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마을의 현실도 여간 쉽지 않은 모양이다.
[일요신문] 올해 크리스마스도 끝났다. 이제 새해를 기다린다. 따뜻한 온기와 배려가 넘쳐야 할 연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이들이 올해처럼 조용한 연말연시는 처음이란다. 실업률 등 각종 지표에서 나타나듯, 서민들 피부에 와닿는 민생경제는 차갑기 그지없다. 다들 내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얘기만 들려온다. 이런저런 민생 이슈가 서민들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다. 문득 산타클로스를 떠올린다. 성탄절을 보낸 산타는 이 같은 민생 이슈 속에서 과연 잘 보낼까. ‘일요신문’은 ‘산타마을’이란 동심의 세계를 가정하며, 최근 서민들에게 닥친 민생 이슈를 곱씹어 본다. 이 글은 철저하게 현실을 반영한 ‘페이크 다큐’다.
아이들의 ‘동심’은 산타마을 에너지의 원천이다.
산타마을은 핀란드 ‘로바니에미’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원활한 선물 전달을 위해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산타마을의 지부가 있다. 한국지부의 책임자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선도하며 올해 상수(上壽·백세)를 훌쩍 넘긴 김산타다. 그는 산타 경력 40년 차의 배테랑이다.
그런 김산타는 요즘 고민이 많다. 가뜩이나 떨어진 출산율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동심’을 에너지 삼아 움직이는 김산타 입장에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 문제 역시 점점 힘겨워지고 있는 민생 탓 아니겠나. ‘동심’을 바라는 김산타지만, 이땅 서민들에게 ‘동심’어린 아이들을 낳아달라고 바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잇따라 출산율 재고정책을 내놓고, 김산타도 효과가 있기를 기대했지만 이제 이런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통계청 기준 지난해 결혼연령은 남자 32.9세, 여자 30.2세라 한다. 불과 10년 전과 비교해 1.5~1.7세나 높아졌다. 김산타는 생각한다. ‘동심’은커녕 그것을 만들 결혼도 사치가 된 세상이라고.
그럼에도 김산타는 힘을 내 올해도 ‘동심’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포장하고 철야을 마다하지 않으며 선물을 전달했다. 여전히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이기에.
하지만 김산타는 몇 해 전부터 힘이 쭉 빠졌다. 산타마을은 몇 해 전부터 비용 절감을 위해 전 세계 산타들의 고용계약을 정규직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으로 바꿨다. 각 지부는 사실상 독립채산의 대리점 하청 업체가 됐고, 김산타도 자연스레 고용신분이 바뀐 것이다.
돈 벌자고 느지막한 나이에 산타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늘 언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늘어난 각종 자비 부담 비용 탓에 어깨에 힘이 쭉 빠진다. 얼마 전 유럽의 몇몇 지부에서 흥분한 몇몇 산타가 본부 앞에서 노조인정과 처우개선을 바라는 시위를 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산타는 성탄절 시즌에 물론 제일 바쁘다. 하지만 그 외 시간에도 놀지 않는다. 매일매일 선물을 바라는 아이들의 편지를 받아야 하고, 완독한다. 김산타는 단 한 번도 아이들의 편지를 허투루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고령의 김산타에게 이러한 격무는 좀 버겁긴 하다.
영화 엘프의 스틸컷
요정들의 올해 최저시급이 7530원으로 책정됐다. 지난해 비해 16.4%가 인상됐다. 내년엔 8350원으로 더 오를 예정이다. 요정들은 12월이 되면 가장 고생하는 일꾼들이다. 작업 도중 사고 위험에도 늘 노출돼 있다. 그러기에 김산타는 요정들이 정당하게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지만, 요즘은 솔직히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요정들의 과업은 동심의 눈을 피하려면 야간작업이 우선이었다. 야간수당은 통상임금의 1.5배에 해당하기 때문에 요정들의 임금은 더더욱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다.
올해는 어찌어찌 요정들의 임금을 맞춰줄 수 있었지만, 문제는 또 있다. 산타마을의 작업은 사정상 잔업과 야간근무가 일상이지만, 주 52시간제 적용으로 문제가 생겼다. 올해는 결국 고령의 산타들이 일선 작업장에까지 투입되며 위기를 넘긴 상황이다. 게다가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금까지 줄어드는 바람에 일부 요정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당장 내년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김산타에겐 썰매를 끄는 사슴 루돌프를 돌봐야하는 책임도 있다. 어쩌면 루돌프의 헌신이 있기에 산타마을의 과업이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김산타는 요즘 루돌프들을 보면 눈물이 앞선다.
루돌프 이미지컷
일단 올해 루돌프들의 주식량인 곡물 시세가 훌쩍 올랐다. 특히 루돌프가 좋아하는 ‘밀’의 시세는 12월 26일 기준으로 1톤 당 188.86달러의 체결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56.89달러에 비해 무려 20%나 상승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산타는 루돌프가 좋아하는 ‘밀’을 줄이는 대신 비교적 가격 안정세를 보이는 옥수수와 콩으로 대체하고 있다.
여기에 산타마을은 요즘 동물보호단체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몸살을 앓고 있다. 썰매를 끄는 루돌프가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달리는 게 루돌프의 본능이라고 김산타는 단체들에게 늘 항변하지만, 그들의 항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김산타의 올해 성탄절은 끝이 났다. 여전히 김산타를 기다리는 ‘동심’이 있기에 그는 내년에도 달릴 작정이다. 과연 산타마을은 조금 더 평온하고 따뜻한 내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