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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지난 2016년 승부조작 파문을 일으킨 이태양(전 NC)과 문우람(전 넥센)이 2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 출석 외에는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지 않던 이들은 스스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각 승부조작범과 브로커라는 낙인이 찍힌 이들의 주장은 ‘문우람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전면에 나선 이태양은 자신의 승부조작은 인정하면서도 “억울한 우람이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억울한 우람이를 살려주세요” 승부조작범 이태양의 외침
이번 기자회견은 이들이 한 온라인 야구커뮤니티에 직접 예고하며 시작됐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서 이태양은 문우람의 억울함을 주장하며 승부조작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이태양은 브로커 조 씨와 최초로 프로야구계에서 벌어지는 승부조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시점, 문우람과 3명이 함께했다고 밝혔다. 최초 언급 이후 브로커는 이태양에게 훗날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에서 승부조작에 가담해 줄 것을 제의했다. 방식은 ‘1회에 1점을 주는’ 식이었다.
구체적으로 승부조작 이야기가 오갈 때에는 브로커가 문우람의 전화기로 이태양과 통화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양은 “브로커가 ‘우람이 몰래 통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승부조작은 우람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조사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최초 승부조작 이야기를 3인이 함께했기 때문에 창원지검이 이 시점에 승부조작 모의를 했다고 결과를 정해놓고 조사했고, 언론에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승부조작 공모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승부조작 혐의로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은 이태양(왼쪽)과 문우람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또한 그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고도 했다. 그는 “검사에게 속았다는 걸 알고 진술을 번복하려 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변호사에게도 ‘문우람은 죄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 달라’고 했지만 변호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문우람 재심을 강력히 청원한다”고 말했다.
문우람이 억울함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자신에 대한 KBO 상벌위원회를 앞둔 지난 10월을 전후로 일부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보도가 이어지자 10월 30일에는 ‘문우람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현재와 같은 이슈로 발전하지는 못했고, 비교적 적은 인원인 약 2200명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데 그쳤다.
브로커 조 씨의 법정 진술과 달리 문우람은 “이태양의 선발등판일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승부조작 제의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조 씨와 친하게 지내며 고가의 명품시계와 의류 등을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태양·문우람이 일으킨 파장
승부조작 브로커로 몰린 문우람의 억울함을 주장한 호소는 의도한 바와 달리 다른 곳에서도 파장을 일으켰다. 이들은 승부조작 제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브로커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당시 브로커는 “현역에서 뛰는 선수들도 승부조작을 한다. 일부는 직접 배팅도 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실명이 공개됐다. 정우람(한화), 김택형(SK), 이재학(NC), 문성현(넥센), 정대현(사회복무, 넥센), 김수완(방위산업체, 무적)의 이름이 올랐다.
실명이 공개된 한 선수의 아내는 법적 대응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사진=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하지만 ‘실명 공개’ 파장은 컸다. 대상이 된 다수의 선수는 법적 대응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한 선수의 아내는 직접 소셜미디어에 “이름이 거론된 발원지부터 악성 기사 댓글, 유언비어 모두 법적 조치하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자연스레 ‘브로커의 말만 듣고 섣불리 행동했다’는 평가가 따르기도 했다.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김선웅 사무총장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구명 본질이 흐려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다만 이름이 공개된 선수들 중 한 명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가 쏠리고 있다. 스포츠 전문지 ‘엠스플뉴스’는 이태양의 주장대로 승부조작이 의심되는 다른 선수가 있었고,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도를 냈다. 익명으로 보도가 나왔지만 조작이 의심되는 경기 일부 내용이 공개되며 포털 사이트에서는 과거 특정 경기 장면의 동영상 재생수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또한 이태양의 화살은 그의 전 소속팀 NC 다이노스를 향하기도 했다. 그는 “구단이 언론과 접촉을 막고 나에 대한 악의적인 인터뷰를 했다”며 첫번째 KBO 상벌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은데 대해서도 “NC가 KBO에 전화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현재까지 동일한 번호를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단의 ‘꼬리 자르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NC는 이태양의 주장을 반박했다. NC 측은 “악의적인 인터뷰를 한 사실이 없고 KBO에도 이태양의 번호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 이태양은 전화를 받지 않는 상태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문우람이 선수시절 팀 내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한 사실도 알려지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는 브로커와 친분을 맺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폭행 사실을 밝히게 됐다. “2015년 5월 팀 선배에게 배트로 폭행을 당했다”며 “머리를 7차례나 맞아 뇌진탕 증세가 오고 얼굴이 부어 게임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폭행 후유증으로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브로커가 위로를 해주며 가까운 관계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때 브로커로부터 시계와 옷 등을 선물 받았다.
