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관련 1심 선고공판일인 7월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박사모 회원들이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외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시소게임으로 끌고 갈 판은 만들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시소게임의 등장’이다. 이는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내려오는 ‘물고 물리는 관계’를 일컫는다. 탄핵 이후 여야 간 시소게임은 없어졌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과 보수 야당의 운명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2년 차 끝자락에 ‘시소게임’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여야 간 물고 물리는 관계가 재형성됐다. 12월 10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YTN’ 의뢰로 12월 3∼7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 2516명을 대상으로 한 12월 1주 차 조사 결과,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49.5%를 기록했다. 9월 4주차와 비교하면, 15.8%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이 기간 부정평가는 ‘31.6%→45.2%’로, 13.6%포인트 증가했다. 민주당은 45.9%에서 38.2%로, 7.7%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한국당은 무려 10.7%포인트(17.0%→24.7%) 상승했다. ‘리얼미터’의 9월 4주 차 조사에서는 26.4%를 기록하기도 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25%대를 찍은 것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이다. 당·청과 한국당 지지율 추세가 반대 곡선을 그린 셈이다. ‘리얼미터’의 12월 1주 차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당 지지율 상승 원인에 대해 “70%는 문재인 정부 실정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당의 현재 지지율 상승 국면은 100% 반사이익”이라고 분석했다. 역으로 말하면 한국당이 잘한 것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다만 문재인 정부 실정이 장기화할수록 야권 대안 세력을 갈구하는 보수 지지층은 느슨하지만 결집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당 지지율 상승은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 야당 필요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전 포인트는 샤이 보수의 본격적인 귀환 여부 및 시기다. 일단 한국당 지지율 변동의 독립변수는 문재인 실정에 따른 당·청 지지율 변화다. 한국당 지지율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해야만 상승하는 종속변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한국당 다른 의원은 “내년 초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까지 갈 수도 있다”며 “집권 중후반기로 갈수록 실정 문제는 계속 부각될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권 한 관계자는 “한때 80% 안팎의 지지율에서 크게 하락한 만큼, 회복 탄력성이 좋을 수도 있다”며 “이 경우 한국당을 비롯해 야당 지지율 상승을 제한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소게임의 승자를 놓고 전망이 맞서는 셈이다.
시소게임을 둘러싼 힘겨루기는 보수 재편의 분수령인 한국당 전당대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당은 내년 초 새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할 예정이다. 당 안팎에선 최근 입당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정치재개 신호탄을 쏜 홍준표 전 의원, 친박(친박근혜)계로부터 출마를 권유받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이 유력한 후보자로 꼽힌다. 이 밖에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주호영 정우택 김진태 심재철 조경태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한국당이 계파 갈등을 촉발하느냐, 내부 혁신을 꾀하느냐’가 샤이 보수의 갈림길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석방설’과 보수 양당 재편 등도 샤이 보수의 안착을 재촉할 변수로 꼽힌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이 ‘박근혜 석방촉구결의안’을 추진한 것은 12월 초지만, 여의도 정가에 ‘박근혜 사면설’, ‘박근혜 석방설’ 등이 제기된 것은 가을께부터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시점과 맞물린다. ‘박근혜 석방설’ 등에 불이 지펴지자, ‘친박 신당설’이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홍문종 한국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이미 신당의 실체가 (당) 바깥에 있다”며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당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 등 태극기부대를 지칭한 것으로 읽힌다.
