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己亥年) 정치판 관전 포인트는 종로를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다. 21대 총선은 1년 반 정도 남았지만, 지역구 쟁탈전은 기해년 4월 사실상 막이 오른다. 특히 종로 공천권은 ‘여야의 정계개편’, ‘내부 권력구도’, ‘자객 공천’ 등 권력암투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그만큼 이곳은 차기 대선주자들이 맞붙는 ‘별들의 향연장’이다. 이미 윤보선·노무현·이명박(MB) 등 3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했다. 차기 대권에 바짝 다가선 주자부터 재기를 노리는 인사, 새 판을 꿈꾸는 킹메이커 등이 종로를 기웃거리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 이종현 기자
현재 거론되는 종로 총선 시나리오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출마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재도전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 등 제3지대 인사의 공천설 등이다. 종로 총선 전쟁은 여권 내부 권력구도, 보수대연합, 제3지대 이합집산 등과 맞물려 기해년 상반기 정국의 태풍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여권에선 문재인 정부 황태자인 임 실장 출마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임 실장의 여의도 복귀설 한가운데에는 이른바 ‘정세균·임종석’ 연대설이 자리 잡고 있다. 국회의장을 지낸 정 의장이 임 실장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자신은 대권 플랜을 가동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 카드는 지역적으로 ‘전북과 전남’을 잇는 호남 벨트 구축에 방점을 찍는다. 정 의장은 종로에 출마하기 전인 15∼18대 총선까지 전북(진안·무주·장수·임실)에서만 내리 4선을 했다. 임 실장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전북+전남’을 묶어 호남 대망론의 파괴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카드라는 것이다.
세력상으로는 ‘정세균계’와 ‘86(80년대 학번·60년대 학번) 그룹’의 연합이다. 범 친노(친노무현)계로도 묶이는 정세균계는 한때 20명을 훌쩍 넘을 정도로 막강한 세를 구축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김진표·김영주·백재현 의원이 대표적인 정세균계다.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이었던 전병헌 전 의원과 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인 김성주 전 의원 등도 정세균계다. 정부 출범 이후 신 친문(친문재인)계로 부상한 86그룹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이끌었던 운동권이 주축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두 계파의 특징은 당 주류와 전략적 연대를 꾀하는 데 능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연대설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맞물린 양자의 이해관계가 한몫했다. 그간 국회의장직은 ‘마지막 불꽃’으로 인식했다. ‘국회의장→총선 불출마’는 일종의 관행이었다. 그 직전 국회의장을 지냈던 정의화 전 의원도 총선 재출마설이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불출마를 택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 의원이 종로 3선 도전 의지가 있어도 ‘이해찬발 중진 물갈이’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관측도 무성하다. ‘특정 지역 물갈이’, ‘수도권 중진 물갈이’ 등은 여야를 막론한 인적개편의 정석이다. 다만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차기 공천에서 전략공천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실장은 신 친문이 미는 ‘포스트 문재인’ 주자다. 임 실장도 차기 대권을 위해선 여의도 복귀가 필수다. 현재 임 실장은 재선(제16·17대)에 불과하다. 정치구력 대비 선수가 낮은 셈이다. 18대 총선(2008년) 출마를 끝으로, 공천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 임 실장은 2012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출범 당시 초대 대표였던 한명숙호에서 사무총장으로 임명됐지만, 당 안팎의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세상일이 늘 마음 같지 않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다”라며 사무총장직 사퇴 및 19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그만큼 당 내부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의 차기 공천 여부가 여권 권력구도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정세균·임종석 연대설’의 현실 가능성이다. 정 의원이 임 실장에게 종로 지역을 물려준다고 해도 난관은 많다. 당이 전략공천을 거부한다면, 임 실장이 스스로 공천 전쟁을 뚫어내야 한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임 실장의 불명예 퇴진은 당시 ‘혁신과통합’을 이끌었던 이해찬 대표의 사퇴 종용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임 실장이 종로 지역에 깃발을 꽂을 경우도 셈법은 복잡해진다. 이 경우 차기 대권의 추는 ‘정세균보다는 임종석’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이들이 비공개회동을 통해 묵계를 형성했어도 금세 깨질 수밖에 없는 연대설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정 의원 측 하부조직의 적극적인 지원도 담보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세균계 인사들이 곳곳에서 블로킹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내부 결속이 약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특히 이들의 연대설은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국무총리 견제용적 성격도 짙다. 이 총리가 ‘호남 대망론’을 업고 단독 드리블을 치고 나오자, 두 호남 주자가 맞불 작전에 나섰다는 얘기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문 대통령이 대권을 차지했듯이, 임 실장이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럽다”면서도 “여론조사만 보면, 이 총리와는 달리 대권주자로서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야권도 거물급 귀환을 둘러싼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종로 1순위는 자유한국당 차기 대표 후보군인 오세훈 전 시장이다. 그는 20대 총선에서 정세균 의원과 맞붙어 39.7%에 그치면서 예상 밖 참패를 당했다. 일단 오 전 시장은 현재 거주 중인 “광진을 당협위원장에 신청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종로 지역 공천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현재 광진을 현역은 민주당 대표를 지냈던 추미애 의원이다.