문우람이 기자회견 현장에서 배포한 자료에는 당시 폭행으로 병원 진료를 받았던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병력 란에 ‘야구 연습 도중 방망이에 머리를 맞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문진표에는 두통, 어지럼증, 구역질, 구토에 체크가 됐다.
이에 넥센 구단은 “당시 문우람이 선배에게 폭행을 당한 것은 맞다”며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 선배가 문우람과 아버지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면서 일단락된 문제”라고 덧붙였다. 구단 내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은 셈이다. 이에 KBO에서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KBO 측은 “사실관계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구단을 통해 확인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선 실명 공개, 폭행사건 폭로 등의 잡음과 별개로 문우람의 억울함 호소가 목적이었던 이번 기자회견은 결국 문우람의 재심 청구로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지켜봤던 김선웅 선수협 총장(변호사)은 “재심을 위해선 문우람이 브로커가 아니라는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 한다. 기존과 다른 사실 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단순히 이태양의 진술 번복만으로는 어려울 듯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루돼 있는 브로커 조 씨의 진술도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초 조 씨는 문우람을 도울 의지가 있었지만 진술 번복에 의한 위증죄 가능성에 뜻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우람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인 측은 “지금은 소송이 끝났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문우람은 대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확정 받고 KBO에서도 영구 실격 처분을 받았다. 다만 KBO는 “재심 청구를 준비하는 점을 감안해 결과에 따라 필요 시 징계를 다시 심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2년여 간 ‘승부조작 브로커’로 살아온 문우람의 앞날이 어떻게 바뀔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기자회견 이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 문우람은 스마트폰 메신저 프로필에 ‘여러분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만을 남겨놓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승부조작 폭로로 얼룩진 ‘프로야구 잔칫날’ 현장 분위기 이태양과 문우람의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10일은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박정훈 기자 ‘억울함’을 이야기했던 이태양과 문우람의 지난 10일 기자회견은 이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폭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승부조작 브로커와의 대화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일부 선수들의 이름도 공개했다. 브로커는 “다른 선수들도 한다. 일부는 직접 베팅까지 한다”며 이태양을 부추긴 것으로 전해졌다. 정우람(한화), 김택형(SK), 이재학(NC), 문성현(넥센), 정대현(사회복무, 넥센), 김수완(방위산업체, 무적). 다수의 선수 이름이 공개되며 야구계에 파문이 일었다. 기자회견이 열린 10일은 공교롭게도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골든글러브는 프로야구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각종 시상식 등이 모두 마무리되고 마지막에 열리는 공식 행사다. 1년을 마무리하는 잔칫날은 또 한 번의 승부조작 관련 파문으로 분위기가 얼룩졌다. 올해 구원왕(35세이브)에 등극하며 골든글러브 투수부문 후보에 오른 정우람도 이태양과 문우람에 의해 언급된 선수였다. 그는 소식을 접한 직후 결백함을 전했고 “떳떳하게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한화 구단은 “시상식 외적인 부분이 집중되면 행사에 누를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해 불참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현장 분위기 또한 뒤숭숭했다. 일부 팬들은 문우람의 억울함에 대해 공감하기도 했지만 기자회견 시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많은 관심이 승부조작 사태에 쏠리며 수상자들이 온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상식 현장을 찾은 한 취재진은 “시상식에는 다수의 동의를 얻기 힘든 ‘논란의 수상자’가 나오기도 하는데 올해 만큼은 논란의 크기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에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