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업계는 일단 T맵 택시 등장을 환영하고 있다. ‘카카오 카풀’이 카카오 택시처럼 성장해 향후 생존 자체를 위협할 것이란 불안에 기인한 ‘반(反) 카카오’ 정서가 택시업계에 퍼진 덕이다. 이를 읽은 SK텔레콤은 T맵 택시로 호출된 콜을 운행한 택시기사에 5000원 상품권을 무제한 지급하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11월부터 T맵 택시 콜을 수행한 택시기사에 대해 모바일 상품권을 무제한 제공하는 마케팅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택시 호출 앱 T맵 택시에서 앱 내 결제가 진행된 콜에는 신세계상품권 5000원을, 일반 콜에는 이마트상품권 1000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차등해 택시기사가 승객에 T맵 택시 이용을 권장하도록 했다.
앱 내 결제를 위해선 T맵 택시 회원가입이 필수다. 또 SK텔레콤은 콜을 잡기가 번거롭다는 택시기사들 의견을 반영해 핸들에서 T맵 택시 콜을 간편하게 받을 수 있는 이른바 ‘콜잡이’를 개발, 3만 개를 무상 지급했다.
SK텔레콤이 ‘T맵 택시’ 이용객 확대를 위해 택시업계와 손잡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일요신문
“카카오가 택시를 통해 떴으면서 택시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선언한 택시업계는 SK텔레콤을 지지하고 있다. 법인택시업체는 심지어 카카오 택시 대신 T맵 택시를 이용하라는 사내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택시기사들은 T맵 택시를 호출 앱으로 쓰자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서로 전달하고 있다. 하루 14만 원 상당 사납금을 낸 후 추가 수당과 고정급여를 받는 법인택시 소속 기사에게 상품권은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이 됐다. SK텔레콤은 지난 12월 3~7일 T맵 택시 콜 수행 시 5000원 상당 상품권을 무제한으로 지급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SK텔레콤은 카풀 논란을 기회 삼아 택시 호출 시장 내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부문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SK그룹에 T맵 택시의 부진은 뼈아팠다.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를 위해 내비게이션과 택시 서비스를 내놓고도 카카오 택시에 밀려 기술 고도화에 필요한 택시·승객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했다. 통합 플랫폼 사업자로 SK텔레콤에서 분사한 SK플래닛이 사업 초기 유료 호출비 논란으로 택시기사들에게 외면받은 사이 카카오는 중개비 무료를 내세워 시장을 독점했다.
‘T맵 택시’가 이용객 확대를 위한 이벤트 등을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이벤트 화면 캡처.
SK텔레콤은 법인택시에 T맵 택시 이용 시 10% 할인 배너를 부착하는 등 마케팅 강화에 나섰다. 택시기사들의 입소문 홍보 효과에 더해 이용객에 직접적인 할인 혜택을 부과, 카카오 택시 이용객을 끌어오겠다는 복안이지만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카카오 택시 대안으로 T맵 택시를 홍보했던 택시기사들이 호출 콜 자체가 적은 탓에 도로 카카오 택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이정환 씨(55)는 “T맵 택시가 하루가 멀다 하고 ‘T맵 택시 호출이 날로 신기록을 경신한다’며 문자를 보내오는데 나한텐 T맵 호출이 거의 없어 카카오를 쓴다”고 말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서울역 앞 승객 탑승을 대기 중인 택시 30대 중 T맵 택시를 호출 앱으로 우선 사용하는 택시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뒤편에 정차해 있는 택시 10대를 살펴봤지만, 역시 카카오 택시를 쓰고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법인택시 회사 사장 김대환 씨(가명·66)는 “택시에 T맵 택시 광고판이 붙었지만, 택시기사는 여전히 카카오를 쓴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이종선 씨(64)는 “15만 원 가까운 사납금을 채우고, 추가 수입을 얻으려면 손님을 많이 태워야 한다”면서 “카카오가 싫어도 카카오를 써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카풀 갈등 심화하자 넋 놓은 정치권…세계 흐름 맞추자니 선거가 걱정 카카오의 카풀 도입 추진으로 불거진 택시업계와 카카오 간 갈등에 정치권이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앞에서 택시기사 최 아무개 씨(57)가 카풀 서비스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카카오가 ‘일단 보류’를 선언하기까지 정부와 국회는 대책 없이 침묵했다. 생존권 위협 주장과 혁신 성장 지연이란 경고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당정협의를 진행, 실질적인 택시기사 월급제 시행을 위한 법과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기사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반발을 잠재우겠다는 것. 택시업계는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강신표 전국택시노조 위원장은 “카풀 도입과 관계없는 회유책은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카풀을 추진하는 카카오와 택시업계 간 갈등 핵심은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81조다. 해당 법은 자가용을 유상으로 운송용으로 제공하거나 임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출·퇴근시는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택시업계는 출·퇴근 시간이 아닌 모든 때 카풀을 할 수 있어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카카오는 ‘출·퇴근 시간은 모두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민주평화당·바른미래당·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운수사업법 81조 예외 조항에 대한 개정안을 내고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세분화한 개정안을 낸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은 의원실 내 개정안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대체자를 구하지 않았다. 황주홍 의원실 역시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담당했던 보좌관이 현재 없어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실세로 떠오른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이 카카오 출신이니만큼 청와대가 나서 카카오와 택시업계 간 갈등을 조율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정 비서관은 청와대 입성 전 카카오 대외업무 총괄 부사장으로 일하며 경영에 복귀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오랫동안 업무 호흡을 맞춰온 것으로 유명하다. 긴 협상 과정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카풀업계도 정치권을 향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치권이 4차 산업혁명의 촉매는커녕 걸림돌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카풀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은 지금 세계적 흐름에 맞춰 카풀을 시행해야겠다는 마음 반, 그러자니 택시 민심이 우려돼 다음 선거가 어려워질까 걱정하는 마음 반”이라고 지적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