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우승도전 선봉에 나설 공격수 황의조.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아시아 최대 축구대회, 월드컵에 이어 대한민국 대표팀이 참가할 수 있는 두 번째 규모의 축구대회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개막이 약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59년만에 대회 우승을 목표를 가지고 격전지로 떠났다.
대한민국은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잡아내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바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1승 2패로 16강에서 탈락하는 실패를 겪었다. ‘1승 상대’로 평가되던 스웨덴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세계무대에서 대표팀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아시아로 무대를 옮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팀은 ‘아시아 호랑이’를 자부하는 만큼 아시안컵에서는 강력한 전력이다. 조별리그 상대인 필리핀의 미드필더 슈테판 슈뢰크도 AF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전력을 언급했다. 그는 ‘슈퍼스타’ 손흥민을 경계하며 “한국은 기술적, 전술적으로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 축구에서도 높은 수준”이라고 치켜세웠다.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 사진=대한축구협회
대한민국은 지난 2018년 5월 열린 이번 대회 조추첨 결과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중국과 함께 C조에 편성됐다. 호주·오만·쿠웨이트(2015년)나 호주·바레인·인도(2011년)에 비하면 더 쉬운 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피파랭킹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피파는 2018년 12월 현재 기준 대한민국 53위, 중국 76위, 키르기스스탄 91위, 필리핀 116위의 순위를 발표했다.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은 예멘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컵을 경험하는 국가다. 자연스레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중국보다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C조에 편성된 4개 국가 모두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중국의 마르첼로 리피(이탈리아), 필리핀의 스반 예란 에릭손(스웨덴), 키르기스스탄의 알렉산드르 크레스티닌(러시아) 등은 모두 유럽 출신 감독들이다. 감독의 국적만으로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다. 4명의 유럽출신 감독들의 지략 대결도 대회를 지켜보는 재미가 될 수 있다.
# 대회 첫 출전하는 새내기들
한국은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필리핀과 첫 경기를 갖는다. 이들은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우승한 지난 2018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4강에 진출한 바 있다. 4강에서 베트남의 문턱에 막히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에릭손 감독은 스즈키컵 직전 지휘봉을 잡았다.
이들은 4-4-2 포메이션을 토대로 대회에 임했다. 원정에서 베트남과의 4강 2차전에서는 3-4-3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주기도 했다. 수비에 더 많은 숫자를 두려는 시도였다. 이들에게 어려운 경기가 예상되는 한국을 상대로도 이같은 변화가 예상된다.
필리핀의 주요 선수는 공격수 필 영허즈번드다. 영국 태생의 이중국적자인 그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 첼시에서 축구를 시작해 현재 필리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는 102경기 52골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형제 제임스 영허즈번드도 94경기에 출전해 호흡을 맞췄다.
국제적 명성이 가장 높은 선수로는 영허즈번드 형제보다도 골키퍼 닐 에더리지가 꼽힌다. 잉글랜드 U-16 대표 출신이기도 한 그는 A매치 60경기를 소화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카디프 시티 FC의 주전 골키퍼로 이번 시즌 19경기에 나선 현역 프리미어리거이기도 하다. 필리핀은 소속팀에 대한 배려로 그를 한국과의 첫 경기에만 출전시키고 돌려보낼 예정이다.
키르기스스탄은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획득한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제외하면 각급 대표팀 상대 전적조차 없는 미지의 국가다. 소련 해체(1991년) 이후 세계축구 최하위권을 전전하던 이들은 전임 세르게이 드보 리안 코프 감독 시절 성장을 거듭해 현재 수준에 이르게 됐다. 2012년 당시 이들의 피파랭킹은 현재 91위와 100계단 이상 차이가 나는 199위였다.
마카오, 미얀마, 인도 등을 물리치고 사상 최초로 아시안컵에 진출했지만 한계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상위권으로 간주되는 팀들을 상대로는 큰 점수차 패배를 면치 못했다. 지난 2017년 8월 우즈벡을 상대로 5-0, 2018년 11월 일본을 상대로 4-0 대패를 당했다. 카타르를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했다(0-1 패).
터키 무대에서 활약중인 미를란 무르자예프, 독일서 뛰는 비탈리 룩스 등이 대표 공격수다. 무르자예프는 “키르기스스탄에 축구 붐을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며 각오를 전한 바 있다.
마르첼로 리피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중국은 2010년대 들어 국가적 정책으로 ‘축구 진흥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세계적 명장 리피를 ‘모셔오기’에 이르렀다. 리피 감독은 월드컵과 UEFA 챔피언스리그,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경험이 있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감독이다.
월드컵 지역예선이 한창이던 2017년 리피 감독이 부임했고 남은 일정에서 중국은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을 상대로는 2010년에 이어 사상 두번째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이때까지 2000만 유로(한화 약 255억 원)에 달하는 연봉이 아깝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다시 무기력했던 중국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7년 말 열린 동아시안컵에서 한국, 일본, 북한을 상대로 2무 1패만을 기록했다. 2018년 1년간 열린 A매치에서는 3승 3무 4패로 부진했다. 미얀마, 태국, 시리아 등 아시아 약체들을 상대로만 승리를 거뒀을 뿐이다. 리피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불만을 서슴치 않고 드러냈고 아시안컵 이후 계약 종료를 천명한 상태다. 후임으로는 중국 U-23 대표팀을 맡고 있는 거스 히딩크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다.
다만 중국 공격수 우 레이만큼은 경계를 늦춰선 안될 선수로 꼽히고 있다. 상하이 상강 소속 공격수인 그는 중국슈퍼리그에서 11년만의 중국인 득점왕에 등극했다. 오디온 이갈로(나이지리아), 그라치아노 펠레(이탈리아), 파투(브라질), 헐크(브라질) 등 세계적인 공격수와의 경쟁을 이겨내고 달성한 기록이다.
최근 한·중 맞대결의 흐름 또한 불안요소다. 한국은 2010년부터 치른 중국과의 A매치에서 2승 2무 2패로 확실한 우위를 거두지 못했다. 소속팀과의 차출 협의로 대표팀에 뒤늦게 합류할 손흥민이 중국전부터는 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긍정적인 부분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