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연합뉴스
신재민 전 사무관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연이은 폭로를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이 KT&G의 백복인 사장을 교체하도록 외압을 넣었다는 내용으로 포문을 열었다. 10조 원 이상 예상보다 많이 걷힐 세금 덕에 민간에 꿨던 빚을 조기에 갚을 수 있었음에도 기획재정부가 청와대의 강요로 빚을 갚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리려 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폭로와 함께 먹잇감도 남겼다.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유튜브로 진행됐는데 영상에는 고시 학원 배너와 후원금 요청 내용도 포함됐다. 그는 기획재정부를 그만두고 고시 학원과 강사 계약을 한 뒤 잠적한 자신의 잘못을 광고로 되갚으려는 의도였다고 했다.
여당 및 친정부 성향 인사는 신재민 전 사무관이 남긴 먹잇감을 놓치지 않았다. 인신 공격도 이어졌다.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은 3일 “바이백은 채권시장 관계자의 관심을 사기 위한 실무자 차원에서의 포퓰리즘일 뿐 국가채무비율 논쟁과는 전혀 무관함. 신재민 전 사무관이 자기 일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임. 별로 유능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음”이란 글을 남겼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재민은 2004년 입학, 2014년에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10년 만에 원하던 행정직 공무원이 되었으니 고시공부 기간은 약간 긴 편이죠?”라며 “지난해 7월, 신재민은 뭔가를 획책합니다. 제 추측으로는 단기간에 큰 돈을 버는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종잣돈이 필요했겠죠. 어디선가 돈을 만들었는데 여의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신재민은 7월에 기재부에서 퇴직합니다. 신재민은 7월에 메가스터디와 계약합니다.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전화번호도 바꾼 채 4개월 동안 잠적합니다. 4개월 잠적할 동안 부모님께도 연락 한번 안 하다가 별안간 유튜브에 나타나 공익제보자 행세를 합니다. 그동안 피해 다니던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받으며 단시간에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신재민은 진짜로 돈을 벌러 나온 것입니다”라고 했다.
지라시가 도는 시점이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이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망해서 공무원 월급으로 충당이 불가하니 학원행을 선택했다는 내용이었다. “고려대 재학 당시 뉴라이트 쪽 보수우파 학생 활동을 했다. 보수우파 활동을 한 덕분에 기획재정부 중요부처에서 근무하며 청와대 행사에도 선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화도 했다. 거기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외환 관계자나 기자 등에게 정보 장사하다가 문재인 정권 들어와서 막혔다. 정보장사 의혹으로 감찰당하기 전 상관이 정상 퇴직하도록 배려했는데 지금 뒤통수를 치고 있는 중”이라는 지라시도 추가됐다.
“청와대가 확대재정 편성을 하고 싶어서 국채 조기 상환을 취소하고 4조 원 규모의 국채 추가 발행을 추진했으나 기획재정부와의 이야기 끝에 조기상환 취소는 진행했고 추가 발행은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조직의 비서실 또는 기획팀과 실무 레벨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 그냥 있었던 것일 뿐”이란 세간의 의견도 나왔다. 조롱은 불붙기 시작했고 신 전 사무관은 3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정부는 나랏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돈을 민간 금융기관에 일정 수수료를 주고 빌린다. 민간 금융기관은 정부에 돈을 꿔주고 국채라는 권리를 받는다. 국채는 국고채, 국민주택채권,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재정증권 등으로 나뉜다. 국고채 규모가 국채 가운데 가장 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7년 당시 정부는 28조 7000억 원까지 돈을 꿀 수 있는 국채 발행 한도를 가지고 있었다. 10월 말까지 20조 원이 발행됐다. 나머지 8조 7000억 원을 추가로 발행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예상보다 세금이 10조 원 이상 걷혀 굳이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었다. 실무자였던 신재민 전 사무관은 한도를 꽉 채워 8조 7000억 원을 더 꾸면 금융기관에 줘야 하는 수수료 규모가 연 2000억 원 가까이 돼 세금이 낭비되니 굳이 돈을 꿀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종적으로 국채는 발행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돈을 꾸지 않았으니 문제될 게 없다”, “아무 일도 아닌 일로 관심 받으려고 발악하는 고작 풋내기 사무관” 등이 여권과 친정부 성향 인사의 결론이었다.