한국당 차기 당권도 변수다. 오 전 시장이 대표에 오른 뒤 21대 총선에 직접 선수로 뛸 수도 있지만, 인재영입이 지지부진할 경우 반대로 총선 불출마 뒤 전략공천을 단행할 수도 있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참패를 당할 경우 종로 총선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현재 보수진영에선 황교안·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형준·홍정욱 전 의원, 이석연 변호사 등을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들 중 다수는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출범 당시 ‘구원투수’ 후보로 거론됐던 인사다.
한국당 내부에선 종로 지역을 비롯해 ▲광진을 ▲서대문갑 ▲영등포을 등을 잠정적인 ‘자객 공천’ 지역으로 정했다. 서대문갑과 영등포을은 민주당 우상호 신경민 의원 지역구다. 임 실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등 청와대 핵심 참모진이 지역구에도 ‘자객 공천’으로 친문계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의견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당 안팎에 황 전 총리를 비롯해 김태호 전 의원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적지 않다”며 “총선이 가까이 오면 이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3지대 인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질 전망이다. 바른미래당 대표를 지냈던 안철수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노원병에서 재선한 안 전 대표는 19대 대선 직전 “모든 것을 걸었다”며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했다. 현재 노원병은 친문계인 김성환 민주당 의원의 지역구다. 안 전 의원이 노원병 도전에 나설 명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종로 총선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대연합이 현실화한다면, 오 전 시장이나 황 전 총리 등과 내부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의원의 종로 도전 여부는 보수대연합 등 보수진영의 정계개편 윤곽이 그려진 다음에나 결정된다는 의미다. 안 전 의원의 승부수가 정계개편의 종속변수에 불과해, 향후 험로가 예상된다.
바른미래당 한 축을 차지하는 유승민·이혜훈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차기 총선 때 한국당으로 복당하든, 제3지대에 남아있든 ‘험지 출마’를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유 의원과 이 의원의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과 서초갑으로, 보수 텃밭이다.
최근 유 의원의 측근인 이지현 전 바른미래당 정책연구소 부소장이 한국당에 복당을 신청했다. 한국당 한 전직 의원은 “바른미래당 내 국민의당 세력과 바른정당 세력은 아직도 ‘물과 기름’”이라며 “21대 총선 전 분열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당 내 친박(친박근혜)계가 건재한 만큼, ‘험지 출마’ 등의 승부수 없이는 복당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윤지상 언론인
‘도전이냐 용퇴냐’ 갈림길 선 정세균 ‘대권이냐, 용퇴냐.’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6선인 정 의원의 서울 종로 3선 도전 여부는 ‘여권 내부권력’의 분수령이다. 또한 20대 대선 도전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정 의원 앞에는 ▲총선 포기→대권 직행 ▲총선 출마→대권 도전 ▲백의종군 등 세 가지의 길이 있다. 이중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연대설 등은 ‘총선 포기→대권 직행’ 시나리오와 맞물린다. 하지만 정 의원이 여권 내부권력 구도에 따라 ‘총선 출마→대권 도전’을 강행할 수도 있다. 정 의원은 국회의장 시절부터 ‘포스트 권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개헌 등 제7공화국 건설에서 ‘정세균 역할론’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 의원의 가장 큰 장점은 ‘풍부한 콘텐츠’다. 2012년 총선 전 영·호남 민주화 세력을 묶는 ‘남부민주벨트’와 경제민주화의 초석이 된 ‘분수경제론’을 정치담론으로 끌어들인 이도 정 의원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에는 제9대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맡았다. 2007년 열린우리당 의장과 2008년 민주당 대표도 각각 지냈다. 18대 대선 때는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도 도전했다. 20대 국회 들어선 전반기 2년간 국회의장을 지내면서 탄핵 및 조기 대선 정국에서 ‘관리형 리더십’의 강점을 재확인했다. 문제는 ‘포스트’다. 총선이든 대권이든 도전 자체가 녹록지 않다. 국회의장을 지냈던 정 의원이 ‘중진 물갈이’ 여론을 뚫고 공천을 사수하기도 쉽지 않다. 경쟁력은 충분하지만, 후배를 위해 길을 터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용퇴론’에 시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약한 대중성’은 최대 아킬레스건이다. 정 의원의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당시 최종 득표율은 7.01%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6.52%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2∼3위를 차지한 손학규(22.17%)·김두관(14.70%) 후보와도 큰 격차를 보였다.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정세균계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와 안희정 캠프로 각자도생했다. 정세균계 내부 결속력도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21대 총선 공천부터 장벽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