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4일 발생한 ‘부산 낙동강변 부녀자 강간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은 엄궁동 2인조가 중형을 선고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도살인, 강도강간, 강도상해, 특수감금, 특수강도 등 그들이 받은 8개 혐의 가운데 절반 이상이 낙동강 살인사건에서 비롯됐다. 법원 판단에 따라 21년 동안 세상과 고립됐던 엄궁동 2인조는 “당시 수사 경찰의 폭행과 고문을 견디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고, 사건 전반이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기사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①] ‘격투, 추격, 살인’…시각 장애인이 벌인 일)
엄궁동 2인조 사건(낙동강변 2인조 사건) 현장검증 사진. 사체가 발견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법의학 감정이 나왔다. 엄궁동 2인조의 주장을 뒷받침 할 뿐만 아니라 당시 수사결과를 뒤집는 분석이다. 특히 이 감정에는 20여 년 전 검찰이 수사 착수 당시부터 보관해온 수사 기록 ‘원본’이 활용됐다. 엄궁동 2인조가 별도로 확보해 둔 흑백 복사본과 달리 훼손되지 않았고 누락된 기록들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일요신문>, SBS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에 새로운 사실들도 이번 감정을 통해 추가로 드러났다.
감정은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진행했다. 서 전 원장은 ‘국과수의 산증인’ ‘과학수사의 대부’로 불리는 우리나라 대표 법의학자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 사건 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국과수를 떠난 지금도 ‘서중석’이란 이름으로 감정서를 작성해 검찰에 보내거나 국과수 요청에 따라 부검을 하고 있다.
서 전 원장은 엄궁동 2인조 사건 전체 기록 가운데 173쪽 분량을 새롭게 감정했다. 숨진 피해 여성의 부검과정 및 부검 전후 사진, 사체해부감정서, 사체검안서, 부검수사보고, 현장검증조서 등이다. 그는 지난 12월 28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결론적으로 부검소견 및 사진들이 당시 수사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법의학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광범위한 분쇄골절, 다른 범행 도구가 사용됐다
서 전 원장이 가장 먼저 주목한 부분은 피해 여성의 머리다. 그녀가 숨진 결정적 원인이 머리에 있어서다. 사체해부감정서 외부검사소견을 보면 ‘전두부 오른쪽(오른쪽 앞 두개골)이 가로 13cm, 세로 16cm 넓이로 함몰 및 분쇄골절, 두부 형태 변형’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검찰과 법원은 각각 공소장과 판결문 등을 통해 “(엄궁동 2인조가) 각목으로 피해자의 안면부를 2회 가격하고, 주먹만 한 돌로 오른쪽 머리 부분을 1회 내려쳐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서중석 전 국과수 원장이 감정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서 전 원장은 “부검기록과 당시 수사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최준피 기자
하지만 서 전 원장은 ‘각목’과 ‘주먹만 한 돌’로는 나올 수 없는 손상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앞부분뿐만 아니라 측면, 중간, 뒷부분 등 머리 전체에서 골절이 발견됐고, 심지어 아래턱 일부에도 골절이 있었다. 머리에 받은 강력한 충격이 턱까지 전해졌다는 얘기다. 서 전 원장은 이를 두고 ‘고도의, 광범위한 분쇄골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정도 손상은 보통 교통사고나 추락, 넓은 면적의 돌로 위에서 강하게 내려찍는 등의 심각한 외력을 받았을 때 발견할 수 있다. 각목과 주먹만 한 돌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여러 차례 같은 둔기로 강하게 타격했을 때도 이런 손상이 나올 가능성도 있지만, 기록에는 이런 언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얼굴과 머리에서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면적이 크고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을 만한 무거운 물체로 한 번 정도 내려쳤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장검증 사진을 보면, 현장 주변에는 면적이 큰 돌들이 무더기로 놓여있었던 점이 금방 확인된다. 특히 ‘피가 가득 묻은 가로 45cm, 세로 17cm의 모난 돌이 발견됐다’는 기록도 있다.
