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는 지난 12월 12일부터 차량 화재 1차 리콜 대상이었던 520d 등 42개 차종 10만 6317대에 대한 흡기다기관 교체를 무상수리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2월 12일은 BMW의 차량 화재 원인을 설계결함으로 지목한 국토부가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균열에 따른 냉각수 침전물이 쌓이는 흡기다기관을 EGR 모듈 교체와 함께 추가로 리콜해야 한다고 밝히기 12일 전이다. BMW는 그동안 EGR 쿨러 균열에 따른 냉각수 누수와 차량 화재 간 상관관계만 인정, 흡기다기관 교체를 제한 EGR 모듈 교체만 진행했다.
박심수 BMW 화재결함 원인조사 민관합동조사단장이 2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BMW 차량 화재 사고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앞쪽으로 문제의 흡기다기관, EGR쿨러 모습. 고성준 기자
이에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국토부가 BMW 조치에 한발 늦게 대응하며 소비자 피해를 막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가 EGR 모듈 교체에 대한 리콜계획서를 접수할 당시 흡기다기관 교체를 포함해야 했다는 것이다. 특히 BMW는 국내와 달리 북미에선 차량 화재에 따른 리콜을 진행하며 EGR 모듈 점검 후 필요시 흡기다기관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업계 한 전문가는 “리콜 적정성을 리콜계획서 승인 후에 진행했고, 적정성 조사 진행 동안 새는 정보도 막지 못해 BMW는 무상수리를 했다”고 했다.
BMW는 국토부 민관합동조사단이 화재사고 원인 규명을 진행하는 중인 지난 11월 23일 국토부에 무상수리 의향을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상수리는 제작사가 소비자에게 공지할 의무가 없고, 직접 서비스센터를 찾아온 경우에만 수리해주면 된다. 리콜 진행이 결함 인정을 의미한다는 것도 완성차 제조사가 무상수리를 선호하는 이유다. 실제 BMW는 흡기다기관 자체에는 설계 결함이 없으며 EGR 쿨러의 누수가 있는 경우에만 손상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 무상수리라도 진행하는 게 옳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BMW가 무상수리를 통해 리콜을 지연하고 있다는 점이다. BMW는 지난 12월 24일 낸 입장자료를 통해 “EGR 쿨러 누수가 있는 경우에 흡기다기관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국토부의 의견과 같다”면서도 “결함 시정 방식은 자료 제출을 통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리콜 전환에 나서지 않을 시 강제 리콜까지 나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2019년 상반기 이후에야 리콜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에 BMW 차량을 수입·판매하는 BMW코리아가 리콜 사항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고 본사와 조율 후 리콜 계획을 내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흡기다기관 교체 필요를 소비자에 알리지 못하고 흡기다기관 교체가 강제되지 않는 사이, 흡기다기관 문제로 인한 차량 화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 일요신문이 단독 보도한 ‘안전진단 받은 BMW 차량의 화재’는 흡기다기관이 사고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12월 25일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발생한 BMW 화재도 리콜 이후 흡기다기관을 교체하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리콜을 받은 차량이지만 흡기다기관을 교체하지 않았다”며 “검식을 진행 중이지만 흡기다기관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BMW의 결함 조치 꼼수를 검토 없이 승인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국토부가 BMW 리콜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지난 8월 이후 5개월여간 거친 민관합동조사단 화재 원인 조사로 설계결함 결론을 냈음에도 리콜 보완 방안이 사실상 없는 탓이다. BMW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포함한 설계 전반 결함을 환경부와 국토부에 각각 달리 신고하는 방식으로 한발 앞섰고, 국토부는 최근에야 결함 은폐·축소 사실을 확인했다. 박심수 민관합동조사단장은 “지난 4월 환경부 리콜은 국토부 리콜과 원인 및 방법이 같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 리콜 시스템에 대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원과 장비에서 제조사에 뒤질 수밖에 없는 국토부가 리콜 계획을 사전에 검토하고 검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토부가 BMW가 리콜 대상 차량을 축소 발표한 부분을 찾아 추가 리콜을 이끄는 성과를 올린 것은 고무적이지만 차량 화재의 근본 원인을 완전히 없앴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결국 강력한 징벌적 벌과금을 제도화해 차량을 개발하고 만든 제조사가 이실직고하도록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화재 원인 발표 후 BMW 집단소송 참여 차주 늘었다 ‘해온’ 2400여명 ‘바른’ 1000여명 “소송가액도 높여” 국토부가 BMW의 늑장리콜 및 결함 은폐·축소에 대해 과징금 112억 원을 부과한 가운데 BMW를 구매했던 차량 소유자들이 나서 BMW를 향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국토부가 유의미한 리콜 추가 조치를 끌어내지 못했음에도 화재 원인 책임을 BMW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2월 24일 국토부 민관합동조사단의 화재사고 원인 조사 발표 이후 BMW 차주들의 피해보상 집단소송 참여가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협회 BMW 집단소송 법률자문을 맡은 법무법인 해온은 현재까지 2400여 명 차주가 집단소송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BMW피해자모임 소송을 진행 중인 법무법인 바른은 지난 12월 24일 이후 소송 참여 문의가 늘어, 현재까지 소송 참여 차주는 1000여 명이라고 전했다. 하종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소송 참가자 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소송가액도 높였다”고 했다. 한편 BMW는 리콜 차량 소유자들의 집단소송에 대해 시간끌기로 일관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BMW는 법무법인 해온이 지난 8월 31일 1227명 차주와 함께 서울중앙지법에 낸 1차 소장에 대해 약 4개월 동안 답변서 1장만 제출한 상태다. 구본승 법무법인 해온 변호사는 “BMW 측은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에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는 등 시간을 끄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면서 “만일 독일 본사에서 소장 수령을 회피하는 등 소송 개시를 회피하는 경우에는 국내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