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도 영화 ‘라임라이트’ 속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80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다. 1975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을 땐, 일어서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2년 후엔 하루 종일 누군가가 돌봐야 할 상태에 이르렀다. 197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딸과 아들과 손자들이 스위스의 저택에 모인 날. 그는 온 가족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수면 중 심장마비였다.
장례식은 이틀 뒤인 12월 27일 조용히 치러졌다. 고인의 유언대로 가족과 성직자만 참여한 조촐한 장례식이었고, 영국 성공회 방식이었다. 지역에 있는 코르시에르-쉬르-브베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두 달 정도 지난 1978년 3월 1일,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밤에 누군가가 묘지를 파서 그의 관을 가져가 버린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묘지 관리인이 발견해서 신고했고, 전 세계 언론이 들끓었다.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나치주의자들이 파갔다고 생각했다. 채플린은 ‘위대한 독재자’(1940)에서 히틀러와 나치를 풍자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생겨나던 네오 나치 세력이 그 앙갚음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채플린은 유대인이었지만 기독교식 장례를 치렀고 크리스천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이에 반유대주의자들이 그런 극악한 행동을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광적인 팬들이 채플린을 영원히 간직하려고 미친 짓을 했다는 입장도 있었고, 아마도 채플린의 고향인 영국으로 빼돌렸을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이 모든 주장들은 헛다리였다. 며칠 뒤 채플린의 가족들에게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코해트’라는 이름으로 밝힌 수수께끼의 인물은 자신이 관을 가져갔다며, 약 60만 달러의 돈을 요구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0억 원 정도 되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들은 로만 바르다스와 간초 가네프였다. 바르다스는 24세의 폴란드 출신 자동차 정비공으로 당시 실직 상태였고, 가네프는 불가리아에서 정치적 이유로 스위스에 망명한 38세의 정비공이었다. 그는 당시 채플린의 집이 있었던 로잔 지역에서 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60만 달러의 돈으로 자신들의 정비소를 차릴 계획이었다. 이 시기 이탈리아의 한 거부의 관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뉴스를 읽고 모방 범죄를 저지른 상황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찰리 채플린.
아내인 우나 채플린은 그 어떤 협상도 없다고 못 박았다. 변호사인 장 펠릭스 파쇼드에 의하면 우나는 “내 남편은 내 마음속과 천국에 있다”며 단호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바르다스와 가네프는 당시 16살이던 채플린의 막내아들 크리스토퍼의 다리에 총을 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화 통화는 총 27번 이뤄졌는데, 주로 큰딸인 제럴딘이 받았다. 당시 30대 초반이던 제럴딘 채플린은 한참 승승장구하던 배우였는데, 슬픔과 두려움과 단호함 등 온갖 감정을 동원해 범인들과 통화했다. 그래야 했던 이유는, 경찰이 범인을 파악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요구했던 금액 60만 달러는 25만 달러까지 내려갔고, 그들이 슬라브 계열 억양이라는 게 드러났으며, 공중전화에서 통화한다는 사실이 파악되었다.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로잔 지역의 200개가 넘는 공중전화를 감시했고, 바르다스는 결국 5월에 붙잡혔다. 경찰의 추궁에 그는 가네프가 공범이라는 걸 털어놓았고, 훔친 관은 묘지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제나바 호수 근처의 옥수수 밭에 묻어놓았다고 자백했다. 그곳은 바르다스가 낚시를 다니면서 익숙한 장소였다. 경찰은 그곳에서 관을 발견해 유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냈고, 옥수수밭 주인은 잠시나마 채플린이 묻혔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십자가를 세웠다.
12월에 열린 재판에서 주범인 바르다스는 4년형을, 가네프는 18개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망자의 평화를 깨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했다는 죄목이었다.
찰리 채플린의 묘지.
채플린의 관은 처음 묻혔던 곳에 다시 묻혔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관 주변은 콘크리트로 탄탄히 고정되었다. 한편 범인들은 이후 잘못을 뉘우치고 우나 채플린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냈고, 그녀는 이미 용서했다고 답했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곧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지만 2014년 그자비에 보부아 감독이 이 실화를 옮긴 ‘영광의 대가’를 만들어 다시 한 번 환기되었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범인들이 딸의 수술비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각색되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