 유니폼을 입게 돼 새 팀에 골든글러브를 안겼다. 특히 유한준과 박석민은 시상식 일주일 전에 계약을 마친 터라 새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촬영할 시간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골든글러브 팸플릿에는 두 선수의 사진에 유니폼을 새 소속팀 것으로 감쪽같이 합성한 사진이 실렸다. 2016년에는 삼성에서 KIA로 이적한 FA 외야수 최형우도 같은 사례를 남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양의지의 NC 이적이 골든글러브 시상식 다음날 공개돼 두산은 올해 골든글러브 수상자(4명)를 최다 배출한 구단으로 남을 수 있게 됐다. 반면 팀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황금장갑 ‘무관’에 그친 NC는 하루 차로 골든글러브 선수를 배출할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정든 팀을 떠나게 된 양의지는 수상 소감에서 13년간 몸 담은 두산의 동료들을 떠올리며 울먹여 감동을 안겼다. 특히 2011년부터 7년간 에이스와 포수로 호흡을 맞춘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향해 “내 마음속의 영원한 1선발”이라는 헌사를 보냈다. 니퍼트가 한 인터뷰를 통해 양의지에게 눈물의 작별 인사를 전했고, 양의지 역시 “그 영상을 보고 한 시간을 울었다”며 눈물로 화답한 것이다.
두산의 김재환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있다. 박정훈 기자
양의지 외에도 화제의 수상자가 많이 나왔다. 두산 김재환은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트로피에 이어 외야수 부문 황금장갑도 손에 넣었다. 349표 가운데 166표를 받아 외야수 부문 1위. 성적만으로는 충분히 황금장갑을 받고도 남을 만했지만, 이번에도 김재환의 수상을 놓고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2011년 10월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된 이력 탓이다.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김재환이 좋은 성적을 내고 상을 수상할 때마다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꼬리표다. 김재환도 “부족한 내게 많은 응원해주시는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소감으로 에둘러 다시 한 번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롯데 전준우(165표)와 넥센 이정후(139표)는 김재환과 함께 외야수 부문 세 자리를 가져갔다. 타격왕 김현수(LG)가 4위로 밀렸을 만큼 가장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상자 이정후보다 타격 성적이 더 좋았던 KT 외국인 외야수 멜 로하스 주니어가 투표 7위에 그친 사실이 드러나 또 한 번 ‘외국인 선수 홀대’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롯데 이대호는 지명타자 부문에서 198표를 얻어 수상자로 뽑혔다. 올해 144경기에 모두 출장해 타율 0.333 홈런 37개 125타점 81득점을 올린 덕분이다. 이대호는 과거에 이미 1루수 골든글러브를 4회(2006·2007·2011·2017년), 3루수 골든글러브를 1회(2010년) 각각 수상한 이력이 있다. 이번 골든글러브가 개인 통산 여섯 번째 수상이다. 또 한화 장종훈(1루수·유격수·지명타자), 삼성 양준혁(1루수·외야수·지명타자)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3개 부문에서 황금장갑을 낀 선수로 남게 됐다.
2년 만에 KBO 리그에 복귀한 넥센 박병호는 255표를 받아 2014년 이후 4년 만에 황금장갑을 되찾았다. 또 KIA 안치홍은 양의지 다음으로 많은 득표(306표)로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연패에 성공했다. 2루수 부문 2년 연속 수상은 1998년과 1999년 수상자인 롯데 박정태 이후 19년 만이다. 두산 허경민(3루수), 넥센 김하성(유격수), 두산 조쉬 린드블럼(두산)은 생애 첫 골든글러브의 감격을 누렸다. 허경민은 결혼 후 신혼여행도 미루고 시상식에 참석해 직접 아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3년 연속 도전 끝에 꿈을 이룬 김하성은 하필 4주 기초군사훈련 기간과 겹쳐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정규시즌 우승팀 두산은 양의지를 포함해 총 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팀 SK는 차점자만 네 명 내놨을 뿐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빈손으로 돌아선 것은 SK가 처음이다. 대신 에이스 김광현의 페어플레이상과 한국시리즈 MVP 한동민의 골든포토상으로 아쉬움을 풀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한국에만 있는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이대호 “골든 방망이 받은 느낌” 한국의 골든글러브에는 ‘지명타자 부문’이 있다. 그동안 1루수와 3루수 부문 후보에 오르곤 했던 롯데 이대호는 올해 처음으로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골든 ‘글러브’는 수비도 잘하는 선수가 받아야 하는데, 나는 골든 ‘방망이’를 받은 느낌”이라며 “내년에는 다시 1루에서 경기해서 수비로도 인정받고 싶다”고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실제로 그동안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사실 상 이름으로 ‘골든 배트’가 더 어울리지 않느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는 다르다. 메이저리그의 ‘골드 글러브’는 각 포지션에서 가장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따로 상을 준다. 공격력이 가장 뛰어났던 선수에게는 ‘실버 슬러거’ 상을 시상해 완전히 구분한다. 골드 글러브는 1957년 양대 리그 통합 시상으로 처음 시작됐고, 두 번째 해인 1958년부터 리그별로 9명씩 나눠 시상을 해왔다. 아메리칸 리그의 지명타자는 당연히 받을 수 없는 상이다. 골든글러브 트로피 초창기에는 야구기자 19명이 투표했지만, 1965년부터는 각 팀 코칭스태프가 자신의 소속팀을 제외한 선수들에게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최종 투표 결과에는 미국야구통계학회의 지분 25%가 더해진다. 코칭스태프들이 다른 지구 소속팀 야수들의 경기 장면을 자주 보지 못한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다만 수비는 잘하던 선수가 계속 잘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 한 번 받은 선수가 또 받거나 연속 수상하는 일이 잦다. 그레그 매덕스가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단 1년(2003년)만 빼고 무려 18번(13년 연속 수상 포함)이나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를 독식했을 정도다. 일본도 수비력이 강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 글러브’ 상이 따로 있다. 한국의 골든글러브와 같은 개념의 상은 센트럴리그의 ‘베스트9’(지명자타 제도 없음)와 퍼시픽리그의 ‘베스트10’이다. 골든 글러브는 1972년 ‘금보다 비싼 상’이라는 의미를 담아 ‘다이아몬드 글러브’라는 이름으로 제정됐지만, 1986년부터는 지금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골든 글러브는 일본 프로야구 취재 경력이 5년을 넘는 기자들에게 투표권을 준다. 지명타자 부문은 따로 뽑지 않고, 투표수가 같으면 공동 수상을 인정한다. 또 ‘수상자 없음’이라는 표가 과반수를 넘으면 아예 해당 포지션을 공석으로 남겨 둔다. 2010년 센트럴리그 1루수 부문에서 처음으로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독보적인 수비력을 앞세운 선수들이 상을 집중적으로 가져가는 사례가 많다. 한큐 브레이브스의 명 외야수였던 후쿠모토 유타카는 1972년부터 1983년까지 퍼시픽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12년 연속 수상한 대표적 ‘수비의 달인’이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