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2월 12일 오후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이날 실시된 비무장지대(DMZ) 내 시범철수 GP(감시초소)에 대한 남북 상호검증 진행 경과를 보고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장·차관급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 인사검증은 통상 복수로 이뤄져 왔다. 경찰과 국정원 등 사정기관에서 후보자들 개인 신상, 평판 등을 보고해 올리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를 종합해 정리하는 식이다. 군 출신의 경우 옛 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도 인사 검증을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출신의 한 사정기관 관계자 말이다.
“대통령이나 민정수석이 어떤 기관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인사 검증도) 달라진다. 경찰이나 국정원 등이 보고서를 올리긴 하지만 다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찰 보고서를 선호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실세들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올렸다가 정권 내내 밉보인 기관도 있었다. 그만큼, 인사 검증은 정치적인 행위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현 정권 들어선 경찰이 인사 검증을 도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 등의 국내 정보 파트가 사실상 폐지되면서다. 정치권에선 연이은 부실 인사 배경으로 이를 거론하기도 한다. 앞서의 사정기관 관계자는 “인사 검증은 크로스 체크가 기본이다. 한 기관에만 의존하면 여러 부작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경찰이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인사검증 자료 중 일부가 검찰로 넘어간 일이 발생했다. 경찰청 정보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경찰의 민간인 사찰 등을 수사 중인 검찰은 11월 27일 정보국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는데, 여기엔 문재인 정부 첫해 경찰이 보고한 인사검증 파일도 포함됐다.
경찰은 발끈하고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정보국까지 밀고 들어온 것 자체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인사 검증 업무까지 수사하겠다는 것이냐”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우리가 진행한 검찰 고위직 인사 검증 자료를 확인해보겠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검찰 측은 확대 해석 자제를 당부하며 경찰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불쾌해하는 모습이다.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기한이 2017년 12월 31일이다. 이에 따라 집행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정보국이 무슨 치외법권이라도 되는 줄 아느냐. 불법 사찰을 주도한 곳이다. 경찰이 정치적 의미를 덧씌워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여권 핵심 인사들은 내심 검찰을 향한 불편한 속내를 털어놨다. 영장에 기한이 적시돼 있더라도 굳이 현 정권 관련 자료까지 검찰이 가져갔어야 했느냐는 얘기다. 검찰이 확보한 자료엔 문재인 정부 첫 개각 당시 하마평에 올랐던 정치인들과 학계·시민단체 출신 인사들 기록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중엔 청와대와 부처 핵심 고위직에 임명된 이들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내용을 들은 한 친문 의원은 “난감한 일이다. 검찰은 규정대로 했다고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긴 힘들 듯하다. 영장에 기한이 적혀 있었지만 수사 대상이 분명한데, 왜 문재인 정부 자료까지 확보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문 관계자는 “최근 특감반 사태(본지 1387호 ‘청와대 특감반 기강해이 실상’ 기사 참고)도 그렇고, 검찰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친문 진영의 이런 기류는 검찰이 손에 쥔 파일을 자칫 다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검찰이 정권 주요 인사들에 대한 사정 작업에 활용하거나 또는 외부로 유출할 가능성 등이다. 앞서의 친문 의원은 “정권 입장에서 보면 검찰이 약점을 쥐고 있는 셈이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검찰과의 관계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대 정권을 살펴보면 검찰의 ‘반란’은 대부분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일어나곤 했다.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가 집권 4~5년차에 떠올랐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치권 동향에 민감한 검찰 조직 생리상 권력 누수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그 칼날이 여권을 향했다는 얘기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꾸준히 범죄 첩보를 생산한다. 여권 실세들도 대상인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보관을 한다. 정권 후반기 불거지는 실세 비리 사건 상당수는 검찰이 이미 파악을 하고 있던 것이다. 검찰로선 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여권을 겨냥한 검찰 수사는 대통령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직접 수사하지 않더라도 언론 등에 흘렸던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면 인사검증 자료가 검찰에 넘어갔다는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든 일이다.”
실제 이명박 정권 5년차인 2012년 터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의 경우 검찰은 일찌감치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를 미루던 검찰은 정권 마지막 해에 들어서야 본격 착수했다. 이 사건으로 정권 실세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차관 등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같은 해 검찰은 대통령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저축은행 비리와 관련해 소환 조사하기도 했다. 정권 내내 무뎠던 검찰의 칼날이 대통령 임기 말 유독 날카로웠던 대표적 사례다.
더군다나 검찰 내엔 현 정부를 향한 불만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격 인사, 적폐청산 수사 피로감, 과거사 정리에 대한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특정 라인의 승승장구, 그리고 이들이 주도하는 적폐청산 등에 대해 내부 비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는 검찰이 언제든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 문제를 매듭짓지 않으면 문 대통령에게로까지 불똥이 튈 것으로 입을 모았다. 현 정권 내내 도마에 올랐던 부실 인사가 또 다시 수면 위로 오를 수 있다는 이유다. 문재인 대선 캠프 출신의 한 친문 인사는 “예를 들자면, 인사 검증에서 흠결이 발견된 후보자를 문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했다고 치자. 아마 야권과 언론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을 것이다. 몰랐다는 것보다 알고도 임명한 게 더 비난을 받을 소지가 높기 때문”이라면서 “인사검증 자료는 정권 입장에선 ‘역린’이나 다름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