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국민들 앞에 여러 다짐을 내놓았다. 이들은 1년 동안 그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 홍준표 당시 대표가 2018년 1월 22일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제1야당인 한국당은 △지방선거 승리 △서민‧중산층을 대변하는 정당 △SNS 홍보 △자유민주주의 헌법개정 등의 계획을 다짐했다. 지방선거 성적표는 ‘참혹’ 그 자체였다. 한국당은 TK(대구‧경북)에서 권영진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도지사 단 두 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당초 한국당은 신년사에서 개헌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구조에 대해 ‘4년 연임제’를 내세우자 한국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해야 한다”며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했다. 개헌에 목말랐던 청와대는 6‧13 지방선거와 개헌에 대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한국당은 “졸속 개헌은 반대한다”며 보이콧으로 국회를 파행시켰고 그렇게 올해 개헌은 물 건너갔다. 그러던 한국당이 7월이 되자 갑작스레 개헌을 요구하며 ‘뒷북’을 쳤지만, 그 요구는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지방선거 참패 후 정국 주도권을 노린 전략으로 해석됐을 뿐이다.
한국당은 신년인사에서 ‘선거연령 하향 조정’을 주장했다. 보통 진보정당에서 내세우는 것으로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다. 김성원 당시 원내대변인은 2월 1일 논평에서 “정치권력의 책임성 강화와 선거연령 하향을 통한 참정권 확대를 선언하고 사회적 민주화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이 개헌에 반영되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당은 이에 미온적이다.
한국당은 보수정당 특성상 그동안 선거연령 하향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진보성향이 강한 10대가 투표에 참여할 경우 이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회의에서 한국당을 향해 선거연령 하향을 제안했다. 한국당은 그제야 논의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찬성 입장으로 돌아선 건 아니지만, 향후 당내 의견에 따라 반대로 굳어질 가능성이 없진 않다.
촛불청소년인권연대 또한 민주당‧바른미래당‧민중당‧정의당‧민주평화당과 함께 ‘선거연령 하향 조속 실현’을 위한 정책 협약을 맺은 바 있지만, 한국당은 여기서 한 발 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년 다짐 중 지켜진 것도 있다. ‘SNS 홍보’ 목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 박성중 홍보본부장은 1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반적으로 모든 운동장이 기울어진 이 상황에서 저희들이 살아남기 위해 SNS을 통해서 보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연초부터 작년에 이어 SNS에 가열찬 혁신을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당은 여러 SNS 가운데 유튜브에 사활을 걸고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채널 ‘오른소리’를 통해 정부여당을 견제하는 콘텐츠와 의원 개개인의 홍보 영상도 제공한다.
전 지도부도 유튜브를 위한 활발한 정치를 이어왔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유튜브 ‘김성태 티브이’에서 “한 놈만 패겠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고, 홍준표 전 대표는 ‘홍카콜라’를 통해 돌직구를 던졌다. 정치권 안팎에선 한국당이 유튜브 정착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냈다고 평가한다.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는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은숙 기자
반면,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지방선거 승리 △노동시간 단축 △전기요금 할인제도 연장 △권력기관 개혁을 약속했다.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최초로 PK로 불리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오거돈 부산시장, 송철호 울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당선시키며 쾌거를 이뤘다. 이밖에도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 허태정 대전시장, 이춘희 세종시장, 양승조 충남도지사,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용섭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도지사,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당선시켰다. 전국을 싹쓸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원식 전 원내대표는 1월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관성에 의존하지 말고,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나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것이 결국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연초에 타협을 끌어내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 계획을 이뤄냈다. 1주 7일간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실노동시간 단축법안이 2월 28일 본회의를 통과했고, 7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 원내대표는 신년사에서 “각계각층의 참여와 호응 속에, 국민 통합에 중요한 야당 당대표들과 민주노총의 (청와대 신년인사회) 불참은 아쉬운 대목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립보다는 상생을 위해 사회적 대화가 절실하다”라고 했지만, 민주노총은 지난 11월 21일 탄력근로제(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총 출신인 홍영표 원내대표조차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유감스럽다”라고 말했고, 홍익표 정책위수석부의장도 “여러가지로 경제상황이 어려운데, 지금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홍 수석부의장은 연초 “정부와 한전은 영세상인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전기요금 할인제도의 연장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촉구 드린다”고 했다. 당초 전기요금 할인의 불을 지핀 것은 문 대통령이지만, 민주당은 그의 정책을 지지하고 뒷받침했다. 한국당이 “선심성 폭염정책”이라고 반발했으나 이후 당정청과 한국전력의 협의 끝에 7‧8월 누진제를 완화하는 전기요금 할인이 도입됐다.
민주당은 권력기관 개혁도 다짐했다. 추미애 당시 대표는 1월 1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필두로 정부와 지방, 사회 각 분야에 만연한 관행과 적폐,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데 힘을 모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권력기관 개혁은 통상 공수처(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국정원 개혁,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일컫는다.
그러나 민주당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은 국정원 개혁법은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으나, 한국당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고 반대했다. 공수처 신설과 검‧경수사권도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평행선만 달릴 뿐,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논의할 수 있는 국회 ‘사개특위’도 뒤늦게 구성돼 아직 한창 논의 중이다.
민주당은 이처럼 ‘관행과 적폐, 부정부패를 일소하겠다’고 밝혔으나, ‘서울교통공사 친인척 채용’ 사실이 드러나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때 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