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을 둘러싸고 ‘김학용 의원이 승리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나경원 의원이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를 거머줬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전술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사진은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와 비상대책위원회. 박은숙 기자
# ‘3수’ 나경원, 절실함에서 앞섰다
“절실함의 승리다.” 원내대표 경선 직후 통화가 이뤄진 한 친박 의원이 건넨 말이다. 원내대표 도전 ‘3수’에 나선 나 원내대표가 김학용 의원에 비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선거 활동을 했다는 게 승리의 요인이었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지지율 조사가 제일 안 맞는 게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이다. 표심을 좀처럼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투표하기 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면서 “승리가 예상됐던 김 의원이 다소 방심한 것 같다. 나 원내대표의 ‘맨투맨 스킨십’에 대해 칭찬하는 의원들이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내대표 경선은 선거를 잘하는 사람들이 이긴다. 현역 의원들 모두 선거 전문가들인데, 여기서 이기려면 확실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짧은 기간 내에 선거활동을 해서 승리해야 한다는 게 그 특징이다. 나 원내대표는 경선을 앞두고 매일같이 지역에 계속 내려갔다고 들었다. 본인 지역구는 서울인데 왜 내려갔겠냐. 의원들 쫓아 지역까지 따라가서 계속 설득작업을 했다고 하더라.”
특히 나 원내대표는 ‘4‧4‧2 전략’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오전 4명, 오후 4명, 저녁 이후 2명의 의원을 직접적으로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이다. 한국당 일각에선 나 원내대표의 인지도가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말도 나온다. 앞서의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무엇보다 나 원내대표는 인지도가 굉장히 높지 않냐. 총선에서 ‘원내대표’ 직을 달고 있는 나경원이 현장에서 도와주면 선거가 수월해질 수 있으니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도 “무엇보다 현직 의원들은 총선을 위한 선거운동이 중요한데, 김 의원은 나 의원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 김무성 견제심리 발동
경선이 끝난 후 정치권 평론가들은 ‘김무성 견제론’을 언급했다. 김무성 의원이 이끄는 복당파들이 연이어 원내대표를 맡는 것에 대한 비토 기류가 발동했다는 얘기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 역시 복당파다. 한국당 의원실 관계자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와 김학용 의원의 이미지가 너무 겹치니 (원내대표직을 두 사람이) 연달아 하는 느낌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김무성 의원 측이 박근혜 사면 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한 역효과라는 말도 뒤를 잇는다. 계파 갈등 해소 차원에서 꺼낸 말이지만 이에 대해 친박계는 “탄핵을 찬성해놓고 후안무치하다”라며 날선 반응을 내놓은 바 있다. 중립 성향 의원들 역시 비박계의 태도 변화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사석에서 만난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전통적 텃밭인 영남권에서 다시 한국당이 반등할 기미를 보이자 박근혜를 이용하려는 비박계의 기회주의적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경선 과정에서 비박계가 ‘김학용 원내대표, 오세훈 당 대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 등을 영입해 세를 확장하겠다는 노림수다. 이 경우 친박의 입지는 좁아들 수밖에 없다. 친박계가 사활을 걸고 나 원내대표를 지지한 배경으로 읽힌다.
# 나경원-친박계 밀약설 솔솔
자유한국당 안팎에선 나 원내대표와 친박계 간 밀약설까지 흘러 나와 관심을 모은다. 자유한국당의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나 의원을 밀어주는 대가로 친박계가 요구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하나는 인적 청산을 할 때 자신들을 구제해달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대위와 각을 세우겠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당초 선거 운동이 시작됐을 땐 김학용 의원이 우세한 분위기였는데, (거래가 성사된) 이후에 나 의원이 앞서나가는 것 같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그 관계자는 “나 의원이 (친박계 의원들에게) ‘다 살려줄게’라고 했다더라.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전부 다 살리겠느냐. 1심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의원들은 상식적으로 살려줄 수가 없다. 상식적인 선에서 날릴 사람은 날리고, 대체로 서로 도와주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12월로 예정된 비대위 조강특위의 당무감사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당의 다른 관계자도 “친박 의원들 가운데 당협위원장에서 잘렸거나, 잘릴 것 같은 사람들이 나 원내대표를 도와준 것 같다”고 말했다.
