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1일 NC 다이노스와 4년 총액 125억 ‘초대박 계약’을 체결한 양의지. 사진=일요신문 DB
[일요신문]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 야구계 분위기는 차분하기만 하다. ‘장외 야구 전쟁’이라 불리는 스토브리그(Stove League) 소식이 뜸한 까닭이다.
스토브리그. KBO리그 10개 구단의 ‘눈치싸움’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전력 보강’이란 공통된 목표 아래 각 구단은 ‘보이지 않는 각축전’을 펼친다.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 옆에서 접하는 ‘야구 뉴스’는 야구팬들에게 경기 관전 못지않은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2018시즌을 마친 뒤 막을 올린 스토브리그의 분위기는 고요하다. 특히 KBO리그 ‘FA 시장’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어 있다. 스토브리그의 스토브(난로)가 고장 난 것처럼 보인다. KBO 스토브리그 분위기가 냉랭해진 원인을 ‘일요신문’이 짚어봤다.
# 뜨겁고도 따뜻했던 스토브리그, 이젠 그렇지 않다
2016년 11월 KIA 타이거즈와 4년 100억 원에 계약하며 ‘100억 시대’를 연 최형우. 사진=KIA
스토브리그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이다.
‘총액 100억 시대’가 열리면서 KBO리그 FA 시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 역시 높아진 상황. 오랜 기간(1군 엔트리 등록 기간 고졸 신인 기준 7년, 4년제 대졸 신인 기준 8년) 꾸준한 활약에 대한 보상을 꿈꾸는 FA 선수들은 너나할 것 없이 소중한 권리를 행사한다.
2018시즌을 마친 뒤에도 선수들의 ‘FA 권리 행사’는 줄을 이었다. ‘최대어’ 양의지를 비롯한 선수 15명이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길 원했다.
스토브리그 초반 흐름은 무난했다. 11월 28일 NC 다이노스 모창민이 3년 최대 20억 원에 잔류 계약을 체결했다. 12월 5일엔 SK 와이번스가 내부 FA 최정(6년 106억 원)과 이재원(4년 69억 원)을 잡는 데 성공했다.
12월 11일엔 ‘초대박 계약’이 성사됐다. FA 최대어로 꼽힌 두산 베어스 포수 양의지가 4년 125억 원을 보장받으며 NC로 이적한 것이다. FA 시장엔 훈풍이 감돌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양의지가 계약서에 사인한 뒤 FA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 붙었다. 해를 넘기도록 계약을 마무리하지 못한 FA가 무려 11명이다. KBO 스토브리그 사상 초유의 사태다.
FA 계약으로 ‘한 방’을 노리던 준척급 FA 입장에선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대형 FA’들은 초대박 행진을 이어가는데 준척급 FA들은 ‘칼바람’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프로야구 시장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 스토브리그 전력강화 새로운 트렌드 “영입보다 육성!”
외부 영입보다 내부 육성에 초점을 맞추며 새 바람을 불러온 히어로즈. 사진=연합뉴스
2008년을 기점으로 한국 야구는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야구대표팀이 금메달 신화를 쓴 뒤 야구 인기가 치솟은 까닭이다.
자연스레 KBO리그 대권에 도전하는 구단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2015년 ‘10구단 체재’가 완성되면서 FA 시장 호황은 절정에 달했다. 경쟁 상대가 많아진 상황, 구단들은 ‘전력상승’이란 하나의 목표 아래 각자의 방안을 고안했다.
결국 짧은 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FA 계약’이었다. 구단들은 ‘내부 FA 단속’을 통해 전력 누수를 막았고, ‘외부 FA 영입’으로 추가 전력 확보에 박차를 가했다.
스토브리그는 시장 논리에 의해 지배된다. 자본력에서 우위를 점한 구단이 비시즌 승자가 되기 마련이다.
비시즌 승리는 간혹 정규시즌 승리로 이어졌다. 2015년 두산 베어스는 좌완투수 장원준과 4년 80억 원 대형 계약을 체결한 뒤 한국시리즈 제패에 성공했다. 2017년엔 4년 100억 원에 최형우를 영입한 KIA 타이거즈가 KBO리그 통합우승을 거머쥐었다.
