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를 맞아 내 기억에 떠오른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감은사지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감은사는 죽어서도 죽지 않고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동해바다에 묻힌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다 아들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은 전설적인 절이다. 그런데 이제 그 절은 간 데 없고 탑과 터만 남아있다.
거기서 나는 서기 7세기를 상상해 본다. 신라가 가장 왕성할 때 왕들이 다니던 사찰이니만큼 얼마나 화려했겠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넓고 조용한 그곳에서 나는 묘한 체험을 했다. 왕과 귀족들이 그 위엄을 감추지 않고 찾아왔던 곳, 영웅호걸들이 그 이름을 내걸고 현자들을 찾았던 곳, 그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기습적으로 내 마음을 덮치며 갑자기 두려움이 찾아온 것이다.
한때 찬란히 빛나는 그림이었을 그 사람들은, 그것들은 다 어디 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세상이 무릎을 꿇었을 권력, 우러러봤을 명예, 그에 걸맞게 아름다웠을 전각은 다 어디 가고 돌과 바람과 햇빛만이 무심하게 놀고 있는 것일까?
신라시대 그 터가 어떤 권위로 입고 어떻게 활용되었을지 짐작하게 하는 것은 많은 전란 중에 불에도 타지 않은 석탑이었다. 그 석탑을 향해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내 두려움을 응시했다.
신라사람들의 정신적인 의지처였던 감은사처럼 내 의지처인 것들이 있다. 나의 몸, 나의 건강, 나의 일, 나의 가족, 나의 기억력, 어느 날 그런 것들도 이곳처럼 사라져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때 나는 어떻게 그 사실을 감당할 것인가.
직장을 잃고 스스로 무용지물이 된 것 같을 때, 어느 날 병이 찾아와 당신의 뒤통수를 칠 때, 옆에 없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 홀로 덩그랗게 남아야 할 때, 당신은 당신 삶의 의지처였던 그것들을 어떻게 놓아주는가.
그럴 때 왜 놓아버리지 못하느냐고 손가락질만 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잘 놓을 수가 없다. 생각해 보라. 지금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건 당신이 헤매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면서 추구해온 당신 인생 전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허방이 되고 있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당신 인생을 지지하는 빛나는 기둥이었던 그것들이 당신 인생에서 소중한 몫을 했다고 인정해주고, 함께 울어주고 손잡아 줘야 한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그래야 떠나보낼 수 있고, 그래야 매달리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동안 의지처였던 것을 잘 떠나보내는 마음가짐 없이 새로운 시작은 오지 않는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