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반도체 굴기’와 ‘축구 굴기’가 매섭다. 연합뉴스
[일요신문] 굴기. ‘몸을 일으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 단어는 최근 중국의 상황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고 있다. 중국은 자신들이 발전 또는 팽창을 마음 먹은 분야에서 천문학적인 자금력으로 목표한 바를 이뤄가고 있다. 이는 국내 시장까지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의 굴기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 특히 반도체 분야와 축구계에서 그 형태가 닮았다.
#핵심인재 스카우트 러시 ‘반도체 굴기’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선언했다. 질적인 면에서 제조 강대국이 되려는 산업고도화 전략이다. 대한민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기도한 반도체도 이들의 집중 육성 분야에 포함됐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에 1조 위안(약 17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에 중국에서는 ‘반도체 굴기’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자연스레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당초 “중국이 한국 반도체 제조사를 따라잡는 데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추격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중국’이라는 국가명이 심심치 않게 언급되고 있다.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부분은 인재·기술 유출이다. 빠른 발전을 위한 방법으로 업계 경력자들을 자국으로 데려가고 있다. 중국 특유의 거부하기 어려운 ‘자금력’과 함께다. 인력의 이동이 점점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정확한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재직 중인 한 인사는 “실제 중국으로부터 많은 제안들이 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부장급들에게 헤드헌터가 붙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제안은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의 5배 정도로 알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보다 연차가 높은 다른 임직원의 설명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그는 “주로 설계팀이나 제조 설비 쪽 인력을 위주로 데려가고 있다”면서 “부장에서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한 ‘수석 부장’들에게 많은 제안이 온다. 더 이상 위로 올라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안을 받는다면 중국의 솔깃한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인력을 빼앗기는 상황에 국내 업체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삼성전자에서는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에는 이직자를 상대로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거로 소송 전망은 밝지 않다. 중국 현지에서는 소송 등을 피하기 위해 인재들을 직접 채용이 아닌 투자 회사나 자회사에 취업을 시키기도 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열풍’의 한 켠에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이다. 앞서의 SK 하이닉스 관계자는 중국으로 떠난 이들이 금새 돌아오는 상황도 전했다. 그는 “노하우나 국내 인맥 등 ‘단물’만 빨아먹고 내뱉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근속 보장 등 계약 조항 등을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쿼터 부활 조짐에 대규모 자본 쏟아지는 ‘축구 굴기’
반도체 분야와 마찬가지로 축구계 또한 수년째 중국의 ‘축구 굴기’가 큰 화두다. 시진핑 주석이 축구에 관심을 가지며 중국의 천문학적 자본이 축구 무대로 향했다.
돈으로 국가대표 성적을 상승시키기는 힘들다. 하지만 리그의 환경은 얼마든지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중국슈퍼리그는 이적시장이 열리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리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재는 소속팀 전북 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도 주축 선수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국내 무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에 듣는 이들의 입이 벌어졌다. 월드컵, 프리미어리그 등 큰 무대에서 능력을 증명해온 기성용이 전 소속팀에서 받던 연봉(약 35억 원. 추정치)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김민재의 이적설을 놓고 일부 팬층에서는 큰 반발이 나오기도 했다. 온라인 활동을 즐기는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그의 중국행을 반대하는 팬들의 댓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김민재가 유럽 진출에 앞서 중국으로 향하는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능력이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민재는 프로 데뷔 2년만에 K리그 최고 선수로 발돋움했다. 유럽 무대에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도전할만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이적 제안은 중국으로부터 왔다. 규모 또한 거절하기 힘든 수준이다. 별도의 수익구조가 미약한 K리그에서 기량이 뛰어난 선수의 판매는 구단이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김민재 소속팀 전북이 그를 판매한다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다른 팀 수비수를 영입할 것이다. 이렇게 선순환 구조가 이뤄질 수 있다. 전북이 선수를 사가면 판매하는 팀에선 이적료를 운영비에 보탤 수 있다.
다만 반도체 업계와 마찬가지로 국내 선수들의 중국행에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특유의 불안정한 중국의 정책 때문이다. 중국 리그가 막대한 부를 이용해 한 때 한국 수비수를 사들이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바 있다. 김영권을 비롯해 김기희, 김주영, 권경원, 김주영 등 많은 수비수들이 중국으로 모여 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 리그가 아시아 쿼터 제도를 폐지하며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외국인 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고, 상당수가 다른 곳에서 둥지를 틀어야 했다. 현재 김민재의 이적 과정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 또한 아시아 쿼터와 관련한 규정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