허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주장 가운데 폭로와 관계된 사실만 정리해 보면 정부의 폭넓은 민간 개입과 아마추어리즘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이 폭로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쯤인 2017년 10월 26일 기획재정부는 다음달 11월 3일, 15일, 22일 3차례에 걸쳐 갚겠다며 ‘국고채 발행·매입·교환 계획’을 발표한 바 있었다. 바이백 하겠다는 말이었다. 바이백은 정부가 민간에 돈을 빌린 뒤 줬던 국고채를 당초 계획보다 빠르게 갚는 ‘국고채 조기 매입’을 뜻한다.
3일엔 사전 발표에 따라 1조 5000억 원 규모의 빚을 갚았다. 문제는 15일이었다. 11월 14일 채권시장 마감 10분도 채 남지 않은 오후 3시 20분쯤 기획재정부는 계획과 달리 빚을 갚지 않겠다는 ‘바이백 취소’를 알렸다. “2017년 11월 15일 시행 예정이었던 제12차 국채 매입이 취소되었음을 공고합니다”란 기획재정부 장관 명의의 한 줄 공지가 다였다.
한 달여 전에 계획된 기획재정부의 조 단위 의사결정이 실행 하루 전에 아무런 설명 없이 통보식으로 시장에 내려왔다. 민간 기업의 재무부서는 들어올 돈이 있으면 돈이 들어올 시점을 계산해 지출 계획을 짠다. 수입과 지출 시기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돈이 막히지 않는다. 기업의 거래에선 외상 거래가 많은 까닭이다. 물건이 팔렸더라도 물건값이 들어오는 시기가 늦어지면 도산을 하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국채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정부가 망할 이유가 거의 없고 회수 시기가 정확하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15일 정부는 채권 시장에서 신뢰를 잃었다. 한 채권 딜러는 “정부가 바이백 계획을 낸 뒤 하루 전에 갑자기 취소한 건 거의 유례 없는 일”이라며 “당시 ‘정부란 것들이 뭐하는 짓인가’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아마추어도 하지 않을 짓”이라고 말했다.
2018년 12월 31일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은 국채를 발행해 민간의 돈을 더 꿔오려는 계획과 관련해 청와대의 강압적인 지시는 전혀 없었고 세수 여건, 시장 상황 등 대내외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을 감안해 기획재정부는 돈을 더 이상 빌리지 않기로 했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허나 2017년 11월 15일 급작스런 바이백 관련 해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교수 등 전문가 일부는 적자 국채 발행 압력 의혹에 대해 “이듬해 추가경정예산 ‘실탄’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을 예상보다 더 거뒀더라도 민간에게 빌릴 수 있는 최대 한도로 돈을 꿔서 세계잉여금을 만들 요량이었다는 셈이다. 세계잉여금은 정부 예상보다 더 많이 걷힌 세입과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돈을 합한 금액을 말한다.
