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한국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칼을 갈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두 번째 원내대표 낙선할 때만 해도 의원들을 다 만나지도 않고 전화만 돌린 경우도 있을 정도로 열성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번 만난 의원도 두 번, 세 번 만날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귀띔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이번에 치열하게 뛴 데에는 이번에 패배하면 뒤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국당 비박계 의원실 관계자는 “원내대표 선거에서 3번이나 연속 떨어지면 4번째 원내대표 선거나 당 대표 선거 등에 더 이상 출마가 어렵다. 그러면 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다 하더라도 갈 수 있는 자리가 ‘여성 최초 국회 부의장’ 정도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히려 김학용 원내대표 후보보다는 러닝메이트로 나왔던 김종석 정책위의장 후보가 아깝다는 얘기가 많다. 당 내에 ‘성실하고 말 잘하고 정책을 잘 이해하고 설계할 만한 사람으로 이만한 사람이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서도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보고 찍는 사람이 어딨나. 어쩔 수 없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한국당 내에서는 친박표가 결국 나경원 원내대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평소 친박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나 원내대표가 선거를 거치면서 친박에 비교적 유화적인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다. 2016년 11월 나 원내대표는 당시 인재영입위원장직에서 사퇴하면서 “당이 곪아 터진 환부를 도려내고 깨끗한 중도보수 가치의 구심점으로 다시 우뚝 서려면 이제는 강성 진박이 후퇴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나 원내대표의 원내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밝힌 출마의 변은 “이제라도 네 탓이 아닌 내 탓을 해야 하며, 친박과 비박은 금기어로 만들어야 한다”며 “친박, 비박이 서로를 구분지어 상대방에게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스스로에게는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는 해당 행위이자 자해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을 ‘친박이 청산 대상이 아니라 함께해야 할 통합 대상’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표로 드러난 표심에서 김학용 의원은 35표로 복당파 숫자만큼만 나왔다. 당 내부에서도 복당파가 좌우하는 상황이 고깝게 느껴지지 않았겠나”라면서도 “반면 당내 대부분의 시각은 곧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비박계가 당권을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나 원내대표가 이번에 쉽게 당선된 측면이 있다. 비박계 혹은 복당파가 당권에다 원내대표까지 ‘둘 다 해먹진 말라’는 의미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나경원 원내대표 당선으로 한국당 내 비박계 독주가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나 원내대표가 친박 힘이 모여 당선됐기 때문에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지난 15일 한국당이 조직강화특위에서 21명의 당협위원장 배제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때 나 원내대표도 비대위 결정에 반발하는 모습도 보였다.
13일 나 원내대표는 취임 첫 비상대책위 회의가 끝나고 “인적 쇄신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 시기가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의원 임기가 남아 있는데 인적 쇄신이 지나치면 대여 투쟁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엇박자를 냈다.
나 원내대표의 반발 때문인지 이후 발표된 당협위원장 배제 명단에서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영남 다선 의원들이 꽤 빠진 모습이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럼에도 친박들은 섭섭할 수 있다. 어쨌건 명단에 대거 친박이 포함됐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나 원내대표가 태극기 집회에서 나올 만한 이야기를 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유한국당 비대위 한 관계자는 “나 원내대표가 ‘박근혜는 석방하라’고 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친박도 이제는 ‘친박’으로서가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상관없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율 교수는 “한국당 첫 여성 원내대표가 한국당에도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긍정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야당인 만큼 대여투쟁이란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당은 내부 수습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나 원내대표가 한국당 내부 수습을 얼만큼 잘해 나갈지 일단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