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2015년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종전까지는 외국인 선수를 ‘비거주자’로 분류했지만 국내에 머무르는 기간이 연간 183일을 넘는다면 ‘국내 거주자’로 분류하는 내용이다. 비거주자는 최고 22%의 세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지만 국내 거주자로 분류될 경우 종합소득세를 신고해 최고 세율(44%)을 적용받는다.
문제는 개정된 소득세법 관련해서 KBO리그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선수들은 기존의 22% 세율만 인지하고 구단과 계약했는데 올 시즌 중반에 추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선수들이 한동안 대혼란을 겪었다. 소득세법 시행령이 개정된 지 3년이 지났지만 구단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국세청에서도 특별한 추가 고지나 안내가 없었던 게 ‘세금 폭탄’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구단들은 개정 이전의 규정대로 22%의 원천징수를 세금으로 뗀 나머지 금액을 연봉으로 지급했다. 외국인 선수들은 국내 선수들과 달리 종합소득세 신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연봉 5억 원 이상의 고액 연봉자는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서 최대 44%의 세금을 내야 한다.
헥터 노에시. 사진 출처 =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당연히 국내에서 뛰는 선수라면 국내법에 따라 세금을 부담해야 하지만 갑자기 2배 가까이 뛴 세금을 추가로 내는데 대해 외국인 선수들의 반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런 세금 관련해서 KBO는 물론 구단들도 서로 책임을 미루는 바람에 외국인 선수들의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외국인 선수들 재계약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선수가 KIA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헥터 노에시.
2016년 KIA 유니폼을 입은 헥터 노에시는 올 시즌 연봉이 200만 달러(약 22억 원)였다. 3시즌 동안 46승을 거두며 KIA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는 당연히 KIA의 재계약 대상자로 분류됐다. 그러나 구단이 아닌 선수가 재계약을 망설였다. KIA가 오히려 애를 태우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국 헥터는 KIA와의 계약을 포기했다. 그도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바뀐 조세 규정으로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 처지가 되자 고민 끝에 KBO리그 무대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만약 헥터가 내년에도 한국에서 뛰게 된다면 그가 내야 할 세금이 어느 정도일까. 무려 10억 원 이상의 돈을 토해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중과세방지조약을 맺지 않은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라 세금 부담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헨리 소사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지만 미국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어 이중과세 대상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7시즌을 뛰는 동안 미국에서 20%, 한국에서 22%의 세금을 냈던 소사도 2015년부터 개정된 세율인 44%의 세금이 소급 적용되는 바람에 거액의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LG는 헨리 소사와의 계약을 포기했고 소사도 만족도가 높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른 리그를 알아보게 됐다.
SK에서 4년 동안 48승을 거둔 메릴 켈리는 KBO리그를 떠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 그런 그도 한국에서 세금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팀 동료인 제이미 로맥은 ‘비거주자’로 인정받아 한국에서 22%의 세금만 내면 됐지만 메릴 켈리는 거주자 신분 판정을 받으면서 3.3%를 원천 징수하고 이후 40%의 세금을 내게 됐는데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한 걸 이해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켈리도 SK와의 재계약 대신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으면서 또 다른 도전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8시즌을 뛰었던 더스틴 니퍼트는 무려 24억 원이란 세금을 납부해야만 했다. 24억 원이란 세금이 나온 배경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거주자 신분 판정을 받으면서 42%의 세금이 소급 적용됐기 때문.
더스틴 니퍼트
니퍼트는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의 회계사를 고용, 국세청과 맞서 싸웠다. 니퍼트의 세금 문제를 도왔던 주윤호 회계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거주자인지, 비거주자인지를 판단하는 게 중요했다. 세법대로 한다면 니퍼트는 거주자였다. 1년에 240일 이상을 한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한미조세조약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게 ‘거소’였다. 즉 선수가 주로 거주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판단하는 문제였다. 우리 측 주장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니퍼트는 미국에 거소가 있었다. 미국에 집이 3채였고 휴대폰, 아이들 교육비 등이 지급되고 있었지만 한국에는 구단이 마련해준 집 외에는 니퍼트 명의의 집은 없었다. 그리고 니퍼트는 한국 계좌에 돈이 없었다. 연봉은 미국 계좌로 지급받았다. 니퍼트의 중대한 이해관계 중심지가 한국이냐, 미국이냐를 결정해야 했는데 한국의 국세청에서는 니퍼트가 한국에서 돈을 벌었으니까 중대한 이해관계 중심지를 한국으로 봤고, 우리는 그 중심지를 미국으로 주장한 것이다. 미국에 당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미국 계좌로 들어온 돈을 미국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중대한 이해관계 중심지를 미국이라고 말한 것이다. 국세청에서 세금 고지가 되기 전 과세전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니퍼트는 이 제도를 활용했다. 법원의 배심원 제도처럼 교수 등이 포함된 세금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원들 앞에서 니퍼트에게 청구된 24억 원 세금의 부당함을 주장한 것이다. 11명의 심사원들 중 6명 이상이 세금이 부당하게 청구됐다고 손을 들어주면서 니퍼트에게 부과된 24억 원은 소멸되고 말았다.”
그러나 니퍼트는 2016년과 2017년의 소득은 44% 소급 적용받아 수억 원의 추가 세금을 납부했다고 한다. 단 한미조세조약에 의해 한국에서 납부한 세금 중 일부는 미국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퍼트가 지난 2년 동안의 수입 관련해서 추가 세금을 낸 배경에는 한국인 여성과의 결혼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결혼하게 되면서 집을 장만하게 됐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중대한 이해관계 중심지가 한국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인 아내와는 2015년에 이혼했다.
2012년 NC 다이노스 선수로 KBO리그와 인연을 맺은 에릭 해커도 세금 폭탄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커는 60여 쪽 분량의 자료를 준비, 직접 세무서를 찾아가 자신의 세금이 부당하게 청구됐음을 소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의 주윤호 회계사 설명대로 이해관계 중심지가 미국이라는 내용과 미국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미국 보험을 갖고 있으며 해커 명의의 집도 텍사스에 마련돼 있는 등 관련 서류들을 준비해서 세무서를 방문했던 것. 덕분에 고지된 세금에서 액수가 대폭 삭감돼 3억 원대의 세금을 납부했다는 후문이다.
모든 외국인 선수들이 세금 폭탄을 맞은 건 아니다. 일부 선수들은 거주자로 분류되지 않아 기존의 22% 세금만 적용받았다고 한다.
문제는 재계약이 안 돼 시즌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 선수들이 과연 내년 5월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겠느냐는 부분이다. 매년 5월에 하는 종합소득세는 그 전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발생한 소득을 신고해 세금을 정산하는 절차다. 재계약이 안 된 선수들이 이후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들이 이듬해 5월, 세금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KBO리그와 재계약 대신 한국을 떠나 마이너리그나 멕시코, 대만 리그로 활동 무대를 옮기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