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부산 기장군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했다. 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원안위에 비전문가 위원들이 대거 임명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민변 출신 변호사,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탈핵운동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공무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등이 원안위원으로 활동했거나 활동 중이다. 원안위는 원전 안전 정책과 관련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긴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대책 마련 및 지휘 역할을 한다.
최근 백석역 온수관 파열(지역난방공사), KTX 탈선(코레일) 등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모두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가 수장으로 있던 곳이다. 운동권 출신인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탈선 원인을 ‘추운 날씨’ 탓으로 돌렸다가 여론이 악화돼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비전문가들이 대거 임명된 원안위 활동은 문제가 없을까. 원전 분야 실무자인 한수원 노조 새울1발전소지부 강창호 위원장(원자력기술사)과 함께 원안위 회의록을 살펴봤다.
회의록에서 위원들은 스스로 비전문가임을 인정했다. 민변 회장 출신인 한 위원은 ‘제가 기술적으로는 너무 모르니까 배운다는 취지에서 더 여쭤보겠다’ ‘제가 전혀 전문가가 아니어서 궁금해지는 사항인 것 같다’ ‘제가 너무 기초적인 것을 여쭤봐서 조심스럽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급기야 이 위원은 91회 회의에서 “보고서를 저희가 독해하기가 참 난해하다. 이것은 저희 무식을 탓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냥 서류를 무더기로 저희들에게 주고 ‘다 드렸는데 왜 파악 못하십니까’라고 하면 안 된다. 저희가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reference(참조)를 꼭 달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보고서가 너무 어렵게 작성됐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85회 회의에선 김 아무개 위원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야 일반 시민도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면서 “10번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도 “저도 하나도 모르겠다. 모르는 내용이기 때문에 질문이 이상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저의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88회 회의에서 한 위원은 “보내주신 자료를 사전에 봤는데 한 번 봐가지고는 잘 익히기가 쉽지 않다. 오늘 보고해 주신 것을 듣더라도 제가 충분히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위원들은 기초용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70회 회의에서 김 아무개 위원은 “단조가 뭐예요, 단조가?”라고 물었다. 이 아무개 원자력심사과장이 “주물을 두드려가지고 쇠를 굉장히 강화시킨 그런 것들입니다”라고 설명하자 김 아무개 위원은 “제가 이런 것 몰라요”라고 답했다.
강창호 위원장은 “원자로 압력용기는 단조 공법으로 만든다. 단조는 고등학교 기술 수업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단어”라며 “회의록을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89회 회의에서는 담당 공무원이 기초용어인 ‘재장전수탱크’를 긴 시간 설명하는 내용도 있었다. 김 아무개 위원이 “재장전수탱크가 원자로 안에 물이 부족할 때 재(再), 물을 주입하기 위해서 물을 주입해 놓은 탱크예요?”라고 묻자 오 아무개 원자력안전과장은 “아니, 연료 교체할 때 원자로 헤드를 열어야 되지 않습니까? 헤드 윗부분에 ‘재장전조’라고 하는 큰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는데, 거기에 이 재장전수를 갖다가 다 집어 넣는다”고 설명했다.
92회 회의에서는 한 위원이 S/G(증기발생기)와 주급수 탱크를 혼동해 임 아무개 원자력심사과장이 바로 잡기도 했다. 90회 회의에서는 한 위원이 “여과기하고 중간차단체 기능에 차이가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오 아무개 원자력안전과장은 “중간차단체는 굵은 이물질을 거르고 여과기는 더 작은 이물질을 거른다”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이 역시 기본적인 용어로 원안위원이 몰라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79회 회의 때는 한 위원이 격납건물공극과 원자로 뚜껑을 구분 못해 다소 황당한 질문을 했다. 김 아무개 위원은 “격납건물 공극 생긴 거 있잖아요? 그것도 해외사례 있죠? 이게 그거 아니에요? 제가 알고 있는 미국 데이비스-베시(Davis-Besse) 원전. 원자로 뚜껑에 구멍 팍 생겨가지고, 그거 여럿 찾아보면 자료 많이 나오는데, 그게 유사한 거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하 아무개 KINS(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자력검사단장은 “그쪽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김 아무개 위원은 “전혀 다르냐”고 되묻는다.
지난 12월 6일에는 원안위원 6인이 신고리 4호기를 방문했는데 이들 중 원전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강 위원장은 “재장전수탱크도 모르는 사람들이 거길 간다고 뭘 알 수 있겠나. 왜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회의록을 살펴본 강 위원장은 “너무 답답하다. 위원들이 기초 용어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원안위를 원자력안전‘궁금’위원회라고 부른다. 회의록 중 상당 부분이 위원들이 모르는 내용을 묻고 관련 공무원들이 이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원안위에 원전 과외 받으러 들어간 거냐”고 비판했다.
김혜정 원안위원은 지난 12월 7일자로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원자력안전재단은 원안위 산하 기관으로 재난 발생 시 주무부처다.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지만 김 신임 이사장은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탈핵운동가 출신이다. 원안위 회의에서 ‘단조가 뭐냐’고 물었던 당사자다.
한 원자력 업계 관계자는 “원안위 회의에 들어갔던 실무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한다. 한 실무자는 자꾸 위원들이 기초적인 내용을 물어보니까 문제제기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얼마 후 좌천됐다. 직원들이 답답해도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강 위원장은 “사고 초기 31시간을 허비해 피해가 커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반면교사 삼아 만든 게 원안위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 같은 사고가 터지면 그때도 원안위원들에게 기초용어 가르치며 회의를 할 건가. 그러다간 골든타임을 놓친다. 안전 때문에 탈원전 하겠다면서 원전 안전과 직결된 자리에 비전문가들을 대거 임명한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한 원안위원은 “원자력 전문가들만 원안위에 들어가면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규제의 포획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전 정부에서도 법률 분야, 공공안전 분야 위원들이 위촉된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회의에서 기초용어를 물어본 것에 대해서는 “용어의 의미를 물어 본 것이 아니라 원자로 시설에 실질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지 확인 차원에서 묻는 경우도 있다. 또 원안위 회의 결과를 국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너무 어려운 개념이 나오면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비전문가인 원안위원들이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전문가들에게만 맡긴다고 잘 되나.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해야 더 잘 지적하고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