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배우 이보희가 한복을 입고 단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진제공=김혜순한복 | ||
하늘로 날아 올라갈 듯 날렵한 저고리의 배래선(소매의 아래쪽 곡선 부분)과 도련(저고리 앞 여밈 부분)의 곡선이 동정(저고리 깃 위에 조붓하게 덧대는 흰 헝겊)의 예리한 직선과 만나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앙증스러우리만큼 둥글면서도 뾰족한 작은 섶코(도련과 동정이 만나는 부분)와 길게 흐르는 옷고름의 아름다움이 더해지면 보는 이들의 감탄사가 절로 나왔으리라. 더구나 화려한 색깔의 치마가 흔들리며 몸의 움직임과 함께 만들어내는 정중동의 아름다움은 한국의 미 그 자체라고나 할까.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여성들도 입었던 치마와 저고리는 시대 변천에 따라 그 형태가 크게 달라져 왔으며 일상복으로서는 자취를 감췄지만 지금도 연회복이나 명절 옷으로 사랑을 받으며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치마는 삼국시대 문헌에는 상(裳)·군(裙)으로 표기되어 있고 조선 세종대에 이미 저고리[赤古里]와 함께 쳐마[赤]라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 치마의 종류에는 예복용으로 스란치마·대란치마·전행웃치마가 있고 일상복으로는 겉치마와 속치마인 대슘치마(궁중에서 여자들이 정장을 할 때 입었다)·무지기(상류층 여인들이 예장할 때 입었다) 등이 있었으며 일을 할 때 겉치마 위에 덧입는 행주치마가 있었다. 겉치마도 계절별로 솜치마·솜누비치마·겹치마·겹누비치마·홑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이밖에 여염집 부녀자가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장옷이나 쓰개치마라는 것도 있었다.
양반 부녀자들의 치마 길이는 넓고 길었으며 치마에 금박을 놓은 스란단을 댔다. 일반 부녀는 민치마를 입었고 천민은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 두루치라는 치마를 입었다.
스란치마는 보통 치마에 30cm 너비의 스란단이라는 비단폭 1폭을 더 댄 것으로 소례복이었으며, 30cm 간격으로 그 위에 한단 더 댄 것을 대란치마라 하여 대례복으로 입었다. 스란단의 금박 무늬는 계급에 따라 달랐는데 왕비는 용문, 공주·옹주는 봉황문, 사대부집 아녀자는 글자와 꽃무늬를 사용했다.
▲ 신윤복의 미인도(위)와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행렬도’(아래). 연합뉴스 | ||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면 기녀들이 긴 치마를 허리에서 걷어 올리고 띠를 매고 있는데 양반 계층에서도 긴 치마를 위로 거두어 들고 다니는 경우가 늘면서 거들치마라는 명칭이 나왔다. 거들치마를 두르는 방법은 신분과 당파에 따라 달랐다고 한다.
허리끈과 치마폭이라는 비교적 간단한 형태로 이루어진 치마와는 달리 저고리는 길·소매·섶·깃·동정·고름 등으로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어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들면 더욱 아름다웠다.
상고시대 한국 복식의 기본형에서 저고리는 깃을 외로 여미고 소매가 좁았으며 길은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것이었으며 허리띠를 매었다. 그러나 고려 이후는 깃을 오른 쪽으로 여미고 길도 다소 짧아지면서 허리띠 대신 고름으로 여미었으며 깃에 동정을 달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전기 이후에는 길이 더욱 짧아져 여름 홑저고리의 경우 위로 말려 올라가 치마허리도 감추지 못하고 말기에 이르러서는 가슴이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저고리는 봄·가을용으로 물겹저고리·박이저고리, 여름용으로 적삼·깨끼저고리, 겨울용으로 솜저고리·삼겹저고리 등이 있다. 형태에 따라서는 전체를 같은 감으로 제작하는 민저고리, 깃·고름·끝동이 다른 색인 반회장저고리, 곁마기가 있는 삼회장저고리, 소매를 색동으로 하는 색동저고리 등이 있다.
삼회장저고리는 노랑이나 연두 바탕에 자줏빛 천으로 깃·끝동·고름을 달고, 저고리 겨드랑이에 자줏빛 곁마기를 댄 것으로 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곁마기가 없는 것을 반회장저고리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