2013년 KBO리그에 합류한 NC 다이노스는 이호준(4년 20억 원), 이종욱(4년 50억 원), 손시헌(4년 30억 원) 등 알짜배기 FA를 다수 영입하며 단기간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스토브리그 승자=정규시즌 승자’란 공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한화 이글스, 롯데 자이언츠, KT 위즈는 FA 계약에 상당히 많은 금액을 투입했지만, 의미 있는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육성’에 초점을 맞춘 히어로즈는 투자 금액 대비 높은 성과를 자랑하며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히어로즈 사례를 두고 야구계에선 “한국에도 ‘머니볼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KBO리그 구단들 사이에 ‘FA 영입 회의론’이 고개를 들었다. 구단들은 FA 영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구단들은 입을 맞춘 듯 “영입보다 육성에 초점을 두겠다”고 선언했다. 트렌드가 바뀐 것이다.
FA를 대하는 시장의 태도가 달라지자,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건 ‘준척급 FA’들이었다.
# FA 이적 발목 잡는 ‘보상 규정’… 결과는 ‘빈익빈 부익부’?
KBO. 사진=일요신문
‘준척급 FA’가 칼바람의 타깃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인들은 “독특한 KBO리그 FA 보상 규정이 FA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야구인들이 말하는 FA 보상 규정은 ‘KBO리그 야구규약 제172조(FA 획득에 따른 보상)’에 명시돼 있다. FA 권리를 행사한 선수가 이적을 선택할 경우 효력이 발생한다. 이때 이적 선수 원소속 구단은 FA 획득 구단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된다. 원소속 구단은 두 가지 보상옵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① FA 획득구단이 원소속 구단에 ‘이적 선수 직전 시즌 연봉 300%’를 지급
② FA 획득구단이 원소속 구단에 ‘이적 선수 직전 시즌 연봉 200%’와 ‘보호명단 20인 외 1명’을 보상선수로 지명
대부분 구단은 2번 답안을 선택한다. 이적 선수로 인해 발생하는 전력 공백을 보상선수로 최소화 하려는 의도다.
여기서 보상 선수의 개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KBO리그 1군 엔트리는 27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FA 획득 구단이 보호명단에 넣을 수 있는 선수는 20명이다. 따라서 FA 획득 구단은 ‘1군 전력에 해당하는 선수를 보상선수로 내줘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야구인 A 씨는 “많은 구단이 ‘대형 FA’ 영입에 따른 보상선수 출혈은 감내한다. 하지만 ‘준척급 FA’의 경우엔 상황이 아주 다르다. 구단들은 ‘보상 선수를 내줄 만큼 준척급 FA 영입이 가치 있느냐’며 계산기를 두들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FA 획득에 따른 보상 규정’은 ‘준척급 FA’ 수요 감소를 초래했다. 선수의 자유로운 이적에 ‘보상 선수 규정’이 걸림돌이 되는 까닭이다. 수요가 적으면 선수의 가치는 자연스레 하락할 수밖에 없다.
총액 100억 원이 넘는 ‘초대박 계약’이 여러 차례 이뤄지는 가운데 준척급 FA들은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FA 제도의 혁신적인 변화가 없는 한 자유계약선수들에게 ‘이적의 자유’가 허락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역설적인 상황이다.
스토브리그가 열릴 때마다 ‘FA 등급제 도입(선수 등급에 따라 보상 선수 규정을 달리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젠 KBO가 그 원인을 복기해볼 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FA 등급제뿐 아니라, 취득 자격 변경도 필요” ‘일요신문’은 1월 2일 ‘FA 등급제 도입’을 찬성하는 야구 관계자 B 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B 씨는 “프로야구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등급제를 넘어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하면서 “등급제뿐 아니라, FA 취득 자격에도 변화를 줄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현행 제도에 따르면 고졸 신인이 FA 자격을 취득하려면 최소 7년이 걸린다. 4년제 대졸 신인은 8년이 걸린다. 선수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나면 보통 30대 초·중반에 FA 자격을 취득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선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면 부상 위험이 커진다. 경기력이 하락세에 접어들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FA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선수가 ‘먹튀’로 전락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B 씨는 “선수가 자유롭게 시장의 평가를 받을 만한 여건이 조성되면, 프로야구의 볼거리가 더 풍성해질 것”이라면서 KBO리그 FA 제도와 관련한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했다. ‘제도 변화’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도 변화의 당사자인 KBO-구단-프로야구선수협의 합의가 필요하다. 과연 한국 야구는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까.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