세계잉여금은 지방교부세를 정산하고 국채 상환 쓴 뒤 국회 동의 없이 쓸 수 있다. 과거 기획예산처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일자리 추가경정예산’(11조 원·2017년 11월)과 ‘청년 일자리 추가경정예산’(3조 8300억 원·2018년 5월) 모두 세계잉여금을 활용해 편성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11월 공공기관과 공기업 주도로 맞춤형 일자리 5만 9000개를 만드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도 5300개 포함됐다. 대부분 단기 일자리 또는 단순 일자리였다. 기획재정부는 같은 달 공기업 35곳, 공공기관 228곳 등 모두 360곳에 단기 일자리 확충을 지시했다.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국민임대주택 예비자 서류 접수 과정에서 실무자 업무를 보조하는 근무인력 687명을 뽑았다. 기간은 하루짜리도 있었다. 한국도로공사는 고속도로 풀 뽑기 등 환경 개선 사업에 971명을 채용키로 했다. 한국전력기술은 2018년 12월 만 34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직장 체험형 단기 인턴’ 채용 공고를 냈다. 1회당 65명씩 모두 2차에 걸쳐 총 130명을 모집했다. 근무 기간은 2일, 일당은 세후 8만 원이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정무적 고려 부족…장관한테 호되게 문책당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순차적으로 유튜브와 고려대 재학생 및 졸업생 커뮤니티에 자신이 겪었던 일을 폭로했다. 그의 폭로는 크게 기획재정부의 국채조기상환 입찰 하루 전 취소 상황과 KT&G 사장 교체 관련 내용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2017년 11월 14일 다음 날로 예정된 국채조기상환이 입찰 하루 전 전격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10월 말 상환계획이 정부 보도자료로 공고됐지만 취소 이유를 민간은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며 조기상환 취소가 발표된 뒤 세종시에 있는 국채과 사무실로 기자들이 들어와 따졌다. 왜 바이백을 취소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캐물었다. 사무실에서는 당연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담당 사무관 홀로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2017년 업무를 처음 담당했을 때부터, 적자성 국채발행을 조금이나마 줄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노력하면 평생 국가 세금을 받고 살아도 떳떳할 수 있을 업무였다. 채무를 줄이고 싶었다“며 ”2017년은 예산상 세수보다 실제 들어온 세수가 훨씬 많은 해였다. 10월 세수가 잘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였을 당시 우리 국은 적자성 국채발행을 8조 7000억 원 줄이는 중이며 이 경우 연도말 세계잉여금 규모는 얼마가 되는지 부총리님께 보고 드리려 준비하고 있었다“고 적혔다. 신재민 전 사무관 글에 따르면 그와 차관보는 세수가 많으면 예정된 국채발행을 줄이는 게 당연한 판단이었다. 허나 11월 14일 차관보는 김동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이를 보고한 뒤 말도 못할 정도의 심한 말을 들으며 문책당했다. 신 전 사무관은 차관보에게 ”공직 생활 중 제일 심하게 야단 맞은 것 같다. ‘정무적 고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썼다. 정무적 고려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기에 자금을 최대한 챙겨둬야 한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눈속임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재정 확대 기조다. 재정 확대가 예상된다. 정권 초 GDP 대비 적은 채무 비율이 버티고 섰으면 정권 말 채무 비율이 높아질 때 정권 초의 적은 채무 비율은 정권 말 비판의 기준점이 된다. 신재민 전 사무관을 비롯한 실무자는 버텼다. 결국 적자 국채의 추가 발행은 없는 것으로 결정됐다. 보도는 되지 않았지만 기자에게는 미리 보도자료가 나간 상태였다. 허나 신 전 사무관에 따르면 청와대는 국장을 소환했고 발행하기로 했던 적자 국채 추가 발행이 취소된 것인지를 소명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대통령 보고까지 끝난 사안이라 되돌릴 수 없다. 기존 계획대로 발행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기획재정부 간부에게 전화해 ”당장 국채 추가 발행을 안 하기로 한 12월 발행계획 보도를 취소하라“고까지 했다고 신 전 사무관은 주장했다. KT&G 사장 교체 관련 내용도 담겼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2018년 2월 2차관 결산보고 직전 임시 집무실이 있는 서울지방조달청 공용 컴퓨터에서 ‘(대외주의 차관보고) KT&G 동향보고’라는 문서를 발견했다. ‘기업은행을 통해 사장 해임을 추진하고 외국인 주주가 동의하도록 설득하겠다’는 문건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그냥 가만히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자료까지 이렇게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넘어가는 것은 과거 다짐을 저버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나둘 눈 닫고 귀를 막은 상태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나 역시 앞으로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대로 소신을 변경하면서 하루하루 업무를 처리하게 될 것 같았다. 공무원 한명 한명이 부당한 업무처리를 보고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는 것에서 지난 정권의 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나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 아닌가. 나는 문건을 평소 알고 지내던 M 사 기자에게 전달했다“고 썼다. 신재민 전 사무관에 따르면 보도가 나간 뒤 문건유출 경로를 파악하려는 청와대의 시도가 이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기획재정부를 조사하고 갔다. 국무총리실 공직기강실은 비공개자료 관리실태를 별도로 감찰했다. [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