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실트론 명목주주는 SPC, 실소유주는 최태원
2017년 ㈜SK는 LG로부터 LG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한다. 같은 시기 한국증권에서 1672억 원을 빌린 키스아이비제16차와 삼성증권에서 863억 원을 차입한 더블에스파트너쉽, 2곳의 특수목적법인(SPC)도 LG실트론 2대 주주였던 보고펀드로부터 지분 29.5%를 인수한다. 두 SPC의 주소지는 각각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 본사, 서초동 삼성금융사옥이다.
두 SPC는 주식가액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과 수익 기회를 최태원 회장에게 넘긴다.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이다. 대신 최 회장은 한국증권과 삼성증권에 보유 중인 ㈜SK 지분 각각 106만 주와 55만여 주를 담보로 내놓는다. 담보 제공 당시 시가로 각각 2865억 원, 1478억 원어치다. 한국증권과 삼성증권이 SK실트론 지분을 인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 투자자는 최 회장인 셈이다.
SK 측도 SPC의 SK실트론 지분 인수 당시 특별결의(발행주식 3분의 2) 요건 충족을 통한 경영권 안정과 해외기술 유출 가능성 제거를 위해서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SPC가 공동의결권 대상임을 인정한 셈이다.
금융감독원이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위법적 사용 문제를 지적하면서 최태원 SK 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본사. 박은숙 기자
한국증권도 SK도 대출을 받은 주체가 SPC 즉 ‘법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비슷한 구조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사모펀드의 인수금융 등 IB 관련 거래(deal)에서는 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자금흐름을 볼 때 사실상 최 회장이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으로 풀이했다.
문제는 한국증권이 초대형투자은행(IB)만 가능한 발행어음으로 자금을 조달한 데서 비롯됐다. 현행법에서 초대형IB가 발행어음으로 기업금융 외에 대출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한국증권은 초대형IB 가운데 가장 먼저 발행어음 업무 허가를 받은 곳이다. 삼성증권은 자기자금으로 조달했다.
# ‘개인대출’이면 공정위 ‘칼날’ 움직인다
개인대출로 최종 판단이 나면 한국증권은 중징계를 받는다. 두 SPC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의 실소유주가 최 회장이 되는 셈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23조의2는 총수 일가가 20% 이상(상장사는 30% 이상) 지분을 가진 계열사에 대해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 계열사들과 SK실트론 간 거래를 조사할 빌미가 된다. 처벌 대상은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이고, 계열사와 거래에서 내용과 유형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다. 처벌 규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이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최 회장의 기회유용 의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SK실트론 실적 급상승…최 회장 차익만 5000억 원
올 3분기 말 기준 SK실트론 매출 9750억 원 가운데 25%인 2429억 원이 특수관계자와 거래다. 전년도에는 9331억 원의 매출 가운데 178억 원이었다가 한 해 사이 급증했다.
SK실트론 주식 가치도 급상승했다. SK실트론 매출은 2016년 8363억 원, 2017년 9331억 원, 올해는 3분기까지 벌써 9750억 원으로 늘었다. 세전이익은 같인 기간 91억 원, 1327억 원, 2732억 원으로 급증했다. SPC 2곳이 보고펀드에서 지분을 인수할 당시 가격은 1주당 1만 2900원이다. 이는 지난해 주당순이익(P/E) 1738원 대비 7.42배에 해당한다. PER 값을 올해 9개월치에만 적용하면 3만 253원이 된다. 올 연간 순이익은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3600억 원이 넘을 수 있다. 주식가치가 4만 원이 넘을 수도 있다. 최 회장으로서는 2500억 원을 차입해 5000억 원 이상의 순수익을 거둘 수 있는 셈이다. 한국증권, 삼성증권과 담보계약은 5년이다. 그 안에 차익실현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 ‘기업대출’이면 일감몰아주기 탈출로 될 수도
최근 재계에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거나 사업부문을 사모펀드에 넘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만약 이번 한국증권의 SPC에 대한 대출이 ‘기업대출’로 인정되면 총수 일가가 TRS를 통해 우회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확보할 길이 열린다. 지배하지 않지만 계약으로 묶인 SPC를 특수관계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전례가 될 수 있다. 총수 일가가 계열사 지분을 SPC로 넘기고 대신 TRS로 계열사에서 창출되는 내부 관련 거래 수익을 가져오는 모델이 가능해진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