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집 씨가 ‘84년 대구 무장간첩사건’과 관련된 서류들을 가리키고 있다.
말을 떼기도 전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은 김 씨는 친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부모의 죽음에 대해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던 김 씨의 조모는 세상을 떠나기 전 그에게 ‘대구 간첩 주민 살해사건’에 대해 털어놨다. 그 날 이후 김 씨는 30여 년 전 사건 당일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 여러 정부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가 나이가 있으시니 뭔가 잘못 생각하시는 거로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무슨 간첩이냐고 했다. 근데 인터넷에 찾아보니 정말 갓난아이였던 나와 할머니의 사진이 찍힌 인터뷰 기사도 있더라.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던 거다”
김 씨가 육군본부에 요청해 받은 자료는 충격적이었다. 1984년 9월 24일 노동당 연락부 소속 무장간첩 한 명이 대구시 동구 신암동에 있는 ‘희민식당’에 손님으로 왔다. 간첩은 식당 여종업원이었던 강 아무개 씨와 언쟁이 붙었고 이를 말리려고 다가온 식당 주인 전갑숙 씨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고 강 씨도 사살했다. 이어 간첩은 식당에 오기 전 방문한 인근 미용실을 찾아가 여주인에게 총을 발사했고, 인근 상인에 의해 신분이 노출될 위험에 처하자 그 자리에서 극약을 먹고 자살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민간인 두 명을 사살하고 한 명에게 중상을 입힌 자가 간첩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간첩의 소지품에서 통상 노동당 소속 간첩이 휴대하는 판건식 전건(송수신기)과 북한이 1975년 도입한 벨기에제 브로닝 권총이 발견된 것이다.
사건은 사회 혼란을 일으키려는 간첩의 테러로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경찰은 전 씨를 포함한 피해자 3명이 간첩과 연루되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1984년 9월 26일 자 신문기사에서도 ‘대구 시경이 자살 간첩이 피해자들과 연관을 맺었을 것으로 보고 사전교류 흔적을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캡처=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1984년 9월 26일자 동아일보)
가장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김 씨와 조모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사건 이듬해인 1985년 김 씨의 조모는 정부를 향해 며느리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탄원서를 작성했지만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간첩 혐의로 조사받으니 할머니께서는 억울하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탄원서도 제출하셨다. 또 당장 먹고 살 방법이 막막해 대구시에도 몇 번이고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한다”
김 씨는 그렇게 30여년 간 묵혀뒀던 사건을 인지하고 나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가 간첩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김 씨가 육군본부로부터 받은 자료에도 ‘해안경계 실패, 관계기관의 협조체제 부실’ 등 국가의 책임을 언급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김 씨는 “대간첩작전지원 및 원호대책규정 제7조에 따르면 간첩의 소행 또는 대간첩작전으로 인하여 상이를 입은 자 또는 사망한 자의 유족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우리의 피해를 보상해 주면 그동안 공소시효 문제로 보상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도 보상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이를 방관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2015년부터 국가를 상대로 싸우고 있는 김 씨는 올해 초에도 국가와 대구시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6월 대구지법은 화해권고결정을 내렸으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끝내 7월 재판부는 ‘소멸시효가 지났고 공무원의 과실로 인한 법령위반 사실이 없다’며 소를 기각했다. 현재 김 씨는 항소해 재판을 진행 중이지만 이 역시 승소가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한다.
김 씨는 “올해 재판부가 화해권고 결정을 내리며 국가가 보상금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권고했고, 그 이전에는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제안도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수 십년을 힘겨워했는데 누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겠나”라며 “해안경계 치안이 확실했다면 군인과의 교전이 일어나는 게 정상 아닌가. 또 당시 자료를 보면 간첩이 넘어온 걸 보름 가까이 몰랐다고 하는데 이 역시 국가의 대응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책임이 분명하다면 정상적인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국가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씨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 국가배상법과 국가보안법 등 당시 관련법도 존재했는데 배상 방법이 없었던 것처럼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국가가 무언가를 했다는 걸 발견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