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화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형을 보여주는 호작도는 우리나라 민속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 | ||
우리 민화의 시작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선사시대 암벽화에 그려진 호랑이, 물고기 등의 그림은 민화의 소재와 같다. 삼국유사 처용의 설화처럼 고려와 조선시대 나쁜 귀신을 쫓는 그림을 대문에 붙여 전염병을 예방하는 풍속도 민화와의 관련성을 말해 주고 있다. 청자나 분청사기 등에 새긴 많은 그림도 순수 민화풍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민화가 유행한 것은 17세기 영·정조 시대 대중문화가 활성화되면서부터로 추정되고 있다. 민화는 1960년대 중반까지 창작이 지속돼왔지만 생활방식이 변화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민화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도 그 빛깔에 있다. 감, 주, 황, 녹을 주색으로 하여 홍, 녹, 흑, 백이 알맞게 곁들여지는 색조는 건물의 단청이나 우리 아낙네들의 옷 색깔과 일치된다고 한다. 색감이 본디 관능에 속하는 감각이고 보면 겨레의 체질에서 우러나온 색조는 민화나 단청, 의복 할 것 없이 동일하게 표현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정통 회화의 기법과 화법에 얽매이지 않은 민화의 구도, 원근은 모두 자유스러웠다. 민화의 작가들은 먼저 화폭 안에서 나타나는 형상의 짜임새와 새로운 질서를 더 중요시했다. 다양한 배치를 통해 화폭 안에서의 움직임, 시간의 흐름, 자연의 음악소리를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 십장생도 10곡병. 사진제공=삼성미술관 리움 | ||
▲ 위 호작도와 같이 해학적이며 무섭지 않게 묘사된 것은 아마 호랑이에 대한 우호감에서 비롯된 듯하다. | ||
까치와 호랑이 그림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와 이를 구해주고 도리어 잡아먹힐 처지에 처한 나무꾼, 그리고 기지로 호랑이를 다시 구덩이에 빠뜨리는 까치의 설화가 소재다. 호랑이는 약간 어리석고 해학적으로 그려지며 까치는 인간의 편을 들어주는 길조로 표현된다.
에밀레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원형이 된 호랑이 그림도 잘 알려져 있다. 1945년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호랑이의 눈이 사팔뜨기로 그려졌고 근대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 호랑이가 카이젤 수염도 달고 있다. 한 마리 호랑이에 줄무늬호랑이(참호랑이)와 점무늬호랑이(개호랑이)가 혼합된 형태도 특이해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