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2018년 3분기 부채비율은 725%에 달한다. 2016년 3월 현대상선이 채권단과 자율협약에 돌입해 용선료 협상, 구조조정 등을 거친 후 산업은행이 출자전환할 당시 부채비율 200%보다 무려 525%포인트 늘었다. 2018년 들어 3분기까지 누적 손실은 5000억 원에 육박했다. 삼일회계법인은 지난 9월 현대상선을 실사한 이후 2018년 1656억 원에 달하는 이자 비용이 2022년에는 두 배 규모인 3175억 원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결과를 내놨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연합뉴스
해운업계 전문가들은 금융 논리를 앞세운 산은의 접근이 해운업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산은은 2013년 ‘회사채 차환발행을 위한 특별 약정서’를 현대상선과 맺으며 항만터미널과 벌크전용선사업부, LNG사업부 등 알짜 사업부문을 매각하게 했다. 자금 투입을 위해선 유동성부터 확보돼야 한다는 금융 접근이었다. 현대상선 한 전직 임원은 “해운업은 하나의 거대한 장치산업인데 산은은 유동성이란 이유 하나로 팔다리를 잘라냈다”며 “터미널을 팔면 배를 대는 데도 돈을 써야 하고 적자구조만 심화한다는 기본도 몰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초 현대상선을 키워 글로벌 해운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한 산은의 계획은 현재까지 실패로 평가된다. 한진해운 알짜 자산으로 꼽혔던 롱비치터미널은 스위스 선사 MSC에 넘어갔고, 한진해운 파산 이후 현대상선으로 넘어올 것 같았던 화주사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유럽 선사로 넘어갔다. 현대상선의 경쟁력은 당장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해운사의 가장 큰 경쟁력인 화주 네트워크가 한진해운 파산 후 국내 해운업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함께 깨졌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용선료, 항만 터미널 이용료에 따른 운임 가격경쟁력 하락까지 겹치며 화주 이탈을 막지 못했다.
산은은 그러나 현대상선의 만성적자 심화를 현대상선의 무사안일로 떠넘기고 있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11월 기자간담회에서 “현대상선은 정부에 의지하는 경향이 커 자본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회사 경쟁력이 강화되지 않고 있다”며 “안일한 임직원은 즉시 퇴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2월 한진해운이 파산한 후 현대상선에 붙은 ‘국내 유일 국적 원양 해운사’라는 수식어가 현대상선 직원들로 하여금 도덕성 해이를 불렀다는 것. 산업은행 한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현대상선이 경각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말이 도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문제는 산은이 현대상선의 경영정상화가 지지부진한 이유를 도덕성 해이로 넘기면서 정작 스스로 구조조정 작업 실패에 대한 면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실제 산은은 2019년 초로 예정된 산업경제장관회의에서 구조조정 작업에 대한 면책을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드러났다. 산은은 산업경제장관회의를 위해 작성한 ‘현대상선 경영정상화 방안’ 내 회의 안건으로 구조조정이 잘못돼도 기관 경영평가 시 불이익을 주지 않고, 지원금을 회수하지 못해 기관에 손실이 나더라도 정부가 자본금을 지원해 주는 방안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 산은은 최근 한진해운 출신 경력직을 별도로 구성해 현대상선 직원과 경쟁시키는 방식의 충격 요법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내부 경쟁을 이끌어 직원 압박과 영업활동 개선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당장 현대상선의 경영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해운업계 한 전문가는 “해운업 특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또 하나의 산은식 접근”이라며 “화주와 계약 물량은 연단위로 가져오고 영업력은 운임에 기반을 두는데, 누구를 데려와 어떻게 실적 경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상선 내부를 중심으로 산은을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은이 대주주로서 고통을 나누기보다 비방만 일삼고 있다는 것. 현대상선 관계자는 “현대상선 임직원은 2011년 불거진 해운 불황으로 실적 부진을 겪으며 8년째 임금동결을 겪고 있다”면서 “2016년부터는 해상 직원까지 임금동결에 나서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해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상선 출신 한 재계 고위 임원은 “자식이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내부적으로는 질타해도 밖으로는 감싸줘야 하는 게 도리인데 산은은 오히려 앞서서 비판하고 있다”고 했다.
배동주 기자 ju@ilyo.co.kr
현대상선, 해운동맹 이전 검토 현대상선이 2019년 상반기 해운동맹 ‘2M’과 협력 지속 여부에 대한 협상을 앞둔 가운데 새로운 해운동맹에 참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산은이 정한 자구안에 따라 서둘러 진행한 2M 가입으로 인해 준회원 자격만 갖춘 데다 노선 운항상 불리한 부분도 많은 탓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세계 1·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스위스 MSC의 해운동맹 2M 대신 프랑스의 CMA CGM, 중국의 코스코, 대만의 에버그린 등이 참여하는 ‘오션 얼라이언스’에 가입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2M과 계약은 2020년 4월에 만료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2M과 맺은 계약이 현대상선 입장에서 불리한 조건이었던 것은 맞다”면서 “2M이 현대상선의 신조 발주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까지 보여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현대상선이 2020년 2만 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선박을 갖추면 다른 곳을 찾기도 쉽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은 지난 9월 정부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발주한 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국내 조선사와 계약, 건조 중이다. 2만 3000TEU급 선박과 1만 5000TEU급 선박이 각각 8척으로 2M과 계약 종료되는 2020년부터 순차적으로 도입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대형 컨테이너선 20대를 갖출 예정이니만큼 해운동맹 가입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2만 3000TEU급 12척은 아시아-구주 노선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어 오션 얼라이언스의 요청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동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