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펄펄 날자 토트넘 팬들은 손흥민의 아시안컵 차출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며 소셜미디어에 “제발 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듯 글을 올리는 중이다. 이미 손흥민은 아시안컵 합류를 앞두고 “지난 가을 아시안게임에 이어 또 아시안컵에 떠나게 돼 미안하다”면서 “슬프지만 한국을 위해서는 중요하다”고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분데스리가를 거쳐 EPL에서 월드클래스 골잡이로 진화하고 있는 손흥민, 그 비결이 무엇일까.
토트넘과 사우샘프턴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토트넘의 3번째 골을 성공시킨 손흥민(오른쪽)이 동료 헤리 케인의 축하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요즘 토트넘 팬들 사이에선 ‘손흥민의 여권을 숨겨야 한다’는 말이 큰 지지를 받고 있다. 12월 27일(한국시간) 본머스전에서 손흥민이 두 골을 성공시키자 토트넘 팬이 구단 소셜미디어에 “누구든 다음 달이 오기 전에 손흥민의 여권을 숨겨야 할 것 같다”는 글을 올리며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 냈다.
손흥민의 활약이 이번 시즌 초반부터 두드러졌던 건 아니다. 시즌 초반만 해도 손흥민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팀을 떠나 있는 바람에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 선발 출전보다는 교체 출전이 많았고 체력적인 부담을 드러내면서 어려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경기 출전 횟수가 늘어나자 골잡이 특유의 골 본능이 되살아났다. 손흥민도 현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골이 많이 터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휴식과 전술적인 변화를 꼽았다.
이번 시즌 손흥민은 팀의 주축 공격수인 해리 케인과 투톱을 형성하며 전방 공격수로 뛰고 있다. 주로 측면에서 뛰던 움직임에서 중앙 전방까지 아우르는 전천후 유틸리티의 역할로 확대된 것이다. 1선과 2선 사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상대 수비진을 괴롭히는 바람에 득점 기회를 창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역할의 확대는 토트넘 미드필더들의 부상과도 연관이 있다. 미드필드에 부상자가 집중되면서 전체 포메이션이 변화를 이뤘고, 이것이 손흥민의 위치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SBS 박문성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진화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시간이 갈수록 무서워지는 선수다. 이번 시즌 손흥민의 플레이를 보면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그동안 부족한 점으로 지적된 부분을 잘 보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덕분에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레벨로 올라선 듯하다.”
박 위원은 손흥민의 강점과 단점 관련해서 분명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손흥민의 기본적인 강점은 양발을 잘 쓰고, 스피드가 뛰어나며 남다른 슈팅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덕분에 측면에서 빠른 스피드로 달려 들어가 양발을 사용해 안쪽으로 꺾어서 슈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반면에 다소 아쉬웠던 부분이 상대가 밀집해 있는 중앙에서 탈압박 능력이라든지, 좁은 공간에서 볼을 지켜내는 힘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단점들이 다 보완됐고 향상됐다. 중앙에서도 기존의 양발 슈팅을 보여주고 있고, 좁은 공간에서 볼 처리 능력과 밀집 수비수들 사이에서의 탈압박 능력에 탄력이 붙게 되면서 어디에 세워놔도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전 같으면 수비수들이 손흥민의 단점을 알고 대응하면 손흥민도 당황해하곤 했는데 지금은 예측 불허의 플레이로 공격해 들어가니까 수비수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다. 손흥민의 이러한 활약은 포체티노 감독에게 다양한 전술을 가능케 만들었다. 최전방은 물론 어디에 손흥민을 세워도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 위원은 손흥민이 EPL에서 세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고 두 차례의 월드컵 출전과 아시안게임을 치르며 쌓은 경험이 플레이에 녹아들었다고 말한다.
“요즘 손흥민의 경기를 보면 볼을 잡을 때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야가 넓어지고 노련해지면서 급하게 볼 처리를 하지 않는다. 축구 재능이 진화하고 성숙해진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개인 훈련과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손흥민이 무서운 건 이런 상황에서도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위원은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시절에 보인 활약보다 지금의 손흥민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은 팀에서뿐만 아니라 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선수다. EPL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톱 클래스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EPL에서 ‘이달의 선수’ ‘이달의 골’을 정할 때마다 손흥민의 이름은 매번 후보에 오른다. 정말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손흥민의 이런 활약으로 BBC, 스카이스포츠 등 현지 언론의 극찬은 물론 게리 네빌, 대니 가비돈 등 전문가의 호평도 잇달았다. 케인과 알리 등 팀 동료들도 손흥민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손흥민을 현지에서 밀착 취재하고 있는 이건 기자(스포츠조선 특파원)는 “지금의 손흥민은 EPL에서 박지성보다 더 유명한 한국 선수”라고 표현했다.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박지성과 달리 손흥민은 공격수다 보니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토트넘 내에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하고 있고, 해리 케인 다음으로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선수라 현지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터뷰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손흥민의 위치는 토트넘 내에서 ‘넘버 2’다. EPL에서는 20위 안에 들어가는 선수다. 지난 시즌에 비해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진화를 이룬 셈이다.”
