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물은 한민족의 멋과 흥이 어우러진 일반 서민들의 축제이자 의식이다. 사진은 경복궁에서 추석맞이 ‘얼싸’ 흥겨운 한마당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보존회의 풍물놀이(농악) 공연.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풍물의 기원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했을 것이라고 본다. 3세기 진수가 쓴 <삼국지(三國誌)> 위지 동이전에 보면 한반도 중남부지방의 서쪽에 있던 마한에서는 항상 오월에 씨뿌리기를 마친 다음 귀신에게 제사하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풍물은 쓰임새나 형식에 따라 다양하게 불렸다. 풍물놀이를 ‘메구친다’ ‘굿친다’ ‘풍장친다’고도 했으며 이때 쓰이는 악기를 ‘풍물’ ‘기물’ ‘굿물’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풍물은 사물놀이나 광대놀이, 남사당패나 걸립패와도 혼용돼 왔다.
최근에는 ‘농악’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우리의 민속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농사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을 허락했기 때문에 풍물패들이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데서 일반화됐다는 설이 있다.
이런 용어상의 다양함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풍물은 축원, 노작, 걸립, 연희 등 여러 가지가 혼합되고 분화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축원형태란 잡귀와 액운을 물리치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메구굿, 마을의 수호신에게 마을의 안택을 축원하는 당산굿, 집을 새로 마련하고 집안의 으뜸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성주굿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노작형태의 풍물은 모심기와 논매기 김매기 타작 등을 할 때 농민들의 피로를 덜어주고 노동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함께 치는 풍물로서 두레 또는 풍장이라고도 했다. 걸립형태는 마을이나 장마당을 돌며 돈이나 곡식을 걷는 것이며, 연예형태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풍물패가 관람자에게 연희를 보여주기 위한 풍물로 남사당패가 대표적이다.
풍물은 꽹과리(쇠) 징 장구 북 소고 등 타악기가 중심이 되고 태평소 나팔이 가세한다. 이런 악기를 다루는 이를 잽이 또는 치배 등으로 불렀으며 그 뒤를 따르는 놀이꾼을 잡색 또는 뒷치배라 불렀다. 잽이들도 상쇠와 부쇠, 수장고와 부장고 등으로 계급의 구별이 있다.
농악대의 행렬 배치는 영기(令旗)와 농기(農旗)를 앞세우고 나팔수 쇄납수 상쇠 부쇠 종쇠 징수 수장고 부장고 수북 부북 수뻐꾸 부뻐꾸 등이 차례로 서고 그 뒤에 잡색이 따른다.
▲ 경남사천에서 개최된 제48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동해시 ‘망상 괴란 고청제 농악’. 사진제공=동해시청 | ||
놀이에는 진법이라는 것도 있어 풍물을 치면서 선이나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원진(圓陣) 장사진(長巳陣) 을자진(乙字陣) 오방진(五方陣) 등의 모양을 만든다.
포수 양반 각시 할미 조리중 등의 잡색들은 연주가 끝난 후 따로 광대놀이 등으로 재미를 더하기도 했다.
풍물의 형태와 내용은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 중에서도 경기 풍물은 삼남 지방 풍물과 구별해 웃다리 풍물이라고 부르는데 연희와 걸립 성격이 강해 현존하는 풍물은 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안성은 남사당패 풍물의 본고장이다. 치복(풍물 의상)은 흰색 바지저고리와 청색 조끼, 삼색띠이며 상모, 고깔을 썼다. 꽹과리 가락이 발달되어 있고 징과 북의 수효가 타 지역에 비해 적지만 짜임새가 다양하며 어린 무동들의 신나는 무동놀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호남 풍물은 좌도와 우도로 나뉘는데 좌도 풍물은 전원이 전립을 쓰고 치복도 비교적 간소하여 평상복 또는 흰 바지저고리만 입었다. 꾕과리와 장구가 중요시되며 가락은 빠르고 투박하면서 힘이 있다. 우도 풍물은 치복이 매우 화려하며 쇠잽이들은 상모를 썼다. 가락은 주로 느린 것이 많으나 다채롭고 장구가 중요시되어 장구 개인놀이가 발달됐다. 이밖에도 강원 풍물, 영남 풍물, 영서 풍물도 나름대로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경상남도 사천시 송포동 풍물의 12차(12종의 가락을 모아 짠 놀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