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를 위한 결혼상담소 토라콘 홈페이지.
오타쿠의 성지로 유명한 도쿄 아키하바라.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는 색다른 맞선 파티가 열린다. 흔히 맞선이라고 하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모여 분위기가 딱딱하고 어색할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시종일관 남녀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맞선파티를 주최한 ‘토라콘’의 관계자는 “공통된 취미를 가진 이성들의 만남이라 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오타쿠에게 상냥한, 오타쿠를 위한 결혼상담소’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토라콘은 ‘취미와 결혼의 양립’을 콘셉트로 내세우며 2년 전 설립됐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게임 등 특정분야에 푹 빠져있는, 이른바 오타쿠를 대상으로 한 결혼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른 업체와 달리 남녀비율은 7:3 정도로 남성 회원 수가 많은 편이다. 가입 시 어떤 장르를 좋아하고 얼마큼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는지 등 ‘오타쿠도’를 진단해 그에 따른 섬세한 서비스를 보장한다. 스태프들도 거의 오타쿠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업체를 통해 결혼한 37세의 회사원 다나카 씨(가명)는 다음과 같이 돌아봤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코믹마켓에 텍스트를 발표하는 등 취미를 즐기다보니, 어느새 30대 중반에 이르렀다. 가정을 꾸리고 싶었고,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희망 결혼상대 조건은 심플했다. 내 취미를 이해해주는 사람. 가치관에 중점을 뒀다.”
일반적인 결혼정보 업체라면 여성의 경우 상대 조건으로 연봉이나 직업을 따질지 모른다. 남성이라면 젊고 예쁜 여자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토라콘을 찾는 이들은 가정생활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 인품과 가치관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좋아하는 관심사를 숨겨야 하는 결혼생활은 답답할 뿐이다. 남녀 회원 모두 처음부터 서로의 취미를 이해해주는 동반자를 만나길 원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이 업체가 주최한 맞선파티 중 단연 화제를 모은 것이 ‘BL 취미를 이해해주는 만남’이었다. 여기서 ‘BL(보이즈러브)’이란 남성과 남성간의 연애를 테마로 한 소설이나 만화 등의 장르를 말한다. 관련 파티는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성 측 예약이 전부 마감될 정도로 그야말로 관심이 뜨거웠다.
맞선파티에 참석한 한 여성은 “보통 BL 창작물을 좋아하는 걸 숨기고 ‘독서가 취미’라고 둘러대곤 했다”면서 “친해진 후에도 언제 커밍아웃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이번 파티는 처음부터 ‘BL 취미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남성’이 지원조건이었기 때문에 취미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일본 결혼사정 마케팅조사에 따르면 “젊은 세대 특히 20대가 결혼상담소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부부문제 연구가 오카노 아쓰코 씨는 “30대 전반 일본 남성의 미혼율은 47.1%, 여성은 34.6%에 달한다. 젊은 세대에게 연애결혼이란 어쩌면 환상일지 모른다”며 “기다려도 좋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은 결혼상담소를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통통녀와의 결혼을 주선하는 업체 포챠콘 홈페이지.
이처럼 수요가 늘어나면서 공급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고객의 니즈에 맞는 다양한 결혼상담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선택의 다양화는 ‘외모’로도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예를 들어 ‘통통녀를 좋아하는 남성’만을 회원으로 받는 결혼상담소 ‘포챠콘’이 탄생했다. “이 업체는 소개건수가 이미 10만 건을 돌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체가 정의하는 통통녀는 ‘신장(cm)-체중(kg)=100 이하’다. 가령 키가 160cm일 경우 몸무게가 60kg 이상인 여성이다. 일반적인 결혼상담소라면 통통한 여성이 불리할 수 있다. 하지만 포챠콘 관계자는 “실은 통통한 여성이 인기가 많다. 남성이 중시하는 것은 웃는 얼굴과 온화한 분위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억지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성과 맺어지는 편이 훨씬 이상적”이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포챠콘에 가입한 남성은 ‘마른 체형’이 많다고 한다.
한때 일본에서는 결혼상담소를 찾는 걸 부끄럽게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 ‘연애시장 탈락자’라는 이미지가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상담소의 문턱이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오히려 젊은 여성들은 현실적인 결혼을 위해 연애라는 위험한 도박 대신, 결혼상담소를 통해 파트너를 찾는다.
일본결혼상담소연맹이 발표한 데이터에 의하면, 현재 매월 평균 2000명 이상이 상담소에 신규 가입하고 있다.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여성들이 결혼상대에게 요구하는 조건이다. 거품경제기에는 고신장, 고수입, 고학력 등 이른바 삼고(三高)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평균적인 수입, 평범한 외모, 평온한 성격의 삼평(三平)을 선호한다. 주요 이유는 역시 경제불황이다. 태어날 때부터 불황이었던 세대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바라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게 된 것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자녀 갖지 않고 친구처럼 살아요~’ 우정결혼 아시나요? 우정결혼상담소 컬러즈 홈페이지. 최근 일본에서 ‘우정결혼’이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우정결혼은 성행위나 연애감정 없이 혼인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주간신조’에 따르면, 2014년 우정결혼에 특화된 전문상담소 ‘컬러즈’가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주로 “성소수자(LGBT) 가운데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을 무성애자(Asexuality)라고 밝힌 전문직 여성 고바야시 씨(40·가명)는 컬러즈를 통해 게이 남성과 결혼했다. 그녀가 결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이대로 평생 혼자 살아가는 건 외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파트너를 찾게 됐다. 동거는 하되, 자녀는 만들지 않는다가 첫 번째 조건. 각자 생활비를 관리하고, 집세와 수도광열비는 절반씩, 공동의 노후적금 마련, 간병은 자신의 부모만 한다 등등 서로의 조건을 꼼꼼히 조정해 결혼이 성사됐다. 이에 대해, 컬러즈의 대표 나카무라 씨는 “일반 결혼상담소보다 몇 배 이상으로 희망조건을 항목으로 확인한다”고 전했다. 연애감정이 없는 결혼인 만큼 의무적인 비즈니스 같은 룰을 만들지 않으면 자칫 소원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최근 성소수자 이외에도 ‘결혼이라는 일생의 파트너 선택을 연애라는 애매한 감정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다’며 상담을 의뢰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