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조지훈의 시보다 승무를 더 잘 그릴 수는 없으리라.
남색 치마 흰 저고리 흰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하얀 고깔을 쓴 춤추는 이의 뿌리고 제치고 엎는 장삼의 사위가 눈길을 빼앗는 가운데 언뜻언뜻 보이는 오이씨 닮은 갸름한 버선의 발동작이 한껏 멋을 뽐낸다. 인생사의 고뇌와 번민이 출렁이는 초반의 염불 춤사위에서부터, 무아의 경지에서 범속을 떠나 열반으로 나아가는 법열의 지극한 모습이 표현되는 말미의 춤사위까지 하나의 장엄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 승무다.
한국의 민속예술 대부분이 그렇듯 승무 또한 연원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어 그 설이 구구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불교의식과 연관시킨 불교의식 무용설이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며 아무 말 없이 연꽃을 드니 제자 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며 추었다는 그 춤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그런가 하면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유혹하려고 춘 데서 비롯되었다는 민속무용 유래설, 상좌승이 평상시 스승의 움직이는 모습과 경을 읽고 설법하던 모습을 흉내 낸 동작에서 유래한다는 설, 파계승이 번뇌를 잊으려고 북을 두드리며 추기 시작한 춤이라는 설, 탈놀음 중에서 노장춤에서 비롯됐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 중엽 이후 서산대사가 승무를 포교의 한 방법으로 삼아 승려의 필수 과목으로 중시한 적도 있지만 그 뒤 떠돌이 승려들이 승무를 탁발 수단으로 이용한다하여 금지되어 민간에서 추어지는 민속무용으로 변모했으며 1910년대쯤 뛰어난 춤의 명인들에 의하여 가꾸어져 지금처럼 춤사위가 세련돼졌다. 그런 의미에서 승무는 불교의식의 하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간의 춤이다. 영산재 등의 불교의식에서는 승려들이 법고춤, 바라춤, 나비춤 등을 추지만 이것은 승무라고 하지 않는다.
승무는 염불과장에서 시작하여 염불도드리과장, 타령과장, 잦은타령과장, 굿거리과장, 잦은굿거리과장, 느린굿거리과장, 북치는과장, 당악과장을 거쳐 느린굿거리과장으로 끝나는 10개의 과장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시작 부분의 염불과장은 춤추는 사람이 춤판 뒤편에 있는 북을 향하여 엎드려 있다가 서서히 일어나 합장하고 앞으로 나오고 뒤로 물러서면서 장삼을 뿌리고 젖히고 휘돌리는 등 여러 동작의 춤으로 특히 긴 장삼 소매가 공간에 흩뿌려지는 모습은 장중하고 무게가 있어 승무의 대표적인 부분으로 꼽힌다.
▲ 승무는 불교의식의 하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민간의 춤이다. 사진은 임수정 씨의 승무 공연 모습. 임수정 씨는 중요무형문화재 승무와 살풀이춤 이수자로 ‘진도 북춤’의 명인이자 ‘진도 씻김굿’ 예능보유자였던 고(故) 박병천 선생으로부터 개인 이수패와 금으로 만든 | ||
승무를 반주하는 악기는 삼현육각, 즉 두 개의 피리와 한 개씩의 대금·해금·장구·북의 편성이다. 악곡은 염불·타령·자진모리·굿거리·당악 등이 얽히고 춤사위도 까치걸음사위, 완자걸이, 안가람, 잉어걸이 등이 설켜 음악과 춤 모두 다양하고 화려하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승무는 지역마다 약간씩 특징이 다르게 전승되어 왔는데 경기·충청 승무와 호남지방의 승무가 대표적이다.
달래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오묘한 춤사위가 조화돼 있으며 맑고 조용함이 신비로움과 엮이고 한없는 움직임에 정교함이 감도는 승무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키는 이지적인 춤으로 민속무용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관객을 등진다는 점이라든지 머리에 고깔을 써서 얼굴을 볼 수 없게 한 점 등은 다른 춤들과 달리 춤추는 이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춤 그 자체에서 멋과 맛을 표현하려 한 순수한 춤이라는 주석도 붙어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조지훈의 <승무>는 이렇게 이어진다.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