문제는 현실 가능성이다. ‘박근혜 석방설’부터 ‘박근혜 사면설’, ‘친박 신당설’ 등에는 하나같이 보수진영의 권력 역학구도가 깔렸다. 박근혜 내년 4월 석방설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박 전 대통령 구속 만기일은 내년 4월 16일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대법원 선고가 4월 중순 이내에 나오지 못한다면, 박 전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 주요직을 꿰찼던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상고심 구속 기간(6개월)이 만료되면서 불구속 상태에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11월 28일 구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상고를 포기하면서 징역 2년을 확정 받았다.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 중 첫 확정판결이다. 박 전 대통령이 형을 확정 받은 올해 11월 28일로부터 2년 뒤인 2020년 11월 말까지는 구속 상태라는 얘기다. ‘박근혜 사면설’의 현실성은 더 떨어진다. 지지율이 하강 중인 문 대통령이 내년 8·15 광복절을 맞아 국민통합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전격 사면할 것이란 게 ‘박근혜 8월 사면설’의 핵심이다. 친박계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까지 하락하면,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여권 한 관계자는 “‘박근혜 사면’의 실익이 있느냐”라면서 “정치적 상상은 자유”라고 일축했다. 샤이 보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국면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재판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이 반대했다. ‘리얼미터’가 YTN ‘노종면의 더뉴스’ 의뢰로 12월 7일 하루 동안 전국 성인 남녀 50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5%가 반대한다고 밝혔다. 찬성은 33.2%에 불과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도 보수층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 대통령이 진보층의 반발을 감내할 만한 정치적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친박 신당설’도 마찬가지다. 친박계가 의도적으로 띄우는 ‘신당설’은 내년 초로 예정된 한국당 당권경쟁에서 ‘비박계 주저앉히기’를 시도하려는 전략적 행위에 가깝다. 한국당 내부 구심력을 확보하고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등 옛 동지의 귀환을 막는 일석이조 효과로 노리는 정치적 애드벌룬(띄우기)이다. 유 의원은 12월 7일 서울대 경제학부 특강에서 “제가 생각하는 개혁보수와 바른미래당이 가는 길이 초점이랄까 방향이 조금 맞지 않는다는 괴로움이 있다”며 사실상 결별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계파 갈등은 보수 결집의 변수”라며 “인적쇄신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면 지지율은 도로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안으로 박 전 대통령이 쓴 ‘천막당사’ 같은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탄핵 역풍 속에서도 천막당사를 꾸려 2004년 17대 총선 때 121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의 ‘선거의 여왕’ 별칭을 얻은 것도 이때다. 하지만 진보진영 관계자는 “아직도 복당파니, 잔류파니 등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한국당이 계파 혁신을 꾀할지는 미지수”라며 “나경원 원내사령탑 등장으로 친박계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큰 만큼,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보수진영 전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윤지상 언론인
‘동지에서 적으로…전쟁은 지금부터’ 김병준 vs 친박 구도 주목 ‘동지에서 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설이 부상하면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친박근혜)계의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 지명자였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한창인 2016년 11월 2일 김 위원장을 신임 국무총리에 지명했다. 김 위원장은 10월 말까지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됐다. 불과 2∼3일 사이 거취가 급변한 셈이다. 친박계가 막후에서 ‘김병준 카드’를 띄웠다.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복수의 경로로 ‘김병준 카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참여정부 정책실장 출신인 김 위원장을 앞세워 보수색을 빼고 거국 내각을 띄워 탄핵을 면하겠다는 의도였다. 외치는 박 전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김 위원장에게 넘기는 사실상의 ‘이원집정부제 실험’에 나선 것이다. 김 위원장도 임명 첫날 국민안전처 장관에 박승주 전 여성가족부 장관을 추천하면서 거수기가 아닌 ‘책임총리’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6일 천하에 그쳤다. 비박(비박근혜)계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라며 반발했다. 당시 야당도 ‘국면전환용 쇼’라며 국회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했다. 친박계의 꼼수 정치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벼랑 끝에 몰린 박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8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국회 추천 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도록 할 것”이라며 ‘김병준 카드’를 철회했다. 박 전 대통령이 새 총리를 지명한 지 6일 만이다. 그로부터 1년 8개월 뒤 김 위원장이 구원투수로 재차 등장했다. 그사이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친박계는 당 주류에서 청산 대상으로 전락했다. 김 위원장은 “계파와 진영논리를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혁신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친박계는 분당 가능성까지 열어두면서 김 위원장과 정면충돌했다. 김 위원장이 ‘친박 인적청산’ 국면에서 마이웨이를 외치자, 친박계 중진 의원은 “초월적 권한”이라며 “쳐내려면 한번 해보시라”라고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이 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전국 당협위원장 교체 심사 과정에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친박계와의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당의 향후 권력재편의 1차 분수령인 원내대표 선거는 친박계와 중도파가 지원한 나경원 의원의 승리로 끝났다. ‘김병준 vs 친박계’의 혈투는 이제 시작이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