반면 각목과 주먹만 한 돌의 실체는 분명하지 않다. 사건 기록을 종합하면, 10여 차례가 넘는 수사기관 조사 때마다 앞서의 두 범행둔기는 크기가 특정되지 않고 ‘40cm~60cm’ ‘팔뚝만 한 크기’ 등으로 계속 달라진다. 각목과 돌은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도구였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서 전 원장은 “당시 부검 소견만으로도 수사 경찰이 각목과 주먹만 한 돌이 아니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충분히 그렇다”라고 답했다.
혈흔이 묻은 큰 돌. 범행에 둔기로 사용됐는지, 범인이 피해 여성을 옮기는 과정에서 묻은 혈흔인지는 현재로선 확인이 어렵다.
# 성폭행 혐의 ‘스모킹 건’ 손수건
‘엄궁동 2인조가 피해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수사 결과도 법의학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게 서 전 원장의 판단이다. 수사기록을 보면, 당시 경찰은 엄궁동 2인조의 자백을 제외하고 △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상의와 속옷이 목까지 말려있었던 점 △ 사건 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액이 묻은 것으로 보이는’ 손수건이 발견됐는데, 엄궁동 2인조 가운데 한 명의 혈액형과 동일한 정액반응이 나타났다는 점을 토대로 성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그러나 당시 작성된 사체해부 감정서를 보면 ‘외음부 이상 소견 없음’이라고 기재돼 있다. 서 원장은 “여성의 음부는 완력이 사용된,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게 되면 상처가 생긴다. 하지만 검토한 부검사진이나 기록에선 특별한 손상이 발견되지 않는다”며 “통상 성폭행 피해자의 엉덩이나 허벅지 등에는 반드시 방어, 또는 저항 손상이 발견 되지만, 역시 피해 여성에게선 나타나지 않는다. 이 내용은 당시 소견에 나왔던 만큼 수사기관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수건에서 검출된 혈액형에 대해선 이 결과만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게 서 전 원장의 판단이다. 손수건에서 검출된 혈액형은 AB형이다. 엄궁동 2인조의 혈액형은 각각 AB형, O형이다. 하지만 당시 작성된 감정서 비고란에는 “정액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혈액형을 판정했으며, 이 경우 A형과 B형, A형과 AB형, B형과 AB형이 혼합된 경우도 AB형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려있다.
이에 대해 서 전 원장은 “쉽게 말해 손수건에서 검출된 혈액형이 A형일 수도, B형일 수도, AB형일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특히 손수건은 범죄현장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범행과 관련 없는 제3의 인물의 것일 가능성까지 나온다. 따라서 손수건에서 나온 결과만을 가지고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건 절대적으로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히려 수사기록을 보면 사건 당시 성폭행과 격투가 벌어졌다고 나와 있는데, 이렇게 격렬했던 현장에 떨어진 머리카락 등 각종 흔적에선 엄궁동 2인조의 혈액형(AB형, O형)이 한 차례도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수사경찰이 작성한 진술서. 그는 “범인이 범행 직후 손수건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 수사결과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피해 여성의 상의와 속옷이 목까지 말려있었던 점에 대해선 다른 분석을 내놨다. 서 전 원장은 “피해자의 등을 보면 긁힌 손상(찰과상 등)이 41x30cm 너비로 광범위하게 나타나있다. 상처가 대부분 위-아래, 아래-위로 형성돼 있는데, 이는 끌려가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상처가 어깨뼈 부위와 그 아래부위에 주로 나타나있고, 허리나 엉덩이, 허벅지와 다리는 깨끗하다. 한 명이 다리를 붙잡고 끌고 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상의는 이 과정에서 말려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건 기록을 보면, 수사기관은 엄궁동 2인조가 피해 여성을 살해한 후 한 명이 어깨부분을 잡고 다른 한 명이 다리를 잡고 갈대숲으로 내려갔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서 전 원장은 “두 사람이 사건기록에 나온 형태로 피해 여성을 옮겼다면, 무게가 쏠리는 부분은 머리 뒷부분과 엉덩이다. 등보다는 이곳에 끌리는 상처가 생겼어야 했다. 피해 여성의 상처와 수사기관의 판단이 일치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 수상한 목격자
