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통신호위반 시민 포상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교통신호위반 시민 포상제’는 2001년 3월 교통사고 감소를 목적으로 등장했지만 전문적으로 교통법 위반 차량 사진을 찍는 ‘카파라치’들의 대거 출현으로 22개월 만에 폐지됐다. 국민들 사이에 불신감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차량 블랙박스 등 증거수집 기술 발전으로 시민 포상제 도입 요구가 다시 빗발치고 있다.
직장인 최 아무개 씨(31)는 출퇴근길에 나설 때마다 공포에 떤다. 그는 이른바 ‘칼치기’로 사고를 당할 뻔한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칼치기’는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를 빠르게 통과해 추월하는 불법 주행을 뜻하는 은어다. 난폭 운전자의 칼치기는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도로 위 흉기다.
최 씨는 “카파라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블랙박스 영상을 찍어서 신고하면 일반 시민들에게도 포상금을 주면 된다. ‘누군가 날 보고 있다’는 경각심이 생기면 사고도 획기적으로 줄 것이다. 음주 운전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도 너무 많고 난폭 운전자도 널려 있다. 서로가 감시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이 아무개 씨(34) 역시 “범칙금의 10%를 포상금으로 주면 된다. 요즘 블랙박스가 정말 잘 돼 있어서 할만하다”며 “회사 근처에 매일 불법 유턴하는 곳이 있는데 누군가 최근에 블랙박스 영상으로 계속 경찰서에 신고를 해서 회사 동료들이 몇 번 걸렸다. 그 이후로 불법 유턴이 사라졌다. 카파라치라도 해서 폭주하는 운전자의 습관을 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경찰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경찰청 교통안전계 관계자는 “카파라치 제도는 부작용이 너무 많아서 폐지했다”며 “최근 사고가 증가하면서 카파라치를 도입해 달라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는 도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00년대 초, 이미 사라진 제도를 다시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선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의 생각은 달랐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한 교통순경은 “카파라치가 도입되면 교통법규 위반이 줄어든다. 사망사고가 현저히 없어질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범칙금의 10%만 떼어줘도 효과가 엄청날 수 있다. 물론 신고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방어권이 보장이 안 되면 문제지만 방어권 제도만 제대로 확보하면 카파리치 효과는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순경은 “경찰은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에 엄청 민감하다”며 “우리 잘못도 아닌데 차에 치였다고 하면 경찰 수뇌부에선 난리가 난다. 운전자가 표지판이 나무에 가려져서 죽으면 원래 우리 경찰 책임이 아니다. 도로관리과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경찰에선 유독 사망 사고를 크게 생각한다. 카파라치가 도입되면 부족한 경찰력을 좀 더 보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2017년 11월 8일 청원자 A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카파라치 제도 도입은 이웃들 사이에 불신을 조장할 것”이라며 “서로간의 불신이 쌓이는 사회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법을 어기면 범칙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시민교통안전협회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으로 위반 차량을 확실히 잡아내기가 어렵다”며 “반드시 명백한 증거여야 하는데 하루종일 블랙박스를 뒤져도 신고할 만한 위반 건수는 적을 것이다. 오히려 교통법규 위반 단속은 경찰의 역할이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 해야 할 공무를 시민에게 대신하라고 하면 공무원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통 순경은 “보상금을 준다고 하면 효과는 있겠지만 경찰 업무량과는 상관이 없다”며 “업무량은 늘 것 같다. 본서 직원은 카파라치가 제보한 수많은 영상을 확인해야 한다. 동기가 그 업무 했었는데 1년을 못 버티고 나왔다. 일이 많고 욕먹는 부서였다. ‘선을 넘었네, 안 넘었네, 갈 때는 파란불이었네, 아니었네’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OECD ‘2017 도로 안전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차량 주행거리 10억 km당 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대한민국이 15.5명이었다. OECD 회원국 중 주행거리를 조사해 발표하는 22개국 가운데 가장 많은 수치였다. 이러한 교통 후진국의 오명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윤창호법’ 마련으로 음주운전 처벌에 대한 기준이 강화돼 사회적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연말 술자리로 인한 음주사고와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운전자들 사이에서 ‘카파라치’ 제도 부활을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고 있는 이유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