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퀘이드라는 이름이 왠지 익숙하다면, 아마도 그의 동생이자 역시 배우인 데니스 퀘이드 때문일 거다. 한때 멕 라이언의 남편이었던 데니스 퀘이드는 우리에겐 ‘와이어트 어프’(1994) ‘프리퀀시’(2000) ‘투모로우’(2004) 같은 영화로 잘 알려진 미남 배우. 형인 랜디 퀘이드도 동생 못지않게 굵직한 족적을 남긴 개성파 배우다. 1960년대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마지막 지령’(1993)이라는 영화로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각광을 받았다. 이후 역할의 비중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연기로 캐릭터를 빛냈던 그는 TV로 영역을 확장했다. 1987년에 린든 존슨 대통령에 대한 미니시리즈 전기 드라마에 출연해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쥐며 전성기를 맞이했고, ‘인디펜던스 데이’(1996) ‘킹핀’(1996)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브로크백 마운틴’(2006)에선 사랑에 빠진 두 남자, 잭(제이크 질렌할 분)과 에니스(히스 레저 분)를 경멸하는 조 아귀레 역을 맡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랜디 퀘이드와 에비 퀘이드 부부.
그는 1988년에 ‘야망의 브로드웨이’를 촬영하면서 제작 어시스턴트였던 에비 몬톨라네즈라는 여성을 만난다. 모델 출신인 에비는 랜디 퀘이드와 단숨에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1989년에 결혼한다. 이후 에비는 1990년대 중반까지 광고와 화보 모델로 활발히 활동한다.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였던 퀘이드 부부. 그들이 구설에 오른 건 2009년 9월이었다. 퀘이드 부부는 텍사스에서 체포된다.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 있는 산 이시드로 호텔에 묵었는데 1만 달러의 방값을 내지 않아 수배되었던 것. 늦었지만 그들은 방값을 해결했고, 3년의 보호 관찰과 에비의 240시간 사회봉사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0년 9월, 보호 관찰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죄는 불법 점거였다. 그들은 어느 집을 무단으로 5일 동안 사용했고 이후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던 것. 사실 그 집은 과거 부부의 소유였지만,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위조된 서명으로 인해 사기를 당해 억울하게 제3자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법망을 피해 그들은 캐나다로 넘어가 망명을 신청하려 했다. 하지만 국경 지역에서 체포되었고, 결국 미국으로 소환됐다.
한때 잘나가던 랜디와 에비 부부는 왜 이런 곤경에 빠진 것일까? 이에 대해 그들은 매우 독특한 주장을 했다. 할리우드엔 셀러브리티를 죽이거나 곤경에 빠트리는 숨은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세력을 ‘할리우드 스타 왜커’(Hollywood Star Whackers)라 불렀다. ‘왜커’는 의역하면 ‘살해자’란 의미. 그러면서 마이클 잭슨이나 히스 레저, 그리고 랜디의 절친이었던 데이비드 캐러딘이 모두 ‘스타 왜커’들에 의해 죽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왜 할리우드의 셀럽들을 공격하는 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증거 없는 주장은 계속되었다. 멜 깁슨이 곤경에 빠진 것도, 제레미 피번이 연극에서 하차한 것도 모두 스타 왜커 때문이며, 다음 타깃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린제이 로한이라고 했다. 랜디와 에비가 도피 생활을 하게 된 건, 그들이 몇몇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라는 것. 자신들에 대한 모든 법적 조치 역시 모두 조작됐다는 것이다.
퀘이드 부부에 의하면, 스타 왜커는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하수인들을 통해 악랄한 방식을 사용하는 검은 존재들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당한 일들을 예로 들었다. 2009년 호텔 비용 미납은 그곳 관리자가 자신들을 속여 비싼 방에 묵도록 했기에 생긴 일이고, 출연작 인세는 어느 순간 그들이 가로채 통장에 들어오지 않고 있으며, 에비의 전화는 감청되고 있다는 것. 랜디 퀘이드는 어느 연극에서 이유 없이 퇴출됐고 무대 배우 조합도 그를 탈퇴시켰다. 부부를 체포했던 산타 바바라의 경찰 론 포니는 과거 마이클 잭슨의 죽음과 관련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음모론 주장 이후 랜디 퀘이드와 에비 퀘이드 부부.
이런 끊임없는 공격에 의해 랜디 퀘이드의 필모그래피는 곤두박질쳤고, 그들은 궁핍한 도피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팩트와 달라 부정되었지만, 그 팩트조차 모두 교묘히 조작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스타 왜커라는 미지의 존재는, 모든 것을 꾸미지만 그것이 조작되었다고 느끼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랜디와 에비 퀘이드가 말한 스타 왜커는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2000년 이후 이어졌던 스타들의 죽음과 추문의 미스터리 뒤엔, 그들을 파괴하려는 알 수 없는 조직이 존재하는 걸까? 사람들은 랜디 퀘이드의 주장에 그다지 동조하지 않았지만, 그들 부부는 좀처럼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편 에비 퀘이드는 2011년에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에 랜디는 캐나다인의 남편 자격으로 캐나다 영주권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리고 에비 퀘이드는 2011년 ‘스타 왜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지난 10년 동안 그들이 어떻게 할리우드 스타들을 죽여왔는지에 대한 음모론을 집대성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