피해 여성과 함께 있었던 ‘남성’에 대한 분석도 나왔다. 이 남성은 낙동강 살인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다. 당시 사건 기록을 보면 그는 수사기관에 사건 현장에서 피해 여성과 ‘카 데이트’를 하다 엄궁동 2인조를 만났고, 한참 격투를 벌이다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이 남성에 대한 당시 의사 소견과 사진 등에 따르면, 얼굴과 어깨 부분에 다발성 찰과상이 발견된다. 수사 경찰은 이 상처들은 남성이 엄궁동 2인조에게 ‘가스총 뒷부분’과 주먹, 돌이나 각목 등으로 폭행을 당하고, 이에 맞서 격투를 벌이다가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서 전 원장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남성의 ‘자해’일 수도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서 전 원장은 “남성의 상처는 주로 신체 앞 부위에서만 발견된다. 얼굴의 상처 역시 국소적이고 면적도 좁다. 각목, 벽돌, 가스총 뒷부분 등에 의한 심각한 손상으로는 볼 수 없다”며 “무엇보다 사건 기록에는 남성이 엄궁동 2인조와 10분에서 20분 동안 격투를 벌였던 것으로 나와 있는데, 그의 팔과 손등, 다리 등에서 방어손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든 격투를 벌였든 본능적으로 방어를 하기 때문에 팔과 손등이 멍들거나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남성에게선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1990년 1월 사건 발생 직후 피해를 주장하는 남성에 대한 외과의사 소견. 당시 경찰은 남성의 전신 사진을 촬영 했고, 의사는 그림으로도 진찰 결과를 설명했다.
여기에 이 남성의 혈액형은 A형이다. 사건 기록을 보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에서 A형 혈액형이 다량 검출됐다. 이 남성은 엄궁동 2인조가 재판을 받는 도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다. 남성의 가족들은 그가 앓던 지병이 있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⑪] 수상한 목격자)
서 전 원장은 이번 감정에 대해 “확인한 자료를 모두 종합해보면, 수사결과와 일치하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상당하다. 사건을 법의학적으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다”고 평가했다.
엄궁동 2인조는 지난 2017년 재심을 청구했다. ‘삼례 3인조 사건’과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등의 재심 무죄를 이끌어 낸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다. 현재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번 감정으로 그동안 주장한 허위자백과 조작 사실이 법의학적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지난 2018년 4월 엄궁동 2인조 사건을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으로 선정했다. 현재 ‘낙동강변 2인조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서중석 전 국과수원장도 최근 과거사위원회에 출석해 앞서의 감정 결과를 설명했다. 과거사위원회는 오는 2019년 1월 중으로 낙동강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낼 방침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서중석 원장 인터뷰 “국과수 자체 노력과 더불어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도 필요”
서중석 전 국과수원장. 사진=최준필 기자 서 전 원장은 25년 동안 국과수에 몸담았다. 1991년 국과수에 첫발을 내디뎠고, 주요 보직을 거쳐 2012년부터 2016년까지 2대 국과수원장을 지냈다. 2011년 방영된 메디컬 수사드라마 ‘싸인’에서 배우 박신양 씨가 연기한 법의학자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서 원장은 원장 취임 이전부터 ‘현장형 법의관’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직접 검시와 검안을 하고 현장의 변수를 살펴봤다. 법정에 나가 직접 증언해 범죄를 입증하기도 했다. 원장 취임 이후도 다르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사고와 2015년 중국 지린성 한국 공무원 버스 추락사고 등을 비롯한 각종 사건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았다. 그는 “사무실에 앉아 감정서를 검토하고 결재만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원장이 직접 현장에 가고 부검을 해야 실무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 전 원장은 국과수를 떠난 이후 대전보건대 총장을 거쳐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교수,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장을 역임하고 있지만 여전히 바쁘다. 일주일에 절반은 대전 과학수사연구소에 방문해 부검 등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수사기관의 요청을 받아 감정을 하거나 별도 의뢰업무를 본다. <일요신문>과 만난 지난 12월 28일에도 감정을 요청하는 검찰 연락을 받느라 인터뷰가 몇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서 전 원장은 과학수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을 당부했다. 그에 따르면 국과수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지만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국과수 자체 노력과 더불어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서 전 원장은 또 “국과수 출신 법의학자들은 퇴직하면 전문성이 거의 사장된다”며 “앞서의 낙동강 사건처럼 법적구제가 필요한 형사사건이나 각종 사고들을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위원회 형식으로 모여 검토하고 감정할 수 있는 비상설기구가 있다면 갈등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