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 시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중구 파리바게뜨 명동 본점에서 제로페이 QR코드로 결제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알리고 안착시키는 데 30억 원가량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간 부문에 정부가 플레이어로 등판했다며 ‘관제페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카드사와 밴(VAN) 사 등을 원천 배제한 탓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께 간편결제 사업자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며 신용카드사의 참여를 원천 배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제로페이 사업이 공공사업인 데다 수수료를 받는 구조인 신용카드사의 참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제로페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페이코 등 다수 ‘페이’들이 경쟁 중인 간편결제 시장에서 ‘소득공제 40%’ 말고는 딱히 이용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적인 유인책이 없어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신용카드 수수료가 높으니 거시적으로는 소상공인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제로페이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사용도 많이 없어 소상공인들이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며 “소비자들이 아직 잘 모르는 상황이고 혜택도 별로 없어 유인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카드 3사가 연합해 QR코드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제로페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듯한 모습을 보여 제로페이의 앞길이 더 어려운 것 아니냐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신한·롯데·비씨카드 3사는 지난해 말 기존 가맹점에서 호환 결제가 가능한 공통 QR 규격과 시스템 개발을 마무리하고, 지난 3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개맹점 약관을 승인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3사가 비슷한 시기에 QR결제 서비스 개발을 추진했으며,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3사가 함께 진행하면 가맹점 모집과 설명회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서비스 확산 속도도 더 빠를 수 있다는 의미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약관이 통과됐고 시스템도 준비가 돼 있다”며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모집 및 안내, QR결제 키트 배포 등의 과정을 거치면 빠른 시일 내에 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드업계는 카드사 연합의 통합 QR결제 서비스가 기존 페이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고 여기고 있다. 우선 가맹점 수에서 큰 차이가 있다. 제로페이는 카드 3사의 경우 기존 가맹점 수를 합하면 800만여 개에 달하지만 제로페이 가맹점은 여기에 한참 못미친다. 이는 곧 이용 편의성에서 현격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직불결제’인 제로페이와 달리 카드사의 기존 여신결제(외상) 기능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도 카드사 통합 QR결제 서비스의 장점으로 꼽힌다. 제로페이의 경우 연결된 소비자의 계좌 잔액에서 결제금액이 판매자에게 이체되는 직불 방식으로, 연결 계좌에 잔액이 없는 경우 사용할 수 없다. 반면 카드사의 QR결제 서비스는 신용카드와 같은 후불 결제 방식으로, 일괄 결제되는 신용공여가 가능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용자들의 QR코드 결제 습관이 확산되면 카드사 통합 서비스나 제로페이나 상황은 같을 것”이라면서도 “카드사 QR결제 서비스의 경우 기존 카드 할부·할인 혜택 등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QR코드 결제수단을 추가로 제공하는 것이므로 직불결제 시스템인 제로페이에 비해 경쟁력이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
제로페이도 여신결제 기능을 도입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는 있지만 확정된 바는 아직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 기능 추가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지만, 제로페이에 참여 중인 24개 기관 가운데 은행이 다수 포함돼 있어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체크카드 중에서도 하이브리드 기능을 탑재해 일정 한도 내에서 신용 결제가 가능토록 한 것처럼 일부 참여 사업자 가운데 자체적으로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제로페이와 카드사 연합 QR결제 서비스를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방식은 비록 같지만 타깃군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QR코드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대상과 혜택이 다르다”며 “할부 등 혜택을 받고 싶은 이용자는 카드 QR결제를, 연말 소득공제를 원하는 이용자는 제로페이를 이용할 것이므로 결국 사용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