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덕대왕신종 한국종의 백미로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은 원래 봉덕사에 있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불리며 종소리에서 어미를 부르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하여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린다. 아래 사진은 종을 메달 때 사용하는 용뉴(위)와 종의 밑부분. 우태윤 기자 w | ||
한국종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종으로 평가되는 것은 그 독창적인 창작성과 고도의 예술성 때문이다. 한국종의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아름답고 그 소리는 은은하고 긴 여운이 만들어 내는 청아함이 배어있다. 이런 특징은 세계 어느 나라의 종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어서 흔히 한국종은 예술과 과학과 신앙심이 결합된 작품으로 설명되곤 한다.
한국종의 특징을 말할 때 외형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음통과 종 표면의 문양 양식을 든다. 종 정수리 부분의 꼭지에는 종을 매달 때 사용하는 용뉴가 있고 그 옆에 음통(音筒)이 있는데 한국종의 용뉴는 한 마리의 용두와 용 몸체로 구성되어 있어 두 개의 용두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는 중국종이나 일본종과 구분된다.
용을 종에 장식한 이유는 뭘까. 옛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바다 속에는 큰 물고기가 있는데 고래라고 하고 또한 해변에는 용의 자식이 있으니 포뢰라고 한다. 본디 포뢰는 고래를 두려워하여 고래가 나타나면 곧 큰소리를 내어 운다. 무릇 종은 소리가 커야 하므로 그 위에 포뢰를 만들고 고래 형상을 깎아 당봉(撞棒)으로 하였다.”
음통은 종을 쳤을 때 잡소리 하나 없이 한 가닥의 맑은 소리를 나게 하는 역할과 함께 뒤울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끔 하는 기능을 하는 한국종만의 특징이다.
종의 어깨 부분에 둘려진 무늬띠는 상대라 하며 종의 아래 부분에 둘려진 무늬띠를 하대라 한다. 또 상대 밑쪽의 네 곳에 유곽(乳廓)이라는 네모난 테가 붙어있으며 이 유곽 속에서는 각각 9개씩 솟아있는 도들꼭지가 있는데 이를 유두(乳頭)라 했다.
종 표면에 새겨진 문양도 중국종이나 일본종의 경우 단순한 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한국종은 비천상과 상·하대 문양, 유곽 등에 섬세하면서 아름다운 문양을 가지고 있다. 종 표면에는 선녀가 하늘을 나는 모양의 비천상(飛天像)이나 부처 보살상을 조각했는데 비천상은 신라종에서 많이 나타나며 불보살상은 고려종과 조선종에서 나타난다.
현존하는 한국종 가운데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동종(국보 36)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경주의 성덕대왕신종, 설악산의 선림원종, 남원의 실상사종은 수많은 한국종 가운데서도 명종(名鐘)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도 성덕대왕신종은 한국종의 백미다. 현재 경주박물관에 있는 신종은 높이 3.75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8.9톤으로 한국종 가운데 가장 크다.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 혜공왕이 771년 완성했다. 원래 봉덕사에 있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불리며 종소리에서 어미를 부르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하여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린다.
▲ 오대산 상원사동종은 국보 36호로 현존하는 한국종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사진제공=월정사 성보박물관 | ||
무엇보다 종소리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신비다. 종소리가 갖는 주파수와 화음 등 여러 가지 항목을 수치화하여 100점을 만점으로 할 때 신종은 86점이 넘게 나온다고 한다. 매년 제야에 타종되는 보신각종은 60점이 채 안 되며 46톤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로 유명한 중국의 영락대종도 40점대에 머무를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 NHK에서 세계의 종소리를 특집으로 꾸민 적이 있는데 장중하고 맑은 소리뿐만 아니라 긴 여운을 갖는 것은 신종뿐이었다고 한다. 에밀레 전설도 이런 신비함이 만들어낸 것일 게다.
1963년 원자력연구소 연구팀이 신종을 감마선으로 투과 촬영하여 그 신비를 규명하려 해봤지만 어떻게 그렇게 얇은 주물이 가능했고 깨끗이 용접됐으며 주물에 기포가 거의 없었는지 불가사의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1986년 당시 기술로 신종을 모방해 만든 현재의 보신각종이나 1976년 미국에 보내진 우정의 종 등도 종소리만은 재현하지 못했다.
신종의 용뉴 허리춤에 가로 질러져 종을 매달고 있는 지름 8.5센티의 쇠막대기에도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이 조그만 쇠막대기가 18.9톤의 종 무게와 타종시의 충격에도 견뎌내는 것은 물론 신비한 종소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크기로 이만한 충격을 견딜 만한 쇠막대기를 만들 수 없어 지금도 1300년 전의 것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