이 기자는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손흥민을 향한 토트넘 팬들의 불만은 상상 이상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이 11월 A매치 때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한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아시안컵 출전을 위해 리그를 떠나 있어야 한다는 건 팬들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어느 팬은 SNS에다 ‘토트넘 선수들 중 놀고 있는 선수들 많은데 손흥민 대신 그들을 한국 대표팀에 보내면 안 되느냐’고 장난스런 글을 올려놓았을 정도다. 토트넘 팬들이 손흥민의 공백을 상당히 아쉬워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자의 말에 의하면 얼마 전 토트넘은 스타디움 내의 공식 스토어에서 근무할 직원으로 한국인을 뽑았다고 한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루에 300~500여 장 정도 팔리는 손흥민 유니폼을 구매하는 70%가 한국 팬들이라 마케팅 차원에서 한국인 직원을 임시 채용하게 됐다고 한다.
“토트넘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국 팬들이 굉장히 많이 경기장을 찾는다. 한국의 K2리그 경기를 보는 관중보다 토트넘에 오는 한국 팬들이 더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토트넘이 런던에 있고, 티켓 구하기가 쉬운 편이라 한국 팬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고 있는 것 같다. 기자들, 팬들 사이에서도 손흥민은 인기 선수다. 인터뷰도 열심히 하고, 팬 서비스가 뛰어난 터라 축구 외적인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LA 다저스 류현진이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두터운 친분을 이룬 것처럼 손흥민은 해리 케인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했다.
“두 선수가 정말 친하다. 라커룸을 케인이 장악하지만 손흥민도 만만치 않은 편이다. 손흥민이 골을 넣고 나면 세리머니로 동료 선수들과 온갖 종류의 핸드셰이크를 해 축구팬들 사이에서 ‘토트넘의 핵인싸’로 불리는데 그런 친근한 모습이 라커룸에서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손흥민은 함부르크 유소년팀 출신으로 2010/2011시즌부터 세 시즌 동안 함부르크에서 활약하다 이후 두 시즌 동안 바이엘04레버쿠젠에서 뛴 다음 현재 소속팀인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이건 기자는 손흥민이 함부르크 유소년팀에서 뛸 때부터 손흥민을 전담했던 터라 손흥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와 달리 지금은 말 한 마디에도 깊이 생각하고 대답한다. 자신의 말이 기사로 나갈 때 잘못 보도되면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중국 기자가 손흥민에게 ‘중국 선수들 중 아는 선수가 있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손흥민은 ‘내가 중국 선수 이름을 알고 알지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국은 강팀이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하더라. 굉장히 재치 있는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질문한 중국 기자가 오히려 머쓱해 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손흥민이 진화할수록 이적설도 끊임없이 나돌았고, 지금도 이적설 얘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손흥민은 EPL 데뷔 시즌에 부상 등으로 적응에 애를 먹었다. 그러다 2016~2017시즌을 앞두고 분데스리가(독일 1부) 볼프스부르크 이적설이 돌았지만 결국 팀에 잔류했다.
“당시 손흥민이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다. 토트넘의 에릭 라멜라가 펄펄 날고 있었고, 손흥민은 자리 경쟁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더라. 지난해 대표팀을 오가느라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도 그때는 괜찮다고 말하다가 11월 A매치를 거른 다음에서야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이 이어지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은 손흥민이 상당히 벼르고 있는 듯했다. 꼭 우승해서 우승컵을 품에 안고 싶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최근 손흥민을 둘러싼 이적설이 재점화됐다. 바이에른 뮌헨(독일), 리버풀(영국) 등의 팀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손흥민은 지난 7월 토트넘과 계약 기간을 2023년까지 연장했다. 연봉이 728만파운드(약 105억 원)로 알려졌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군 문제까지 해결했기 때문에 손흥민의 주가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건 기자는 “지금의 상황에서 손흥민이 앞으로 한 단계 더 점프할 것이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토트넘 회장의 특성상 손흥민의 이적을 두고 고민할 것이다. 젊은 나이에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를 탐내는 빅클럽이 있다면 손흥민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현지 기자들은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나 빅클럽으로 이적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능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손흥민의 집은 북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훈련장인 엔필드 트레이닝 센터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부모님, 형 등 주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그는 훈련 외의 시간은 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PL 선배 이영표·박지성도 엄지 척! 이영표 KBS 해설위원한테 손흥민은 더 많이 애착이 가는 후배다. 대표팀은 물론 토트넘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원은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에 대한 애정을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 클럽 중 15위 안에 들 정도로 명문 팀이다. 그런 팀에서 손흥민은 3시즌 동안 톱클래스 공격수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손흥민의 실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박지성도 손흥민의 활약에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잘하고 있다. 가끔 좋지 못한 플레이에 팬들의 희비가 갈릴 때도 있지만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그만큼 손흥민이 팬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증거다. 손흥민은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성장해 나갔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손흥민은 축구 팬들의 기대에 보답할 것이고 그에 부응하는 실력을 발휘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영] |