‘홍준표 체제’의 당무감사로 당협위원장에서 물러났던 친박계 유기준 의원은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나 원내대표를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 나 원내대표 승리 후 유 의원의 당협위원장 복귀설이 유력하게 오르내린다. 이는 나 원내대표와 김병준 비대위가 충돌할 수도 있음을 추론케 하는 대목이다.
김병준 위원장은 12월 13일 비대위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나중에 할 건 하고 지금 해야 할 건 지금 해야 한다”며 “내가 비대위원장으로 일하며 강력하게 요구받은 게 바로 인적쇄신”이라고 말했다. 이에 나 원내대표는 “인적쇄신 자체에는 반대하진 않지만 지금 시기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의원 임기가 남았는데 인적쇄신이 지나치면 대여 투쟁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엇갈린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설마 (나 원내대표가 친박과) 그렇게까지 약속했겠나. 나 원내대표는 비대위와 각을 세우려는 것보다는 본인의 정체성을 얘기한 게 아닐까 싶다”며 “무엇보다 친박으로부터 표를 많이 얻었으니, 지지한 의원들에 대한 보답 정도로 보인다. 계파도 없는 자신을 밀어줬으니 그에 대한 보답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굳이 비대위하고 나 원내대표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반대로 비대위를 해체하라는 당 내 일각 주장에 나 원내대표가 선을 그었지 않느냐”라고 선을 그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
‘비박의 설욕이냐 친박의 굳히기냐’ 권력싸움 2라운드는 전당대회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지로 나경원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자유한국당의 행보에도 시선이 쏠린다. 우선 박근혜 탄핵 이후 폐족 위기로까지 내몰렸던 친박계의 부활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나 의원이 꾸릴 새로운 원내지도부에 친박계 인사들이 중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한 친박계를 타깃으로 하는 당무감사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비박계도 앉아서 당하고만은 있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내년 2월 치러질 전당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전망이다. 설욕을 노리는 비박계와 ‘굳히기’를 원하는 친박계 간 사활을 건 일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나경원 체제’의 딜레마와도 무관하지 않다. 친박 지원으로 당선된 나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고질적인 계파 싸움을 해소하기는 무리란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김병준 비대위와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이다. 그동안 비대위는 복당파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친박계를 기반으로 하는 ‘나경원 체제’와는 태생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비대위가 친박계 청산을 강행할 경우 이를 엄호하려는 나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도 “나 원내대표는 친박계의 지지로 당선됐으니, 친박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라며 “신임 원내지도부는 현 비대위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대위 조강특위 인적쇄신에 대한 결과는 12월 중 발표 예정이다. 그러나 나 원내대표의 영향력으로 당협위원장에서 물러난 이들이 다시 원대 복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원내대표 경선이 ‘전초전’이라면 진짜 싸움은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다. 비박계는 최근 입당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지지할 채비를 갖췄다. 이에 맞서는 친박계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유력한 카드로 검토 중이다. 채 교수는 “전당대회의 막이 오르는 시점에서 계파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일 것이고, 비박계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동안 친박계는 대한애국당과 태극기부대를 포함한 보수 결집을 외쳐왔다. 반면, 비박계는 바른미래당과의 통합에 무게를 뒀다. 나 원내대표 선출로 한국당 입당을 고심하던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의 움직임은 일단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은 나 원내대표 당선 후 비보도를 요구하며 “도로 친박당이 됐는데 우리가 들어갈 이유가 있느냐”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 일각에선 비박계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까지도 흘러나오지만 현실 가능성은 낮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그럴 일 없다. 비박계는 나가서 찬밥신세가 된 적이 있기 때문에 무서워서 못 나간다”며 “현재로선 바른미래당의 일부 의원들을 데려오기 어렵겠지만, 전당대회 전에 나 원내대표가 보수 통합을 주장하면 이학재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